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3월10일 코스닥 종합지수가 도달했던 역대 최고치다. 14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넘볼 수 없는 기념비적 숫자가 됐다. 소위 말하는 ‘리즈시절(전성기를 뜻하는 인터넷 용어)’이다.
코스닥 종합지수는 ‘닷컴버블’이 걷히면서 촉발된 주가 폭락과 대형 상장사 이탈로 시가총액(주식을 시가로 표시한 금액)이 쪼그라들면서 두 번 다시 이 고지를 밟지 못했다.
지수는 현재 500선 중후반에 머물러 있고, 시가총액은 코스피 대비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코스피 ‘2부 리그’라는 비아냥 섞인 꼬리표가 달린 지 오래다.
그런데 코스닥시장 재건에 대한 기대감이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달 15일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가 공동으로 발표한 코스닥시장 실질 분리·운영 방안 덕분이다.
금융당국이 발표한 내용은 이렇다. 빈껍데기 신세가 된 코스닥시장위원회를 법률에 근거한 특별위원회로 재편하고, 위원회에 사업계획·예산 등을 결정할 수 있는 실질 의사결정권을 부여하겠다는 것. 코스닥시장위원회에 힘을 실어 코스닥의 독자적 운영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 소관이었던 상장위원회(상장심사), 기업심사위원회(상장폐지)도 코스닥시장위원회로 이관하고, '기술평가 상장특례' 제도를 손질해 기술력을 인정받은 기업에 대해서는 상장 문턱도 대폭 낮출 방침이다. 기대효과는 상장을 통한 투자자금 회수 활성화다.
코스닥 실질 분리·운영은 코스닥시장의 기업공개(IPO)가 지속적으로 줄어 중소·벤처기업 전문시장이라는 본래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판단에서 비롯됐다.
금융당국이 코스닥시장 침체를 우려하고, 개선 방안을 마련한 것은 반길 일이다. 하지만 벤처투자업계의 투자자금 회수가 활성화 된다고 시장 전체가 활기를 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시장 침체의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 데 있다는 게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황세훈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코스닥시장은 정상적인 투자자 구성이 이뤄지지 못한 개인 중심 시장이 됐고, 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가 고착화됐다”며 “이러한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코스닥을 떼 내는 것보다 잃어버린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게 먼저”라고 강조했다.
코스닥 기업 정보를 다양한 채널을 통해 더 많이 제공하고, 불성실 공시 법인에 대한 처벌도 강화해 투자자들을 정보 비대칭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게 더 중요한 문제라는 얘기다.
코스닥이 거래소와 통합된 지난 2005년 1월 이후 관리종목 지정 건수는 458건. 이중 358건(78.16%)이 코스닥 종목이다. 불성실공시법인 지정 건수 665건 중 470건(70.67%)도 코스닥 상장사와 관련이 있다.
아직도 코스닥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굳건하지 못한 이유다. 코스닥의 한계에 발목 잡히기 싫어 코스피로 둥지를 옮긴 상장사들도 수두룩하다.
코스피 상장사와 비교할 때 증권사들이 내놓은 코스닥 상장사들의 분석 보고서가 턱없이 부족하고, 신용평가회사로부터 신용등급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코스닥 상장법인은 넘쳐난다. ‘큰 손’들의 복귀를 가로막는 또 다른 요인이다.
‘닷컴붕괴’ 당시 잃었던 신뢰를 회복해 기관과 외국인들이 ‘믿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코스닥시장이 온전한 시장 지위를 갖추도록 하는 게 급선무다.
미국 나스닥의 '영광'을 꿈꾸는 건 희망적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 나스닥 만큼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췄는지도 되짚어 볼 일이다.
한경닷컴 정혁현 기자 chh0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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