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영식 기자 ] ‘박심(朴心·박근혜 대통령의 마음)’은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대표를 맡았던 2004년 이후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박 대통령의 뜻과 관계없이 선거에 나선 후보들은 너도나도 ‘박심’을 선거 마케팅에 활용해왔다.
2002년 대선 당시 선거 자금을 불법으로 모금한 이른바 ‘차떼기’ 사건이 2004년 초 불거지면서 난파에 직면한 한나라당을 구해냈고, 이후 ‘선거의 여왕’이란 별명을 얻은 박 대통령 인기에 편승하겠다는 전략이다. 지도부를 선출한 2008년과 2010년 전당대회에서 누가 ‘박심’을 더 많이 얻었느냐가 화두가 됐던 게 대표적인 예다. 결국 한나라당의 전당대회는 당의 비전을 보여주며 미래를 얘기한 게 아니라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하면서 ‘계파정치’에 매몰됐다는 비판을 거세게 받았다. 총선, 재·보궐선거 때마다 마찬가지 현상이 벌어졌다.
여야 가릴 것 없는 계파정치
6·4지방선거를 앞둔 요즘 정치권에선 세월호 침몰로 선거 운동 자체가 주춤하다. 하지만 후보들의 ‘박심’ 마케팅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정몽준·김황식 서울시장 새누리당 예비후보 간 ‘박심’ 논란이 이미 한바탕 휩쓸고 지나갔다. 경남지사 새누리당 후보경선에선 ‘친박(親朴) 대 비박(非朴)’ 간 혈전이 치러졌다. 기초단체장 후보들도 물밑에서 경쟁적으로 ‘친박’을 내세우며 표심을 겨냥하고 있다.
계파정치의 본색은 야당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이번 지방선거에서 개혁공천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사람을 심으려 하고 있다는 게 친노무현계를 비롯한 반대파들의 주장이다.
새정치연합이 무공천 방침을 철회하기 전 무소속으로 나서야 했던 기초단체장 후보들은 안 대표와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길게 서기도 했다. ‘기호 2번’을 내세우기 힘든 상황에서 안 대표와 찍은 사진으로 표심을 파고드는 이른바 ‘안심 마케팅’을 위해서였다.
지방자치는 생활정치여야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당파성이 정치인의 본령이라고 했다. 정치인의 목적은 권력을 잡는 것이고, 이를 위해선 비슷한 이념을 가진 사람들끼리 편을 가르는 당파성은 정치의 필수조건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거물 정치인을 내세워서라도 선거에 이기고 볼 일이라는 후보들의 심정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베버가 말한 당파성은 한국의 계파정치와는 성격이 다르다. 계파정치는 이념적 성향보다는 유력 정치인을 중심으로 뭉친 사적 이익 추구 성격이 짙다.
지방자치는 진영논리보다는 생활정치 성격이 강해야 마땅하다. 때문에 지방선거에까지 중앙정치가 끼어들어 ‘박심’ ‘안심’ 논란이 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초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을 수족 다루듯이 하는 국회의원들의 특권 의식이 끼어들어 지방자치가 중앙정치에 예속돼선 안된다는 얘기다. 우리보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더 발달돼 있다는 일본은 기초단체장 99.8%, 기초의원 72%가 무소속이다.
후보자들도 자치에 걸맞게 유력 정치인의 이름을 팔아먹는 데서 벗어나 ‘내 그림’을 보여줘야 한다. ‘박심’ ‘안심’이란 완장을 차고 중앙정치 권력에 기대지 말고 ‘내 브랜드’로 유권자에게 다가가야 한다. 지방자치제가 시행한 지 내년이면 20년째가 된다. 자기 경쟁력이 아닌 누구의 후광에 기대 당선을 바라는 것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본령이 아닐 것이다.
홍영식 정치부장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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