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지금 안 바꾸면 글로벌 시장서 낙오한다"…기업 구조조정 태풍, 외환위기 이후 최대

입력 2014-04-18 18:44  


◆기업 구조조정

재계에 구조조정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장기화되는 세계경기 침체 속에 체력이 바닥난 대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재무구조 개선과 군살빼기에 돌입했다. 동부, 현대 그룹은 채권단 주도의 고강도 자구계획을 추진하고 있으며 KT는 대규모 인력감축에 나섰다. 금융업계에도 구조조정이 확산되고 있다. - 4월 14일 한국경제신문

기업들이 최근 앞다퉈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일각에선 “1997년 외환위기 때보다 더 강도가 세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기업을 둘러싼 경영환경이 아주 어렵다는 뜻이다. 2008년 이전까지만 해도 호황을 누리던 건설 철강 조선 해운 금융 등 주요 산업은 금융위기로 글로벌 경기가 급랭하면서 직격탄을 맞은 뒤 지금까지 회복되지 않고 있다. 동양이나 STX, 웅진 그룹 등은 구조조정에 실패함으로써 그룹이 해체됐다. 구조조정은 왜, 그리고 어떻게 하는 것일까?

군살빼기·신성장 동력 확보 차원

재계의 구조조정은 크게 △군살을 빼 비용을 절감하는 한편으로 △사업구조도 재편하는 양갈래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국내 통신시장의 강자인 KT는 대규모 명예퇴직을 시행 중이다. 노사 합의에 따라 근속 15년 이상 직원 2만3000명이 대상이다. KT의 명예퇴직은 2009년 이후 처음이다. 삼성 출신의 황창규 회장은 사령탑에 오르자마자 대규모 인력 감축과 조직 슬림화에 시동을 걸었다. 130여명에 이르던 임원 수를 약 30% 감축한 데 이어 명예퇴직을 통해 전체 임직원의 20%인 6000명 안팎을 줄일 계획이다. 황 회장은 SK텔레콤이나 LG유플러스보다는 인력은 두세 배 많은데 매출이나 이익은 뒤떨어지는 건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금융권에도 한파가 몰아닥치고 있다. 삼성 그룹의 삼성생명은 임원 70명 중 15명의 보직을 없앴고 본사 근무 직원 6700명 중 1000명을 희망퇴직이나 자회사로 보내는 방법으로 줄일 방침이다. 삼성증권도 3년차 이상 직원들에게 희망퇴직을 받는다. 김석 삼성증권 사장은 “현재와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회사 자체의 존립이 위협받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보험업계도 지점을 줄이고 명예퇴직을 받고 있다. 한화생명은 20년 이상 근무한 직원을 대상으로 퇴직 이후 창업 등을 돕는 ‘전직 지원제도’를 도입했다,

은행권에서도 한국씨티은행은 전체 지점의 30%(56개)를 통폐합하고 인력도 650명 줄일 예정이다. SC은행도 지점 25%(약 100개) 감축을 진행하고 있다. 영업이익이 반토막 난 국민 신한 하나 등 대형 은행들도 점포 축소, 임원 감원이 한창이다.

자동차업계에선 르노삼성자동차가 생산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유도 프로그램을 실시 중이다. 한국GM도 사무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신청받고 있다.

사업도 구조조정…“안 바꾸면 죽는다”

기업들은 인력 구조조정과 함께 사업 재편도 본격화하고 있다. 일류로 살아남기 위한 경영혁신을 강조해온 삼성은 사업의 틀을 새로 짜나가고 있다.

삼성생명 삼성증권 등 금융 계열사 인력을 줄이는 한편으로 전자정보소재 사업을 벌이고 있는 제일모직삼성SDI에 합병키로 했다. 삼성전자를 정점으로 한 전자부문 수직계열화를 한층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또 삼성종합화학과 삼성석유화학을 합병해 화학 분야 경쟁력을 높이기로 했다.

현대자동차 그룹도 지난해 철강 계열사인 현대제철현대하이스코의 냉연사업 부문을 합친 데 이어 최근 중견 건설사인 현대엠코를 현대엔지니어링과 합쳤다.

