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돈 안드는 렌털의 '불편한 진실'

입력 2014-05-07 21:32   수정 2014-05-08 04:02

이슈 포커스

2013년 시장규모 12조…고가제품 싸게 쓰지만 결국은 가계빚

3년 의무사용 후드 해약시 위약금이 판매가에 육박
월 3만2000원 정수기 5년 쓰면 총비용 202만원



[ 안재광 기자 ] 서울 문래동에 사는 주부 최세아 씨는 정수기와 공기청정기 연수기 등을 집에서 쓴다. 2년 전 결혼과 함께 정수기 렌털을 시작했는데, 지난해 태어난 아들이 아토피 증세가 있어 공기청정기와 연수기도 들여다 놓았다. 최씨는 렌털료로 월 10만원 넘게 내고 있다.

한국렌털협회에 따르면 2008년 4조5000억원 수준이던 국내 렌털시장 규모는 2012년 10조2000억원을 기록했다. 한국렌털협회 관계자는 “최근 추세를 감안하면 작년 시장 규모는 12조원을 넘어섰을 것”으로 추정했다.

○전체 렌털비용 따져봐야

코웨이가 지난해 말 한국갤럽에 의뢰해 조사한 렌털 제품 보급률은 정수기 57.4%, 비데 41.5%, 공기청정기 21.9%였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렌털이 ‘비싼 제품을 값싸게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동시에 ‘매달 갚아나가야 하는 큰 빚’이기도 하다. 당장 현금이 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중장기적으로 보면 훨씬 많은 비용을 치러야 한다. ‘렌털은 숨은 가계부채’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예컨대 국내 1위 렌털 기업인 코웨이 정수기(모델명 CP-07BLO)의 월 렌털료는 3만2000원(등록비 10만원 별도)이다. 의무가입기간(2년)을 다 채워 쓰면 2년간 86만8000원을 내게 된다.

2년을 쓰면 중도 해지수수료를 부담하지 않고 정수기를 반환할 수 있고, 5년을 쓰면 소유권을 넘겨받는다. 이 기간에 정기적으로 점검을 받으며 정수기를 쓸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5년간 렌털 서비스 비용으로 등록비를 포함해 202만원을 내야 한다.

○렌털업체, 1년 후 이익 발생

코웨이 분석보고서를 최근 발간한 우리투자증권에 따르면 코웨이는 이 정수기 모델의 제조원가와 ‘코디’(방문판매사원)에게 지급하는 판매수당, 설치수수료, 부품값, 기타 변동비 등으로 총 27만2085원을 일시에 지출해야 한다.

정수기를 설치한 첫 달 코웨이는 고객으로부터 등록비(10만원)에서 부가가치세를 제외한 9만909원과 렌털료 3만2000원을 받기 때문에 14만9176원을 밑진다.

하지만 1년쯤 지나면 얘기가 달라진다. 정수기를 설치하고 1년간 유지·관리하는 데 총 37만7363원이 들어가는 반면 렌털료(38만4000원) 및 등록비(9만909원)로 들어오는 현금은 47만4909원이다. 1년이 지난 시점에 코웨이는 9만7546원을 남긴다. 2년째 되는 시점에는 누적 수입이 39만2180원으로 늘어난다. 5년째가 되면 117만원을 넘는다.

물론 이 돈은 다 코웨이가 챙기는 ‘영업이익’이 아니다. 코웨이 본사에서 발생하는 인건비와 광고비, 판촉비, 지점 운영비 등 각종 경비를 이 돈에서 써야 하기 때문이다. 코웨이 관계자는 “렌털로 인한 영업이익률은 전체 매출의 20%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중도 해지 땐 위약금

사용자가 렌털 제품을 중도에 해지하려 해도 ‘의무 사용기간’에는 쉽지 않다. 품목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렌털 업체는 의무 사용기간을 최소 2년으로 정해놓고 있다. 안마의자나 주방후드처럼 덩치가 크고 비싼 제품은 3년 이상으로 계약하는 경우도 많다. 이 기간에 해약하면 남은 계약기간 렌털료의 10~30%가량을 위약금으로 내야 한다.

예컨대 의무사용기간이 3년이고 월 렌털료가 3만6900원인 하츠의 프리미엄 주방 후드 제품을 1년만 쓰고 반납하면 위약금만 잔여달(24개월) 렌털료의 30%인 약 26만원을 물어야 한다. 여기에 철거비(2만원), 원상복구비(약 10만원) 등까지 합하면 36만원이 나간다. 이미 낸 렌털료(44만2800원)까지 합하면 1년 사용료가 약 80만원인 셈이다. 이 제품의 일시불 가격은 100만원 안팎이다.

하츠 관계자는 “정수기 등 수리해서 다시 쓸 수 있는 제품과 달리 후드는 한번 떼내면 재활용이 불가능해 위약금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이동기 서울대 교수는 “가계 입장에서 보면 렌털 서비스는 할부로 물건을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계부채”라며 “전문가가 꾸준하게 관리할 수 없는 물건을 렌털 서비스로 구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안마의자 렌털 후 매출 4배↑…렌털업체 사상최대 실적

렌털 시장에 새로 진입하는 상품들이 많다. 안마의자가 대표적이다. 2011년 홈쇼핑을 통해 렌털 서비스를 시작한 안마의자기업 바디프렌드는 지난해 785억원의 매출을 거뒀다. 렌털을 하기 전인 2010년 매출은 188억원에 그쳤다. 렌털 시장에 뛰어든 이후 3년 만에 매출을 4배 늘린 셈이다. 안마의자 렌털 시장이 급성장하자 한 대기업이 뛰어들었다가 소송전에 휘말리기도 했다.

코웨이는 2011년 침대 매트리스를 렌털 제품으로 내놔 지난해 287억원의 매출을 거둬들였다. 코웨이 관계자는 “일시불 판매(약 87억원)를 합치면 판매량 기준 지난해 국내 매트리스 3위까지 올라섰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서는 음식물처리기가 렌털 제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스마트카라 스핀즈 등 중소 음식물처리기 업체들은 홈쇼핑을 통해 렌털 서비스를 진행하거나 계획 중이다.

렌털업체들의 영업 실적은 매우 좋은 편이다. 코웨이는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다. 매출 1조9337억원에 영업이익 3332억원을 벌었다.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46% 늘었다. 지난해 렌털료를 평균 5.2% 올린 영향이 컸다.

청호나이스는 지난해 3117억원 매출로 처음 3000억원을 넘겼다. 2008년 1810억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5년 만에 72% 증가했다.

교원도 2008년 415억원이었던 렌털 부문 매출이 지난해 950억원까지 급성장하며 두 배 이상 늘었다.

쿠쿠전자(매출 약 5000억원)와 동양매직(약 2000억원) 등 신규로 렌털 서비스에 뛰어든 기업들도 외형을 불리고 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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