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애니멀 / 조너선 갓셜 지음 / 노승영 옮김 / 민음사 / 296쪽 / 2만2000원
[ 서화동 기자 ] 스토리텔링 전성시대다. 이야기를 담는 전통적 매체인 책은 물론 TV, 영화, 게임, 광고, 마케팅, 교육, 스포츠 중계 등 광범한 영역에서 스토리텔링이 주목받고 있다. 심지어 숫자와 공식으로 공부하던 수학 과목도 스토리텔링으로 가르치는 시대다. 그런데 사람들은 스토리텔링에 열광할까. 언제부터 사람들은 이야기를 좋아하기 시작했을까. 스토리텔링의 정체는 뭘까.
미국 워싱턴&제퍼슨칼리지에서 강의하는 영문학자 조너선 갓셜은 《스토리텔링 애니멀》에서 이런 문학적 질문에 대한 과학적 대답을 시도한다. 과학적 인문학 운동의 선두주자로 꼽히는 그는 이 책에서 진화생물학 심리학 신경과학의 최신 연구 성과를 동원해 인간의 스토리텔링 본능을 탐구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수렵과 채집으로 먹고살던 호모사피엔스부터 이야기꾼이었다. 사냥을 하다가도 짬이 나면 모여 앉아 서로 이야기를 들려줬고 상상의 나래를 폈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이야기를 가지고 논다. 배우지 않아도 시나리오를 짜고 연기한다. 상상속에서 위험과 맞서 싸우고 승리를 만끽한다. 어린 시절의 소꿉놀이를 생각해보라. 그런 점에서 이야기는 인간의 본능이다.
저자는 이런 이야기의 필수 요소는 ‘말썽’이라고 설명한다. 픽션은 재미와 쾌감을 주지만 기본적인 소재는 협박 죽음 불안 절망 살인 학살 등 ‘불쾌한 갈등’들이다. 이야기는 주인공이 이런 불쾌한 말썽거리들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재미를 준다. 호그와트마법학교에 들어간 해리 포터가 각종 사건을 일으키지 않고 시키는 대로 공부만 했다면 독자와 친해질 수 있었을까.
이런 이야기를 통해 인간은 삶 속의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얻는다고 저자는 최신 연구 결과를 토대로 설명한다. 심리학자 키스 오틀리 팀이 실험한 결과 논픽션을 즐겨 읽는 사람보다 픽션을 즐겨 읽는 사람의 사회적 능력과 공감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 소설을 즐겨 읽는 이를 ‘세상 물정 모르는 책벌레’라고 예단할 수 없게 하는 연구 결과다.
저자는 “픽션은 삶의 거대한 난제를 시뮬레이션하는 강력하고도 오래된 가상현실 기술”이라며 “픽션 자극에 반응해서 뉴런이 지속적으로 발화(發火)하면 삶의 문제를 능숙하게 헤쳐나갈 수 있는 뉴런 회로가 강화되고 정교해진다”고 분석한다. 스토리텔링은 인간이 가진 생존의 기술인 셈이다.
이야기는 인간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힘도 가지고 있다. 1835년 에드워드 불워리턴이 쓴 소설 ‘리엔치’를 읽은 작곡가 바그너는 이를 오페라로 만들었고, 열여섯살 때 이를 본 아돌프 히틀러는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저질렀다. 순혈 게르만 민족에 대한 히틀러의 그릇된 이상이 바그너의 오페라 리엔치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반대로 19세기 미국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톰 아저씨의 오두막’은 노예제도의 잔학상을 폭로해 미국 북부에서 노예제 폐지론에 불을 붙였다. 미국 남북전쟁 중에 링컨은 이 책을 쓴 해리엇 비처 스토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이 이 거대한 전쟁을 일으킨 책을 쓴 작은 여인이군요.”
일각에서 제기되는 ‘픽션 위기론’ 내지 ‘픽션 종말론’에 대해 저자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한다. 게임 매출이 소설이나 영화를 능가한다고 해서 스토리텔링이 죽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미국에서는 신간 소설이 한 시간에 한 권씩 출간되는데, 해마다 10억달러를 거뜬히 벌어들이는 로맨스 소설의 인기를 능가하는 장르가 있느냐고 그는 되묻는다. 시가 죽은 시대라고 하지만 사실은 노래의 형태로 시가 승리한 시대이며, 인기 있는 비디오 게임도 대부분 이야기 위주라고 낙관론을 편다.
그는 “스토리텔링 기술이 구술에서 점토판으로, 육필 원고로, 인쇄 서적으로, 영화로, TV, 킨들, 아이폰으로 진화할 때마다 비즈니스 모델은 만신창이가 되지만 이야기가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일은 없다”며 “이야기의 흡인력은 몇 곱절로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오히려 ‘이야기 과소비’가 ‘유행성 정신 당뇨병’ 같은 현상을 초래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저자가 “우리의 마음은 이야기꾼”이라며 “우리는 스토리텔링 애니멀”이라고 단언하는 이유다.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터’처럼 잘 만든 한 편의 이야기가 천금을 벌어들이는 세상이다. 문화콘텐츠산업 발전의 선행 요건이며 그 자체가 산업인 이야기의 중요성을 과학적으로 확인해주는 책이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 서화동 기자 ] 스토리텔링 전성시대다. 이야기를 담는 전통적 매체인 책은 물론 TV, 영화, 게임, 광고, 마케팅, 교육, 스포츠 중계 등 광범한 영역에서 스토리텔링이 주목받고 있다. 심지어 숫자와 공식으로 공부하던 수학 과목도 스토리텔링으로 가르치는 시대다. 그런데 사람들은 스토리텔링에 열광할까. 언제부터 사람들은 이야기를 좋아하기 시작했을까. 스토리텔링의 정체는 뭘까.
