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업의 발달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카페였다. 항구 근처에 위치한 카페에는 다양한 사람이 몰려들었다. 그중에서도 영국의 에드워드 로이드(Edward Lloyd)의 카페에는 선박의 출발과 도착 정보, 배당률 등의 정보를 칠판에 적어 놓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로이드의 사위들은 해상 보험 소식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신문 ‘로이드 리스트’를 발행했다. 이 자료는 정보의 교환이 어려웠던 당시에 영국뿐만 아니라 많은 국가의 항구에서도 유포됐다고 하니 그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간다. 로이드의 인기는 100년 가까이 지속됐다. 그러던 중 1771년에는 로이드 카페를 본거지로 삼아 활동하던 보험업자들이 돈을 합쳐 로이드클럽을 만들었다. 현존하는 보험사 중 가장 오래된 로이드손해보험사는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이렇게 발달하기 시작한 해상보험은 보험업 전체의 발전을 이끌었다. 한편, 18세기에는 해상보험과 함께 보험을 하나의 산업을 발전시킨 또 하나의 상품이 등장했는데 바로 생명보험이다. 생명보험의 경우 인간 수명과 밀접히 관련돼 있어 예상되는 손익을 예측하기가 어려웠다. 잘못된 판단으로 높은 보험료를 약속했다가 자칫하면 파산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위험을 해결해 준 것은 ‘확률론’이다. 수리학의 발달로 인해 등장한 확률론은 연령에 따른 사망가능성을 계산할 수 있어 비로소 적절한 보험료의 산정과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리스크 평가·측정·통계화
오늘날 보험의 내용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복잡해져, 보험설계의 바탕이 되는 확률론이 점차 정교해졌고 이를 전문적으로 연구해 보험에 활용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수학, 통계학, 재무이론, 확률 등의 지식을 적용해 보험료를 산정하고, 보험의 위험성 등을 평가하여 보험사의 손익을 계산하는 역할을 하는데 바로 ‘보험계리사(Actuary)’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보험계리사는 보험과 관련된 다양한 업무를 수행한다. 보험료의 산정, 계약의 정확성 여부, 보험회사의 재무적 성과와 지표측정, 회사 전체의 손익추정 등 보험의 수리적 측면과 관련된 거의 모든 역할을 담당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보험 산업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보험계리사의 역할은 리스크를 평가하고 측정하는 업무에 보다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급변하는 금융환경으로 인해 수학적인 방법으로 미래에 발생할 위험을 측정하고 통계화 하는 일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진 것이다. 보험계리사를 한마디로 정의할 때 ‘위험관리 전문가’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한편, 보험에서의 리스크 관리는 사람들의 위험에 대한 평가와도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금융위기 이후 급변하는 투자·금융환경은 사람들의 위험에 대한 선호에 영향을 미쳐 보험 가입에 대한 그들의 의사결정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위험에 대한 3가지 태도
경제학에서는 분석을 위해서 불확실한 상황에 대한 위험 부담에 대처하는 형태를 크게 세 가지 부류로 나눈다. 세 가지는 ‘위험 회피적(risk averse) 성향’ ‘위험 선호적(risk loving) 성향’ 그리고 ‘위험 중립적(risk neutral) 성향’이다. 그중 보험에 가입하는 사람들과 관련된 형태는 ‘위험 회피적’인 태도이다. 이는 간단히 말하면 불확실성을 싫어하는 성향을 의미한다.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오면 당신에게 1만원을 주고, 뒷면이 나오면 상대방에게 1만원을 주는 게임이 있는 경우 이들은 절대 참여하지 않는다. 기대되는 이득이 0원이더라도 참여하지 않는 것이다.
