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중독자, KTX 운전 가능…면허 기준도 논란
[ 김재후 기자 ]
세월호 참사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여객선으로 사용할 수 있는 선박의 연령 제한이 폐지됐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철도 분야에서 훨씬 더 많은 안전 규정을 삭제하거나 완화한 것으로 드러났다. 규제완화 취지를 이해한다 하더라도 승객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까지 무력화해 버렸다는 지적이다.
◆철도-전철 내구연한 삭제
28일 국회와 정부 등에 따르면 2012년 정부(당시 국토해양부)는 철도 안전과 관련된 법 규정을 대거 삭제하거나 완화한 철도안전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 잇따라 통과시켰다. 이 가운데 철도 운전면허 발급 금지 대상에서 경미한 정신 질환자와 알코올 중독자, 마약 중독자 등을 제외시킨 것이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개정안 제11조는 당초 ‘정신병자, 정신미약자·간질병자’ 등으로만 돼 있던 면허 발급 금지 대상을 ‘철도차량 운전상의 위험과 장해를 일으킬 수 있는 정신 질환자 또는 뇌전증 환자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한 사람’으로 바꿨다. 시행령엔 ‘해당 분야 전문의가 정상적인 운전을 할 수 없다고 인정하는 사람’으로 모호하게 규정했다. 당시 정부는 입법 취지에서 “경미한 정신 질환자 및 마약·알코올 중독자에게 면허취득 기회를 부여해 장애인의 사회 참여와 자립을 도모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또 개정안에서 철도차량의 내구연한 규정(37조)도 삭제했다. 당초 개정 전 철도안전법 37조는 “철도 운영자 등은 국토해양부령으로 정하는 내구연한을 초과한 철도차량을 운행할 수 없다”고 규정한 뒤 시행규칙에 철도차량 내구연한을 고속철도 30년, 일반철도 20~30년으로 정해놓았었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이 같은 조항들을 없애면서 전체 78쪽의 분량의 입법 취지서에 단 한마디의 설명도 적지 않았다.
이 같은 법개정 영향을 받아 도시철도법도 전철에 대한 내구연한 조항(22조)이 비슷한 시기에 삭제돼 올해 3월19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현재 수도권에서 운행되는 광역철도차량 6024대 가운데 20년 이상이 지난 노후차량은 881대(14.6%)에 이르고 있다. 철도업계 한 전문가는 “당시 정부가 무슨 의도로 이처럼 파격적인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인지 모르겠다”며 “선령 제한 철폐로 일본에서 18년을 운항한 세월호가 국내에 들어와 대형 참사를 빚은 것이 오버랩된다”고 말했다.
◆선박 적재 규정도 대폭 완화
여객선도 세월호 침몰 전 정부의 안전 조치에 대한 법 규정 완화가 잇따랐다. 정부는 컨테이너승인판을 부착하지 않고 선박에 컨테이너를 적재할 경우 1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을 매기던 선박안전법의 제재 규정을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로 완화했다. 이 법안은 2009년 국회에서 통과됐다. 세월호가 규정보다 세 배가량 많은 컨테이너 등 화물을 실을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처벌 규정이 약화된 데 따른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또 지난해는 안전검사 사업자가 해양수산부 장관의 안전검사 관련 자료제출 명령을 거부할 경우 처벌 수준을 완화했다. 당초 영업정지와 과태료 처분을 동시에 내리던 것에서 둘 중 하나만 선택적으로 적용하는 방향으로 선박안전법을 개정한 것. 당시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소속 관계자는 “여야 간 큰 이견 없이 통과됐지만 지금 시각으로 보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안전 규제를 풀어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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