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이어 스마트폰 정체…'한계 돌파' 위해 인사 단행
능력 입증하면 사장 승진
[ 김현석 기자 ] ‘사장으로 승진하느냐, 아니면 무대에서 사라지느냐.’
요즘 삼성전자 임직원 사이에 해외 영업 현장을 뛰는 부사장과 전무급 ‘지역총괄’을 두고 이런 얘기가 심심찮게 나돈다. 지역총괄 생존게임으로 포장돼 떠돌기도 한다. 회사를 대표해 글로벌 영업 현장을 지휘하는 10명의 지역 총괄법인장(이하 총괄) 중 7명이 최근 5개월 새 전격 교체되면서부터다.
삼성전자는 실적이 조금이라도 목표에 못 미치면 가차 없이 교체 인사 카드를 꺼내들고 있다. 해외 영업을 통해 매출의 90%를 버는 삼성전자로서는 ‘주마가편(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위한 인사지만, 영업 최전선에서 뛰고 있는 총괄들은 ‘졸면 죽는’ 벼랑 끝에 서 있는 형국이다.
○오직 실적으로 평가받는다
삼성전자는 지난 1일자로 이상철 중남미총괄법인장(부사장)을 독립국가연합(CIS)총괄로 이동시키고, 신규 중남미총괄에 김정환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전무를 임명했다. CIS총괄이던 전성호 부사장은 해외연수를 가게 됐다. 지난해 12월 정기 인사에서 한국 유럽 동남아 중동 북미 등 5곳의 총괄을 교체한 데 이어 이번에 수시 인사를 통해 중남미, 러시아까지 바꾼 것이다.
삼성이 이처럼 지역총괄을 거세게 압박하는 것은 스마트폰을 비롯한 주력 제품의 성장이 정체하자 ‘한계 돌파’를 위해 채찍질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이다.
삼성전자는 국내를 비롯해 북미, 유럽, 중남미, 동남아, 중국, CIS, 중동, 아프리카, 서남아 등 세계를 10개 지역으로 나눠 총괄법인을 두고 있다. 이들 총괄법인을 맡는 법인장은 마케팅과 영업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로 통상 ‘총괄’로 불린다. 매출이 많은 지역은 부사장이, 상대적으로 적은 곳은 고참 전무가 맡는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해외총괄은 지역별로 회사를 대표하는 영예로운 자리이면서 최고위 임원 승진을 앞두고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영업력을 검증받는 시험대”라고 말했다.
이번에 CIS 지역을 맡은 이상철 부사장은 2012년 말부터 중남미에서 1년반 동안 냉장고와 스마트폰 등의 시장 점유율을 대폭 높였다. 작년 중남미 냉장고(프렌치도어)와 스마트폰 시장에서 각각 58%와 55%라는 높은 점유율을 기록했으며 TV(35%) 태블릿(40%) 노트북(18%)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회사 측이 부사장인 그에게 전세기를 상시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반면 CIS총괄에서 물러나 연수를 떠나는 전성호 부사장은 2009년 전무, 2012년 부사장 등으로 승승장구했으나 결국 유통망이 복잡한 것으로 알려진 현지 영업의 벽을 넘지 못했다. 외부 환경 악화로 낙마한 사례도 있다. 작년 말 한국총괄에서 물러난 백남육 부사장의 경우 국내 통신사에 대한 보조금 규제와 영업정지 탓에 휴대폰 영업을 제대로 할 수 없었지만 결국 자리를 떠나야 했다.
○살아남으면 승승장구
삼성전자 최고위 임원 중에는 ‘총괄’ 자리에서 능력을 입증한 사람이 많다. 영업의 최종 시험대인 총괄을 거쳐 살아남으면 승승장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삼성전자 내 가장 큰 사업부인 무선사업부에서 마케팅을 총괄하는 이돈주 전략마케팅담당 사장이 대표적이다. 미국과 러시아 영업통인 이 사장은 2007~2008년 CIS총괄을 맡았다. 눈에 띄는 실적을 올린 그는 무선사업부로 복귀, 갤럭시S 시리즈를 성공시켰고 2012년 말 사장으로 승진했다. 현재 사업부장인 신종균 사장의 뒤를 이을 수 있는 인물로 꼽힌다.
박광기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영상전략마케팅팀장도 아프리카총괄 때 강력한 리더십을 인정받았다. 2009년 초대 아프리카총괄을 맡아 4년 넘게 현지에서 영업망 토대를 깔았다. 2010년엔 1년 동안 마케팅을 위해 43개국을 직접 찾는 등 강행군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6월 동남아총괄로 옮긴 그는 작년 말 부사장으로 승진하며 본사로 옮겨와 글로벌 1위인 TV 영업을 맡고 있다.
작년 말까지 유럽총괄을 맡았던 김석필 부사장도 매출을 크게 늘린 공을 인정받아 삼성전자가 최근 중점 육성 중인 B2B센터장과 글로벌마케팅실장을 겸임하고 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