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MAN AFTER ALL
노벨경제학상 수상 제임스 헤크먼 교수 인터뷰
명문大가 '인생 보증수표'…학생들 성적에만 목매
이민 문호 크게 넓히고 통일땐 고령화 문제 해결
[ 강영연 / 허란 기자 ]
“한국은 지난 50년간 놀라운 성공스토리를 만들어냈다. 앞으로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고령화에 따른 인구 감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지난 10~12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새로운 경제적 사고를 위한 연구소(INET) 콘퍼런스’에서 만난 제임스 헤크먼 시카고대 경제학과 교수(70·사진)는 한국의 가장 큰 문제로 고령화를 지적하면서 이를 풀기 위한 세 가지 해결책으로 교육정책 개혁과 이민정책 변화, 그리고 남북통일을 제시했다. 조지 소로스 재단이 설립한 INET가 주최한 이번 콘퍼런스에는 한국경제신문이 미디어파트너로 참여했다.
▷한국의 경제상황을 평가한다면.
“세계 경제에 대해선 비관적인 편이지만 한국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50~60년 전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로 1인당 국민소득이 80달러 정도에 불과했다. 6·25전쟁 당시 수도인 서울은 여러 차례 점령된 결과 완전히 파괴됐다. 교육받은 사람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모습을 봐라. 국민 대부분이 대학에 진학하고 있으며 삼성과 현대 등 대기업은 세계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다. 한국이 지난 50년간 보여준 성공 스토리는 놀랍다.”
▷앞으로 50년은 어떨까.
“지난 50년과 같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국은 다른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경제적 성공을 분배해야 할 시점에 다다랐다. 국가의 한정된 자원을 생산 대신 분배에 쓰면 성장속도는 줄고 생산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서유럽 국가들의 경제성장률이 중국,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보다 낮은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한국은 고령화에 따른 인구 감소로 노동력까지 줄고 있어 문제가 더 심각할 수 있다.”
▷노동력 감소 문제 해결책은.
“이민 정책의 변화가 필요하다. 지금 한국은 일부 농촌 총각들이 결혼하기 위해 필리핀 등 동남아 여성들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이민자가 거의 없다. 하지만 인구가 줄고 있는 한국과 일본 등은 이민을 적극 받아들여야 한다. 고령화 사회로 노동력 부족이 장기화되면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구조적 원인이 될 것이다.”
▷이민 외 대안은 없나.
“노동자의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 한국은 시험 중심의 교육제도를 바꿔야 한다. 한국에 갔을 때 경주의 한 사찰을 방문한 적이 있다. 소원을 적는 곳이 있었는데 거기에 적힌 아이들의 바람은 모두 성적을 잘 받는 것이었다. 아이들의 열정이 모두 시험을 향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시험으로는 창의성, 생산성, 이해력 등 삶의 중요한 부분을 평가할 수 없다. 한국 정부는 창조적인 역량을 강조하고 있지만 학생들에게는 시험을 통과하는 것만 중요한 상황이다.”
▷교육 제도를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까.
“교과과정뿐 아니라 사회제도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시험을 잘 봐서 서울대에 들어가면 인생이 보장되는 식으로 사회가 유지돼선 안 된다. 회사들도 학교 이름에 의한 채용이 아니라 실제 회사 기여도나 능력을 보고 사람을 뽑아야 한다. 사립대 간의 경쟁을 늘려 교육 시스템 자체를 흔들 필요도 있다. 교육을 잘 받은 인재들이 한국을 떠나는 것을 막는 것도 중요하다. 돈을 벌 수 있는 실용적인 학문이 아니면 연구를 제대로 인정하거나 지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서울대를 나와서도 대기업에 가려고 한다. 그나마 계속 공부하려는 학생들은 외국으로 간다. 그리고 공부를 마친 뒤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한국에선 연구 기회가 적기 때문이다.”
▷고령화 시대에 노인을 위한 정책은 무엇이 있을까.
“한국 사회는 전통적으로 유교문화여서 어른을 존경하고 노인에 대한 배려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 투자의 혜택을 입었을 때 상대적으로 더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존재는 젊은이들이다. 이왕이면 젊은이들에게 더 많이 투자하는 게 바람직하다. 젊은이들은 성공했을 때 가시적인 성과가 바로 따라온다. 이들이 돈을 벌면 집을 사는 등 소비를 늘려 경제를 활성화하기 때문이다. 이런 선순환이 결국 노인들에게도 혜택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서 통일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통일은 한국에 엄청난 기회다. 고령화에 따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열쇠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북한에는 숙련되지 않은 많은 노동자가 있다. 베트남 등에 나가 있는 삼성 공장이 북한으로 들어간다면 한국과 북한에 모두 기회가 될 것이다.”
"한국의 불평등, 기업 경쟁의 결과…경제에 나쁘지 않아"
“사회적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선 재분배(redistribution)보다는 사전분배(predistribution)가 중요하다.”
