그렇지만 정당 공천 폐지를 정치개혁이라고 부르며 합당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첫 단추부터가 실은 잘못 채워진 것이었다. 지방선거가 정권과 정당에 대한 국민의 중간평가라며 정치적 의미를 한껏 부여하면서, 정작 출마하는 후보자는 심판 대상인 정당의 이름을 달고 나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레토릭이다. 만일 국회의원 기득권의 문제라면 국회의원의 공천권을 버리면 그만이다. 공천문제가 이른바 친노 세력과의 갈등문제라는 것은 일반 국민들도 모르지 않는다. 제1야당 대표가 거리에서 공천반대 서명 운동을 하고, 대통령을 만나러 청와대 민원실을 찾아갔던 이벤트가 민망하게 보였던 것도 이 때문이다. 정파 싸움에 대통령을 끌어들이는 실로 딱한 모습이었다.
사실 기초 선거에서는 후보자의 이름도 경력도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다. 소위 깜깜이 선거다. 대도시일수록 더욱 그렇다. 공천 절차나마 거쳐야 누가 누군지 정도는 알 수 있다. 무공천은 정치 개혁이 아니라, 무책임한 정치다.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가 국회 연설에서 무공천은 새 정치가 아니라 반(反)정치라고 공박했던 것이 이 점을 분명히 했다. 차제에 기초 선거를 아예 폐지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무공천이면 동네 건달이 되고, 공천하면 중앙정치의 악성 복사판이 된다. 풀뿌리 동네 정치의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단체장과 의원이 바뀌면 구청 납품업체가 바뀌고 동네 상권이 뒤집어지는 판이다. 공천도 문제, 무공천도 문제다. 이게 한국 지방자치의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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