권오준 회장을 새 사령탑으로 맞은 포스코는 탄소강 부문·스테인리스 부문 등 6개 본부를 철강생산·철강사업 등 4개로 통폐합하고, 경영 담당 임원을 68명에서 52명으로 23.5% 감축했다. 기획·인사 등 경영지원 업무 부문에서만 임원 수가 31명에서 14명으로 절반 이상 줄었다. 권 회장은 경쟁력이 떨어지는 비핵심 사업은 중단·매각·통합해 신속하고 과감하게 정리할 방침이다.

동부 그룹은 동부하이텍, 동부제철 인천공장, 당진항만 등을 팔아 2015년까지 3조원을 조달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 그룹은 현대증권 등 3개 금융 계열사와 현대상선 주요 자산을 처분해 3조3000억원을 마련할 방침이다.

롯데 그룹은 롯데삼강·파스퇴르유업·후레쉬델리카·웰가·롯데햄을 차례로 합병해 지난해 종합식품회사인 롯데푸드를 출범시켰다.

성장 정체와 실적 악화가 이유

국내 제조업체들의 실적은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 LG경제연구원이 470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970년대 연평균 30%대였던 매출증가율은 1990년대 10%대로 낮아졌고 2012년에는 4.8%, 2013년 3.4%로 추락했다.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은 1970년대 8.4%, 1980년대 7.3%, 1990년대 7.0%, 2000년대 6.3% 등으로 하락해 2012년 4.2%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4.3%로 소폭 올랐지만 이는 삼성전자 등 특정 기업의 약진에 기인한다. 지난해 증권시장(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494개사의 순익(61조7000억원) 중 절반(30조4000억원)이 삼성전자 한 곳에서 냈다. 삼성전자와 현대차를 제외한 전체 상장사들의 순이익 감소율은 무려 32%를 넘는다. 상장사 4곳 중 1곳은 적자다.

증권업계에선 지난해 62개 증권사 중 45%인 28곳이 적자를 냈다. 은행권도 지난해 순이익이 전년 대비 반토막인 4조원대로 떨어졌다. 보험업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간판 대기업들의 신용등급은 줄줄이 추락하고 있다. 무디스, S&P 등 국제 신용평가사는 최근 GS칼텍스 신용등급을 투기등급(BB+ 이하) 바로 위인 BBB-로 내렸다. LG전자 한진해운은 BBB-다. 포스코 롯데쇼핑 SK이노베이션도 한 계단 위인 BBB까지 내려갔다. 현대상선은 1년 새 5계단이나 떨어져 정크본드(BB+)로 전락했다. 모두 해당 업종의 1, 2위를 다투는 기업이다. 정부가 보증하는 공기업을 빼면 국제적으로 A등급 이상인 대기업은 손꼽을 정도다. ‘실적 부진→부채 증가→신용등급 하락→차입비용 증가→수익성 악화’의 악순환에 갇힌 상태다.

게다가 향후 전망도 밝지 않다. 안으로는 고령화와 저출산 등으로 일본처럼 우리 경제가 장기 침체에 진입할 것이란 우려가 크다. 밖으로는 중국 기업들이 무섭게 추격해오고 있으며 일본은 엔저로 한국 기업들에 빼앗긴 시장 회복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미국은 값싼 셰일 가스와 오일을 앞세워 제조업 부활을 외친다. 이런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사정이 나을 때 선제적으로 체질 개선을 하지 않으면 세계 시장에서 낙오된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1997년의 교훈

구조조정은 기업들이 급변하는 환경에 대응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필수 과정이다. 군살을 줄이고 환부를 도려내야 새 살이 돋아날 수 있는 법이다. 국내 기업들은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구조조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했다. 이런 뼈저린 경험은 그 뒤 상시 구조조정 체제로 이어지면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한국 경제가 빠르게 위기에서 빠져나오는 데 큰 힘이 됐다. 하지만 지금은 이 같은 평상시 수준의 구조조정만으론 살아남기 힘들다는 게 기업들의 판단이다.

구조조정은 확실히, 그리고 신속하게 해야 효과가 있다. 또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이어야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말 “생산성이 낮은 분야에서 높은 분야로 자원을 재배정하는 구조개혁이 성장 전략의 핵심”이라는 연구보고서를 내놓은 바 있다. 기업들이 구조조정에 성공하고 한국 경제가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려면 정부도 기업들의 전직 프로그램을 적극 지원하고 사회적 안전망을 보다 세심히 살피는 등 도와줘야 한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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