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언서판(身言書判). 중국 당나라 관리 등용 시험에서 인물을 평가했던 네 가지 기준이다. 신(身)은 풍채와 용모, 언(言)은 논리적인 언변, 서(書)는 필체와 필력, 판(判)은 사물의 이치를 구별하는 판단력을 뜻한다. 이 네 가지를 두루 갖춘 사람을 으뜸으로 평가하고 여기에 덕행이나 재능, 효심 등을 감안해 관리로 선발했다. 특히 지식과 됨됨이를 보여주는 글은 인재를 뽑는 핵심 잣대였다. 조선시대 관리가 되는 관문인 과거시험은 결국 글쓰기 능력의 테스트였다.
글은 많은 것을 담는다. 무엇보다 글 쓴 사람의 지식이 녹아난다. 글을 읽다보면 글 쓴 사람의 지식이 저절로 드러난다. 생각·논리·경험·인품도 배어 있다. 한마디로 글은 그 사람 자체다. 대학에서 수능점수와 무관하게 단순히 글쓰기(논술)로만 일부 신입생을 뽑는 이유다. 문학·예술·스포츠 등 각 분야의 세계적인 인물은 타고난 재능에 남다른 노력을 더한 사람들이다. 글쓰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재능에 약간씩 차이가 있더라도 꾸준히 노력하면 누구나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논리적이고 멋진 글은 꾸준한 연습의 결과물이다.
공부와 마찬가지로 글쓰기도 펀더멘털(기초체력)이 중요하다. 폭넓은 독서, 생각하는 습관, 논리적 토론, 창의적 사고, 다양한 경험은 모두 좋은 글의 밑거름이다. 공부와 글쓰기는 이런 점에서 공통점이 많다. 글쓰기는 생각을 글로 옮기는 것이다. 그러니 평소 ‘생각의 정리’가 필요하다. 기승전결식의 논리적 사고 훈련은 글을 쓰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책을 읽고 줄거리나 느낀 생각을 요약한다든지, 동일한 현상을 보는 다양한 시각을 키우는 노력도 필요하다.
글을 어떤 식으로 풀어갈지도 고민해야 한다. 연역적으로 써나갈지, 귀납적으로 전개할지에 따라 글을 쓰는 요령이 달라진다. 맞춤법은 글쓰기의 기본이다. 맞춤법이 자주 틀리면 글 쓴 사람의 무식이, 오·탈자는 그 사람의 꼼꼼하지 못한 성격을 드러낸다. 맞춤법이 틀리고, 오·탈자가 많은 글은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동의어 반복을 가급적 피하고, 문법적으로 주술관계가 어긋나지 않는 글을 쓰는 것도 중요하다. 세상은 빠른 속도로 변한다. 하지만 과거시험을 보던 옛날이나 정보기술(IT)이 하루가 다르게 세상을 바꾸는 21세기에도 글쓰기의 중요성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글에는 지식과 사람의 됨됨이가 고스란히 스며있기 때문이다. 4, 5면에서 좋은 글을 쓰는 요령과 글쓰기가 중요한 이유 등을 상세히 알아보자.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