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달 동안 한 포털사이트의 공무원 준비생 카페에 올라온 글들이다. 이들이 게시판을 도배하며 찾고 있는 건 ‘대학교 학생증’이다.
요즘 대학가에선 ‘학생증 거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학생증 거래를 희망하는 이들은 대부분 휴학생이나 취업 준비생들로 타 학교 열람실 이용이 주목적이다. 집과 학교가 멀어서, 스터디 장소와 가까워서 등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이들은 소속 학교보다 가깝고 편리한 학교를 찾아다니는 캠퍼스 ‘메뚜기족’이다.
이른바 메뚜기족은 대학에 대한 소속감보다 시간과 비용을 따지는 실속파다. 이동 시간과 돈을 아낄 수 있다면 타 학교에서 다른 학생의 이름으로 열람실을 사용한다. 오히려 ‘학생증 거래’를 비슷한 처지의 학생들끼리 상부상조하는 효율적 방법으로 활용하고 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동국대 휴학생 조모 씨는 15일 “집이 수원이라 학교까지 가는 데 1시간이 넘게 걸린다” 며 “강의도 없는데 학교까지 가려니 시간, 교통비 모두 손해란 생각이 들어 집 근처 인하대의 학생증을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생증 거래 방식엔 교환이 아닌 대여도 있다. 지인들끼리 공짜로 빌려주는가 하면 처음 보는 이들끼리 일정 금액을 주고받으며 빌려준다. 실제 취업 카페와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 대학교 커뮤니티엔 학생증을 유료로 대여하겠다는 글을 어렵잖게 찾아 볼 수 있다. 보통 한 달에 3만~5만 원 선에서 학생증 거래된다.
특히 대학들이 도입한 모바일 학생증이 학생증 거래를 부추기고 있다. 모바일 학생증의 바코드만 스크린샷(Screenshot)으로 찍어 보내주면 실제 학생증을 직접 교환하지 않아도 된다.
모바일 학생증이 들어 있는 학교 앱의 ID와 비밀번호를 교환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기존 학생증엔 신용카드 기능이나 개인정보가 포함돼 있지만 모바일 학생증은 바코드로만 이뤄져 있어 비교적 거래가 쉽다.
이런 현상은 대학가의 오랜 취업 불황과 직결된다. 타 학교 열람실 이용자들이 늘어났다는 건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지만 학습 공간은 필요한 학생들이 늘어났다는 의미다. 정규 학기를 모두 끝냈지만 취업이 안 된 휴학생, 졸업유예생, 취업준비생들이 많다.
노무사 시험 준비 중인 서울 소재 H대 휴학생 김모 씨는 학생증을 교환해 집 근처 K대 열람실을 이용하고 있다. 김 씨는 “동네 독서실은 한 달에 10~20만 원이 들고, 학교 열람실은 이동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학생증 교환이 처음이 아니라는 그는 “대여보다 1 대 1 학생증 카드 교환을 더 선호한다” 며 “책 대여 등 학생증 남용 우려가 있는데 학생증엔 사진과 학과, 학번이 있어 신분증을 대신하기 때문에 신뢰를 갖고 거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거래된 학생증이 각종 범죄에 악용될 우려도 제기된다. 불법거래 학생증이 과외 사기, 휴대폰 부정 개통, 대학 내 절도 등 범죄에 사용된 전례가 있다.
대학들은 학생증 거래 관행을 알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제재가 불가능하고 대책 마련도 어렵다는 입장이다.
서울의 한 4년제대 학생지원팀 관계자는 “학생증 거래에 대해 들어 본 적은 있지만 직접 학생의 거래행위를 발견한 적은 없다” 면서 “책을 대여하는 게 아니라 열람실만 이용하는 정도라면 기계로 처리돼 학생증 소지자의 본인 확인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한경닷컴 박희진 기자 hotimpact@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