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6개월간의 국민은행 금융사고 리스트를 보면 국내 간판은행의 허술함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대형 사고만도 100억원대 국민주택기금 횡령, 수천억원대 도쿄지점 부당대출, 고객정보 대규모 유출, 9700억원 규모 허위입금증 발급 등이 꼬리를 물었다. 자잘한 사고·비리까지 합치면 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다. 신뢰를 먹고사는 은행이 이 지경이 됐으니 이보다 더한 위기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비단 국민은행만의 문제는 아니다. 기본기조차 갖추지 못한 채 겉만 요란한 한국 금융산업 전체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능력 대신 줄을 잘 서야 승진하는 후진형 인사관행, 수백명 지점장들을 매일 성적을 매기는 고도근시 경영, 고액 연봉만 있고 윤리는 실종된 직업의식 등이 국민은행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났을 뿐이다. 더구나 낙하산인사, 관치금융에다 정부가 만들어 준 독과점 환경 아래 은행들이 스스로 쇄신할 필요를 느낄 리 만무하다.
금융사고가 나면 CEO를 문책하겠다는 식의 금융당국 엄포로 예방된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잇단 금융사고는 세월호 침몰사고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안전불감증, 낙후된 감시시스템, 허술하다 못해 부도덕한 직업의식, 당국의 사후약방문까지 닮은꼴이다. 원인을 몰라서 사고가 꼬리를 무는 게 아니다. 당장의 이익에 눈이 멀어 금융인의 본분을 망각하고, 알고도 규칙을 안 지키는 뼛속 깊은 고질병인 것이다. 끝장토론보다 절실한 것은 금융사고를 끝장내겠다는 뼈를 깎는 반성과 내부감시의 실천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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