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이달 초 대회에서 다친 손목을 치료하기 위해 잠시 귀국한 상태였다. 사고를 본 노승열은 충격에 사로잡혔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아픔을 안고 다시 미국으로 떠났다. 그런 그가 PGA투어 첫 승을 올리며 국민들에게 슬픔을 딛고 일어서자는 ‘해피 에너지’ 메시지를 전했다.
노란리본 달고 경기…‘세월호 아픔’ 생각하며 분발
노승열은 28일 미국 루이지애나주 애번데일의 루이지애나TPC(파72·7399야드)에서 열린 대회 마지막 날 4라운드 합계 19언더파 269타로 미국의 앤드루 스보보다와 로버트 스트렙을 제치고 2012년 PGA투어 입문 후 2년 만에 첫 승을 올렸다. 최경주, 양용은, 배상문에 이은 네 번째 한국인 PGA 챔피언이자 한국인 최연소 PGA 우승 기록도 세웠다.
노승열은 우승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모든 한국민들이 예기치 못한 참사에 깊은 슬픔에 잠겼고 온 나라가 애도하는 분위기에 휩싸였다”며 “더 열심히 해서 미력하나마 실의에 빠진 한국 국민들에게 ‘해피 에너지’를 전달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대회 기간 내내 모자에 검은 리본과 노란 리본을 달고 뛴 노승열은 시종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경기를 치렀다. 이번주 처음으로 노승열과 호흡을 맞춘 새 캐디 스콧 새즈티낵(호주)은 “이번주 내내 노승열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며 “마지막날에도 전혀 흔들림이 없었고 100%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고 전했다.
미국 PGA투어 공식 홈페이지는 “다른 모든 선수들이 마지막날 강풍이 불자 흔들렸지만 노승열만이 예외였다”며 “마치 투어 경력 10년의 베테랑 선수 같았다”고 평했다.
지난해 시드 잃었다가 막판에 기사회생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를 따라 골프채를 잡은 노승열은 중학교 3학년 때인 2006년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2007년 프로로 전향한 그는 2008년 아시안투어 대회인 미디어차이나클래식에서 정상에 오르며 그해 아시안투어 신인상을 받았다. 2010년에는 아시안투어와 유럽투어가 공동 개최한 메이뱅크 말레이시아오픈에서 역대 두 번째 최연소인 18세 282일의 나이로 우승했고 아시안투어 최연소 상금왕에 등극했다.
노승열은 두 번째 도전 만에 퀄리파잉스쿨을 통과해 2012년 꿈의 PGA투어 무대에 진출했다. 그해 ‘톱10’에 다섯 차례 들며 상금랭킹 49위에 올라 빠르게 적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지난해엔 상금랭킹 160위로 추락하며 시드를 잃고 말았다. 짐을 싸 한국으로 돌아와야 할 상황에서 그는 2부투어인 웹닷컴투어 파이널 대회에서 우승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노승열은 “지난해 부진해 많은 것을 배웠고 멘탈이 강해졌다”며 “어떤 상황도 두렵지 않게 됐다”고 강조했다.
아버지는 ‘골프대디’…양용은은 친형같은 존재
노승열의 골프 인생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아버지 노구현 씨(51)다. 노씨는 어릴 적 노승열의 캐디백을 직접 메는 등 열성적인 ‘골프 대디’였다. 그는 건강 상태가 나빠져 고려대 안암병원에 입원했을 당시 투병 중이던 다른 환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노승열에게 전해 적지 않은 금액을 기부하게 했다. 누나 승은씨(25)는 남동생의 매니저를 자청, 투어를 따라다니며 식사는 물론 심리적인 면에서 큰 힘이 됐다.
투어 동료인 양용은은 노승열에게 친형 같은 존재다. 양용은은 마지막날 오후 6시30분(현지시간) 비행기를 타려고 골프장에서 공항으로 떠났다가 노승열의 우승을 축하하기 위해 부랴부랴 다시 돌아와 18번홀 그린에서 위창수와 함께 맥주 세례를 해줬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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