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고객+지역사회+국가
유한킴벌리 대표사례
일방적 투자나 기부활동
수혜자·기업 모두 만족 못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 위해 공유가치창출 필요한 것
당사자간 서로 도울 수 있는 사업적 관계 형성되기도
경영혁신은 패션과 같아서 유행에 민감하다. 기업 내부의 토양이 변하고 외부 환경이 바뀔 때마다 기업은 새로운 경쟁력 요소를 갖춰야 한다. 고객만족경영과 6시그마경영 이후 우리 기업은 어떤 혁신 전략을 갖고 있을까. 최근 의미 있는 이슈 중 하나가 ‘공유가치(CSV)경영’이다. 공유가치경영학회에 따르면, ‘공유가치경영은 주주이익의 극대화뿐만 아니라 고객, 직원, 협력업체, 지역사회, 국가 등 기업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이익까지 생각하는 경영’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대부분의 기업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에 관심이 많다.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은 기업의 이미지를 좋게 해 직원들의 자긍심을 키워주고, 브랜드 가치가 높아지면서 주가에까지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일부 기업을 제외한 사회공헌활동은 주변 시선을 의식하는 일회성 행사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기업이 일방적으로 투자하는 기부활동으로는 더 이상 기업과 수혜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 투자 대비 생산성을 고려해야 하는 기업 활동은 자발성을 전제로 하지 않을 때 지속적 활동을 기대하기 어렵다.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은 소극적인 역할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방향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CSR을 제대로 실천하고자 하는 기업은 ‘성과 달성’과 ‘사회적 책임’이라는 두 마리 토끼의 사냥 방법론이 필요해졌다.
# CSV는 성과달성·사회적책임 동시추구
공유가치경영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공유가치 창출로 각자의 목표를 달성’하는 공유가치경영의 핵심은 다자간 이익 목표를 추구한다는 데 있다. 지금까지는 기업 이익을 중심으로 생각했지만 이제는 고객과 직원, 협력회사, 지역사회, 국가의 이익도 동시에 생각해야 한다.간혹 CSV를 CSR의 상위 개념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CSR과 CSV는 수준의 높고 낮음으로 비교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공유가치창출(CSV)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위해 필요하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지속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공유가치경영(CSV+Management)’으로 시스템화할 필요가 있다.
공유가치경영이란 ‘공유가치창출(CSV)’을 ‘관리(Management)’한다는 의미다. 본래 ‘Management’는 ‘관리’로 번역된다. ‘Quality Control’을 ‘품질통제’가 아닌 ‘품질관리’라고 번역한 일본의 표기법을 그대로 쓰다 보니 ‘Quality Management’를 ‘품질경영’이라고 쓰게 되었다. 이후부터는 ‘Management’를 ‘경영’이라 해석하게 됐다. 문제는 ‘경영’이란 용어의 의미가 애매해서 쓰는 사람마다 해석이 다르다는 것이다. 반면에 ‘관리’의 의미는 명확하다. 한마디로 ‘예측가능’이라고 할 수 있다. ‘재무관리’란 회사의 현금 부족을 예측해 문제를 방지하는 것이고, ‘인사관리’란 회사원이 언제 퇴직할지를 알고 대안을 수립하는 것이다. ‘공유가치경영’의 의미는 기업과 기업의 이해당사자인 고객, 직원, 협력회사, 지역사회, 국가가 함께 가치를 창출해 서로의 목표를 달성한다는 데 있다.
공유가치경영을 제대로 추진하면 이해당사자 간에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업적 관계가 만들어진다. 구매력 있는 커피회사가 영세한 커피농장주에게 정상적인 시장가로 원료를 구입하면 사회공헌이라고 할 수 있지만, 커피를 재배하는 선진기술을 교육시켜 품질을 높이고 생산성을 올리는 데 도움을 주면 더 좋은 조건의 커피를 공급받을 수 있게 된다. 한국암웨이는 제품력은 뛰어나지만 판매채널이 없는 협력회사에 글로벌 채널을 통한 마케팅 기회를 제공, 협력회사의 매출 향상에 도움을 주고 있다. 협력회사가 성장하면서 고품질의 제품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게 돼 회사에도 도움이 되는 공유가치경영의 실천사례다.
# 경주 최부자집·유한킴벌리 대표 사례
CSV란 용어는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가 2011년 1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서 ‘공유가치창출(Creating Shared Value)’을 언급한 이후 사용됐지만 공유가치를 경영관점에서 실천한 것은 대한민국이 원조다. 1600년대 초 경주에서 가문을 일으킨 최진립 선생부터 이어져 내려온 ‘경주 최부자집’ 300년 역사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매우 드문 CSV 경영 사례다. 흉년이 되면 소작인들에게 소작료를 줄여주고,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하며, 병든 지역주민에게는 쌀을 나누고 병을 고쳐주었다. 12대 마지막 부자 최준 선생은 일제 강점기 대한민국임시정부에 거액의 군자금을 대고 해방 후에는 지금의 영남대 전신인 계림대와 대구대에 전 재산을 기증했다. 경주 최부자집의 경영철학은 ‘기업+직원+고객+지역사회+국가’라는 이해관계자의 공유가치창출과 경영목표 달성을300년 이상 지속적으로 실천한 ‘공유가치경영’ 그 자체다.
근래에도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유한킴벌리는 1984년부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일회적인 기부나 자선이 아니라 ‘기업+고객+지역사회+국가’라는 이해관계자의 공동가치창출을 통한 기업목표 달성 방식으로 성과를 거두었다. 다음은 이 회사 홈페이지에 소개된 내용이다. ‘유한킴벌리는 1984년부터 국내 황폐화된 산림 복구의 중요성을 확인하고 이를 위해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을 전개하며 나무를 심고 숲을 가꾸는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을 통해 지난 29년 동안 생태환경보존을 위한 국·공유림 나무심기, 숲가꾸기, 자연환경 체험교육, 숲·생태 전문가 양성, 연구 조사, 해외 사례연구 등 숲을 중심으로 하는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건강한 숲 조성을 목적으로 국·공유지에 720만여 그루의 나무를 심었으며, 1867만여 그루를 대상으로 천연림 보육, 어린나무 가꾸기, 솎아베기 등의 숲 가꾸기 사업을 실시하였습니다. 또한 자연 환경적으로 우리나라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치는 북한, 몽골 등 인접국가의 숲 복원을 위해 2094만여 그루의 나무를 심고 가꾸어 오고 있습니다.’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이 활발해졌음에도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각은 별로 좋아지지 않았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한국 경제를 장기적인 저성장의 시대로 들어가게 만들었다. 이로 인한 사회 불균형의 문제는 더 심화됐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최저소득층 20%와 최고소득층 20%의 월 소득은 최근 10년 동안 5.3배에서 5.7배로 벌어졌다. 소득의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 것은 비단 한국 사회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더 많이 요구하고 있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보다 시스템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CSV 경영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이유다.
김길환 < 한국마케팅협회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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