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락적 호기심을 정치화하는…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
질투의 사다리는 높이 갈수록 치열하다. 최고경영자(CEO) 연봉도 그렇다. 사람들은 동류와의 비교에 더 몸서리친다. “그 친구 고시 떨어지고 재벌에 들어갔는데 말이야…”로 시작하면 관료와 법조인의 경제민주화 공세도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고액연봉 비판에 시달려왔던 금융사 회장들은 수십억원에 달하는 제조업 CEO 연봉이 공개되자 오히려 자기가 적다고 짜증을 낸다. 대기업 임원으로 퇴직한 사람들조차 “그 친구 별 능력도 없었는데…”라며 게거품을 문다.
적정 CEO 연봉은 헤드헌팅 회사의 오랜 질문의 하나였다. 영업이익률이나 부하의 연봉총액 등에 연계되기도 하지만 결국은 엿장수(주주) 마음이다. CEO 보수는 주식회사 제도가 생겨난 이래의 질문이다. “아는 것도 없으면서 거들먹거리고…”라고 말했던 사람은 애덤 스미스였다. 사람들은 과업과 보수가 비대칭적이라고 생각한다. 모 대기업 총수야말로 “CEO들 연봉이 왜 그리 많아”라고 반문했다지 않은가.
그림은 ‘경영자-노동자 보수 배율’ 그래프다. 미국 경제정책연구소 자료다. 1965년 종업원 임금에 비해 CEO 연봉은 20.1배에 불과했다. 1990년 들어 폭발해 2000년에는 411배라는 피크에 달했다가 이후 극적으로 떨어져 200배 수준에서 등락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CEO 보수가 875% 오르는 동안 종업원 임금은 겨우 5.4% 올랐다. 유독 90년대 들어 CEO 보수가 폭발한 이유는 무엇일까. 신자유주의 때문이라고 실룩거리는 사람이 많겠지만 아니다.
90년대는 소위 신경제가 지배하던 시기다. 수확체증 및 지식경제와 네트워크 효과를 증명하던 정보기술(IT)산업의 활황, 그리고 금융산업의 증권화 현상이었다. 산업의 리스크가 예측불허로 치솟았다는 것은 그만큼 성공의 전리품이 확실해졌다는 뜻이다. 더구나 CEO 보수가 주가에 연동되기 시작했다. 산업은 그렇게 쇼비즈니스나 스포츠 산업처럼 바뀌어갔다. 축구선수 메시의 몸값은 3600억원이었다. 삭감되었다는 연봉이 230억원이다. 한국 대표팀을 몇 개나 운영할 수 있는 돈이다. 그것에 비하면 CEO들은 적게 받는다. 메시는 아름답게 골을 넣지 않느냐고? 그렇다면 스티브 잡스에게는 과연 애플 이익의 몇 %를 보수로 지급하는 것이 적당할까. 스마트폰은 잡스 아니면 불가능했다. 이익의 절반은 가져가야 하지 않을까? 3분의 1이라면? 10%만 잡아도 1조5000억원이다. 놀랍게도 잡스는 무보수였다. 삼성전자 CEO들은 연봉 60억원씩을 받았다. 직원 평균 1억200만원의 60배였다. 이익수준을 고려하거나 동급 글로벌 기업에 비기면 5분의 1 수준이다. 반도체를 성공시킨 이건희 회장은 몇 %의 보수를 받아야 할까. 갤럭시S를 성공시킨 삼성의 CEO들은? 농업적 근면성, 다시 말해 투입시간을 따져 연봉을 계산하자면 가치가 폭발하는 사업은 불가능하다. CEO 몸값은 그 폭발력에 의해 결정된다. CEO 연봉을 가장 의심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삼성그룹이라면 아마도 이 회장일 것이다.
이번 연봉 공개에서는 일부 내수기업의 오너 경영자들이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그러나 한국은 역사적으로 배당이 유달리 적었다는 점도 감안되어야 한다. 배당 평균 수익률은 은행 이자보다 낮은 불과 1%다. 과소배당의 연원을 토론하자면 또 밤을 새워야 한다. 국세청에 따르면 한국 CEO 평균연봉은 1억8000만원이다. 종업원 2500만원의 7배다. 일본보다 차이가 작다. CEO 연봉이 높은 기업은 대체로 이익률도 높다. 5억원 이상 받는 CEO가 500명이 아니라 5000명, 5만명이 되길 바랄 뿐이다. 투명성을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남의 집 숟가락에 대한 촌락적 호기심에 불과하다. 대중 민주주의는 그렇게 결과적 평등을 위한 증거들에 집착한다. 그게 또 정치에너지를 만든다.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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