제임스 헤크먼 시카고대 교수는 “인생의 시작점에서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바로 교육”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헤크먼 교수는 “가난한 가정에 태어나 어떤 방법으로도 굴레를 벗어나지 못해 생기는 불평등을 없애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의 상황은 다른 나라들과는 다르다고 평가했다. 헤크먼 교수는 “한국은 교육수준이 높은데도 불구하고 불평등 수준이 높다”며 “하지만 한국의 불평등은 기업가들이 더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경쟁하고 부를 축적하면서 생긴 좋은 불평등(good inequality)”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불평등은 더 좋은 차를 타고, 더 좋은 휴대폰을 쓰고 싶어 사람들이 노력하게 만들기 때문에 경제엔 오히려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토론토=강영연/허란 기자 yykang@hankyung.com
노벨경제학상 수상 제임스 헤크먼 교수 인터뷰
명문大가 '인생 보증수표'…학생들 성적에만 목매
이민 문호 크게 넓히고 통일땐 고령화 문제 해결
[ 강영연 / 허란 기자 ]
“한국은 지난 50년간 놀라운 성공스토리를 만들어냈다. 앞으로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고령화에 따른 인구 감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지난 10~12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새로운 경제적 사고를 위한 연구소(INET) 콘퍼런스’에서 만난 제임스 헤크먼 시카고대 경제학과 교수(70·사진)는 한국의 가장 큰 문제로 고령화를 지적하면서 이를 풀기 위한 세 가지 해결책으로 교육정책 개혁과 이민정책 변화, 그리고 남북통일을 제시했다. 조지 소로스 재단이 설립한 INET가 주최한 이번 콘퍼런스에는 한국경제신문이 미디어파트너로 참여했다.
▷한국의 경제상황을 평가한다면.
“세계 경제에 대해선 비관적인 편이지만 한국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50~60년 전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로 1인당 국민소득이 80달러 정도에 불과했다. 6·25전쟁 당시 수도인 서울은 여러 차례 점령된 결과 완전히 파괴됐다. 교육받은 사람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모습을 봐라. 국민 대부분이 대학에 진학하고 있으며 삼성과 현대 등 대기업은 세계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다. 한국이 지난 50년간 보여준 성공 스토리는 놀랍다.”
▷앞으로 50년은 어떨까.
“지난 50년과 같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국은 다른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경제적 성공을 분배해야 할 시점에 다다랐다. 국가의 한정된 자원을 생산 대신 분배에 쓰면 성장속도는 줄고 생산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서유럽 국가들의 경제성장률이 중국,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보다 낮은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한국은 고령화에 따른 인구 감소로 노동력까지 줄고 있어 문제가 더 심각할 수 있다.”
▷노동력 감소 문제 해결책은.
“이민 정책의 변화가 필요하다. 지금 한국은 일부 농촌 총각들이 결혼하기 위해 필리핀 등 동남아 여성들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이민자가 거의 없다. 하지만 인구가 줄고 있는 한국과 일본 등은 이민을 적극 받아들여야 한다. 고령화 사회로 노동력 부족이 장기화되면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구조적 원인이 될 것이다.”
▷이민 외 대안은 없나.
“노동자의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 한국은 시험 중심의 교육제도를 바꿔야 한다. 한국에 갔을 때 경주의 한 사찰을 방문한 적이 있다. 소원을 적는 곳이 있었는데 거기에 적힌 아이들의 바람은 모두 성적을 잘 받는 것이었다. 아이들의 열정이 모두 시험을 향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시험으로는 창의성, 생산성, 이해력 등 삶의 중요한 부분을 평가할 수 없다. 한국 정부는 창조적인 역량을 강조하고 있지만 학생들에게는 시험을 통과하는 것만 중요한 상황이다.”
▷교육 제도를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까.
“교과과정뿐 아니라 사회제도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시험을 잘 봐서 서울대에 들어가면 인생이 보장되는 식으로 사회가 유지돼선 안 된다. 회사들도 학교 이름에 의한 채용이 아니라 실제 회사 기여도나 능력을 보고 사람을 뽑아야 한다. 사립대 간의 경쟁을 늘려 교육 시스템 자체를 흔들 필요도 있다. 교육을 잘 받은 인재들이 한국을 떠나는 것을 막는 것도 중요하다. 돈을 벌 수 있는 실용적인 학문이 아니면 연구를 제대로 인정하거나 지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서울대를 나와서도 대기업에 가려고 한다. 그나마 계속 공부하려는 학생들은 외국으로 간다. 그리고 공부를 마친 뒤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한국에선 연구 기회가 적기 때문이다.”
▷고령화 시대에 노인을 위한 정책은 무엇이 있을까.
“한국 사회는 전통적으로 유교문화여서 어른을 존경하고 노인에 대한 배려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 투자의 혜택을 입었을 때 상대적으로 더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존재는 젊은이들이다. 이왕이면 젊은이들에게 더 많이 투자하는 게 바람직하다. 젊은이들은 성공했을 때 가시적인 성과가 바로 따라온다. 이들이 돈을 벌면 집을 사는 등 소비를 늘려 경제를 활성화하기 때문이다. 이런 선순환이 결국 노인들에게도 혜택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서 통일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통일은 한국에 엄청난 기회다. 고령화에 따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열쇠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북한에는 숙련되지 않은 많은 노동자가 있다. 베트남 등에 나가 있는 삼성 공장이 북한으로 들어간다면 한국과 북한에 모두 기회가 될 것이다.”
"한국의 불평등, 기업 경쟁의 결과…경제에 나쁘지 않아"
“사회적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선 재분배(redistribution)보다는 사전분배(predistribution)가 중요하다.”
제임스 헤크먼 시카고대 교수는 “인생의 시작점에서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바로 교육”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헤크먼 교수는 “가난한 가정에 태어나 어떤 방법으로도 굴레를 벗어나지 못해 생기는 불평등을 없애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의 상황은 다른 나라들과는 다르다고 평가했다. 헤크먼 교수는 “한국은 교육수준이 높은데도 불구하고 불평등 수준이 높다”며 “하지만 한국의 불평등은 기업가들이 더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경쟁하고 부를 축적하면서 생긴 좋은 불평등(good inequality)”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불평등은 더 좋은 차를 타고, 더 좋은 휴대폰을 쓰고 싶어 사람들이 노력하게 만들기 때문에 경제엔 오히려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토론토=강영연/허란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