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 용선계약 털어내고 포스코 등 주요고객 되찾아
새 주인 찾기 빨라질 듯
[ 이상은 기자 ] 지난해 6월7일, 서울 후암로 STX남산타워는 팬오션(당시 STX팬오션)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신청으로 시끄러웠다. 불과 이틀 전 산업은행에서 팬오션을 인수할 수 없다는 최종 통보가 왔고, STX그룹은 해마다 손실을 거듭하는 이 회사를 감당할 방법이 없었다. 국내 1위 벌크선사인 팬오션의 법정관리 신청은 해운업계 전체에 큰 충격을 줬다.
하지만 1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팬오션이 정상화의 기틀을 마련해 해운업계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부실을 털어낸 데다 업황 회복으로 영업이익 등 실적이 급속히 개선되고 있어서다. 회사 관계자와 채권단이 당초 예상한 것보다 이익이 두 배 이상씩 증가하는 추세다. 컨테이너선 비중이 높은 한진해운 현대상선 등 1~2위 해운사들이 아직 구조조정을 진행 중인 것과 대조적이다.
○“연간 목표, 상반기에 80% 달성”
팬오션은 지난 1분기에 3억2960만달러(3384억원)의 매출과 3688만달러(378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고 7일 밝혔다. 1월에 865만달러의 영업이익을 내 약 2년반 만에 흑자전환(턴어라운드)했고, 2월에는 1272만달러, 3월엔 1550만달러로 이익 규모가 커졌다. 4월에도 1500만달러 이상의 영업이익을 낸 것으로 회사 측은 추정했다.
팬오션은 내부적으로 1분기 영업이익이 1520만달러 정도일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한 달치 영업이익이 그 정도였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올초에는 팬오션의 연간 영업이익이 1억달러 정도일 것이라고 봤는데 생각보다 실적이 좋아서 상반기 중에 연간 이익 목표치의 80% 이상을 달성할 것 같다”고 말했다. 팬오션 관계자는 “10년 넘게 적자를 내던 컨테이너선 영업본부를 비롯해 모든 영업본부가 이익을 실현했다”고 설명했다.
○BDI지수 상승하면 흑자 더 늘 듯
팬오션의 영업이익이 예상보다 빨리 증가한 원인은 벌크선운임지수(BDI)가 올초 2000 이상으로 깜짝 급등했기 때문이다. 팬오션은 130여척의 배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 중 상당수를 특정 계약에 묶이지 않고 그때 그때 배를 빌려주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BDI지수가 올라가면 곧바로 이익이 증가하는 구조다. BDI지수는 등락을 거듭하며 지난 6일에는 1022로 떨어졌지만, 장기적으로는 상승세를 탈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팬오션 관계자는 “BDI가 1000 이상이면 손실은 보지 않는다”며 “BDI가 300씩 올라갈 때마다 영업이익이 1000만~2000만달러씩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법정관리라는 강력한 처방으로 고가의 장기용선 계약을 한꺼번에 털어낸 것도 턴어라운드의 직접적 원인 중 하나다. 팬오션이 업황을 잘못 예측하고 체결한 고가의 장기용선 계약 규모는 81척, 약 33억달러(3조6000억원)에 달했는데 법정관리에 따라 이 계약을 거의 모두 다 이행하지 않게 됐다. 팬오션 관계자는 “계약대로 용선료를 계속 지급했더라면 손실이 더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작년 11월 회생계획안 인가 이후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주요 화주들이 팬오션에 다시 물량을 주기 시작한 것도 영업이익 증가에 한몫했다.
○‘새 주인 찾기’ 순항할까
팬오션의 정상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업계에선 이 회사의 새 주인 찾기도 비교적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법원은 이르면 다음달께 팬오션 매각 공고를 낼 예정이다.
팬오션은 지난 3월 초 매각주관사로 삼일PwC회계법인을 선정했다. 정부도 이 무렵 발표한 인수합병(M&A) 활성화 방안을 통해 대량 화물 화주가 구조조정 중인 해운사를 인수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포스코 현대자동차 한국전력 등이 팬오션을 살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국내 대기업 가운데 해외 수출입 물량이 많은 회사들이 팬오션 인수에 관심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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