미국 워싱턴&제퍼슨칼리지에서 강의하는 영문학자 조너선 갓셜은 《스토리텔링 애니멀》에서 이런 문학적 질문에 대한 과학적 대답을 시도한다. 과학적 인문학 운동의 선두주자로 꼽히는 그는 이 책에서 진화생물학 심리학 신경과학의 최신 연구 성과를 동원해 인간의 스토리텔링 본능을 탐구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수렵과 채집으로 먹고살던 호모사피엔스부터 이야기꾼이었다. 사냥을 하다가도 짬이 나면 모여 앉아 서로 이야기를 들려줬고 상상의 나래를 폈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이야기를 가지고 논다. 배우지 않아도 시나리오를 짜고 연기한다. 상상속에서 위험과 맞서 싸우고 승리를 만끽한다. 어린 시절의 소꿉놀이를 생각해보라. 그런 점에서 이야기는 인간의 본능이다.
저자는 이런 이야기의 필수 요소는 ‘말썽’이라고 설명한다. 픽션은 재미와 쾌감을 주지만 기본적인 소재는 협박 죽음 불안 절망 살인 학살 등 ‘불쾌한 갈등’들이다. 이야기는 주인공이 이런 불쾌한 말썽거리들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재미를 준다. 호그와트마법학교에 들어간 해리 포터가 각종 사건을 일으키지 않고 시키는 대로 공부만 했다면 독자와 친해질 수 있었을까.
이런 이야기를 통해 인간은 삶 속의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얻는다고 저자는 최신 연구 결과를 토대로 설명한다. 심리학자 키스 오틀리 팀이 실험한 결과 논픽션을 즐겨 읽는 사람보다 픽션을 즐겨 읽는 사람의 사회적 능력과 공감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 소설을 즐겨 읽는 이를 ‘세상 물정 모르는 책벌레’라고 예단할 수 없게 하는 연구 결과다.
저자는 “픽션은 삶의 거대한 난제를 시뮬레이션하는 강력하고도 오래된 가상현실 기술”이라며 “픽션 자극에 반응해서 뉴런이 지속적으로 발화(發火)하면 삶의 문제를 능숙하게 헤쳐나갈 수 있는 뉴런 회로가 강화되고 정교해진다”고 분석한다. 스토리텔링은 인간이 가진 생존의 기술인 셈이다.
이야기는 인간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힘도 가지고 있다. 1835년 에드워드 불워리턴이 쓴 소설 ‘리엔치’를 읽은 작곡가 바그너는 이를 오페라로 만들었고, 열여섯살 때 이를 본 아돌프 히틀러는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저질렀다. 순혈 게르만 민족에 대한 히틀러의 그릇된 이상이 바그너의 오페라 리엔치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반대로 19세기 미국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톰 아저씨의 오두막’은 노예제도의 잔학상을 폭로해 미국 북부에서 노예제 폐지론에 불을 붙였다. 미국 남북전쟁 중에 링컨은 이 책을 쓴 해리엇 비처 스토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이 이 거대한 전쟁을 일으킨 책을 쓴 작은 여인이군요.”
일각에서 제기되는 ‘픽션 위기론’ 내지 ‘픽션 종말론’에 대해 저자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한다. 게임 매출이 소설이나 영화를 능가한다고 해서 스토리텔링이 죽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미국에서는 신간 소설이 한 시간에 한 권씩 출간되는데, 해마다 10억달러를 거뜬히 벌어들이는 로맨스 소설의 인기를 능가하는 장르가 있느냐고 그는 되묻는다. 시가 죽은 시대라고 하지만 사실은 노래의 형태로 시가 승리한 시대이며, 인기 있는 비디오 게임도 대부분 이야기 위주라고 낙관론을 편다.
그는 “스토리텔링 기술이 구술에서 점토판으로, 육필 원고로, 인쇄 서적으로, 영화로, TV, 킨들, 아이폰으로 진화할 때마다 비즈니스 모델은 만신창이가 되지만 이야기가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일은 없다”며 “이야기의 흡인력은 몇 곱절로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오히려 ‘이야기 과소비’가 ‘유행성 정신 당뇨병’ 같은 현상을 초래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저자가 “우리의 마음은 이야기꾼”이라며 “우리는 스토리텔링 애니멀”이라고 단언하는 이유다.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터’처럼 잘 만든 한 편의 이야기가 천금을 벌어들이는 세상이다. 문화콘텐츠산업 발전의 선행 요건이며 그 자체가 산업인 이야기의 중요성을 과학적으로 확인해주는 책이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