위험 회피적인 사람들은 내가 1만원을 받는 기쁨보다 상대에게 1만원을 주는 고통이 더 크게 느끼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험 회피적인 사람들은 보험가입에 적극적이다. 보험에 가입한다고 해서 위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보험회사에 보험료를 납부하고, 보험회사는 그 대가로 위험의 일부 혹은 전부를 수용하여 위험회피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 앞으로 맞닥뜨릴지도 모르는 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보험회사가 하는 일은 위험을 나누어서 지고자 하는 사람들을 모으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이와 반대되는 성향의 사람들이 ‘위험 선호적’인 사람들이다. 이들은 확률상으로 불리한 복권이나 카지노에서 도박을 즐기는 사람들로 기대치상으로 자신에게 불리한 경우에도 내기에 참여한다. 위험을 좋아하기 때문에 불리함을 알면서도 기꺼이 게임에 응하는 것이다. 마지막 형태인 ‘위험 중립적 성향’은 사람들은 위험기피적인 성향과 선호적인 성향의 중간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다. 이처럼 보험은 위험회피적인 사람들에게는 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보험계리사들은 상황에 따른 보험 가입자들의 위험 회피적 성향의 정도를 파악해 보험상품을 설계하고 리스크를 판단하게 된다.
수리적 능력 가장 중요
따라서 보험계리사에게 무엇보다 요구되는 자질은 수리적 능력이다. 보험가입자들의 위험에 대한 태도를 보험과 연계해 위험률을 판단하는 수단은 수리적 기술은 ‘확률과 통계’이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서 시행하는 보험계리사 시험 과목에서도 계리사가 지녀야 할 수리적 자질의 중요함을 엿볼 수 있다. 1, 2차 시험으로 나뉘어 있는 자격시험은 각각 5과목씩 구성되어 있는데 보험수학, 연금수학, 계리리스크관리, 계리모형, 재무관리 및 금융공학 등 수학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과목들이 주를 이룬다. 또한 현재 활동하는 많은 계리사들의 전공이 통계학 혹은 수학이라는 점도 계리사가 갖춰야 할 자질의 하나로써 수학의 중요함을 뒷받침해주는 점이다.
한편, 보험계리사가 갖는 중요함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선진국가들에 비해 충분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리스크 평가·관리를 계리사가 주도적으로 담당하는 등 그 역할을 점차 올바르게 인식하고 있지만 여전히 보험업계에서는 계리사의 업무를 상품 개발 측면에서만 바라보는 성향이 강해 금융산업의 핵심 인재로 인식하는 경향이 낮다. 하지만 선진국에서는 다르다. 금융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는 2013년 직업선호도 조사에서 변호사, 회계사를 모두 제치고 보험계리사가 1위를 차지할 만큼 고급 전문직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런 인식을 반영하듯 평균연봉도 1억원이 넘는 수준을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계리사의 전망은 그 어느 직업보다도 밝다. 보험의 상품 내용이 점차 다양해지고 복잡해지거니와 보험의 영역이 퇴직연금 등으로 확장되면서 계리사에 대한 수요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듯 연간 120명의 합격자를 배출하던 계리사시험의 합격인원을 140명으로 늘리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계리사에 대한 수요는 보험업뿐만 아니라 리스크를 평가해야 하는 일반 기업, 은행에서도 점차 커지고 있어 ‘공인계리사’라는 명칭으로 변경하려는 계획도 갖고 있다.
누군가 위기는 기회라고 했다. 금융위기 이후 계속되는 저성장, 저금리의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그 어느 직업보다 빛을 발할 수 있는 직업이 계리사다. 불확실성이 높을수록 리스크에 대한 관리는 그 무엇보다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머지 않아 우리나라에서도 계리사가 선진국에서의 계리사와 버금가는 전문직의 하나로 인정받을 수 있으리라 예상할 수 있는 이유이다.
● 위험부담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
위험부담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는 각각 다른데, 일반적으로 크게 세 가지 부류로 나눈다. 첫 번째 부류는 보험에 가입하려 하거나 다양한 자산을 보유하여 위험을 분산하려는 사람들로 ‘위험 회피적 태도’를 지닌 사람들이다. 이와는 반대로 확률상 불리한 복권을 구입하거나 카지노에서 도박을 일삼는 사람들로 ‘위험 선호적 태도’를 지닌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들의 중간에 해당하는 ‘위험 중립적인 태도’의 세 가진 부류로 나눌 수 있다.
김동영 < KDI 전문연구원 kimdy@kdi.re.kr</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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