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적성장이 부른 '세월호 참사'
단원고 학생 등 피해자 돕겠다"
[ 박상익 기자 ] “우리가 정이 많은 민족이다보니 감정 이입과 공감을 굉장히 잘합니다. 그래서 함께 우울증에 빠져 있어요. 아직도 참 조심스럽지만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와야 유가족을 더 위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초상집이라고 다 울고만 있을 수는 없지요. 부엌에서 밥을 짓는 사람이 있어야 하듯 경제가 돌아가야 하니까요.”
정신과 전문의 이시형 박사(사진)는 14일 열린 자신의 문인화집 《여든 소년 山이 되다》(이지북 펴냄) 출간기념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양적인 성장이 탐욕에까지 이르러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이제는 국가적 우울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가 새 책을 낸 계기는 나이 여든에 이르러 새로 배운 문인화였다. 이 박사는 “죽기 전에 내가 제일 못하는 걸 해보자 마음먹고 사군자를 배웠는데 잘 되지 않았다”며 “그나마 그릴 수 있는 산·바위·나무를 그리고 글귀를 넣은 것이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이 박사는 김양수 화백으로부터 그림을 배웠다고 했다. “시대가 시대다 보니 그림 그린다는 게 마음을 참 편안하게 해요. 어떨 땐 주말에 그림 그리기 시작하면 온종일 꼼짝도 안 하고 그립니다. 예사롭게 보는 게 아니라 자세히 봐야 하니까 사람도 자세히 보게 되고. 정말 사람이 깊이가 생기더라고요.”
책에 실린 작품은 그의 말대로 화려하거나 기교가 있진 않다. 하지만 책을 펼치면 수묵의 담담함과 복잡하지 않은 화풍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림에 간단한 문구를 넣었고 반대쪽 면에도 짧은 이야기를 따로 실었다. 많은 말 대신 사유의 폭을 넓혀주는 짧은 문장들은 마음을 가다듬기에 좋다.
“생전 해보지 않은 그림을 그리며 세상을 보는 눈이 깊어졌다고 느꼈습니다. 자연이고 인간이고 어느 하나 소홀한 게 없더군요.”
이 박사는 ‘세로토닌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다. 뇌에서 분비되는 ‘행복 물질’인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사람들은 우울증에 빠지고 극단적 선택을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세로토닌과 문인화도 연결해 설명했다. “문인화를 그리면 세로토닌이 충분한 상태가 됩니다. 아주 편안해지고 창조적으로 되고. 이게 바로 힐링, 치유적 예술입니다. 옛날 선비정신이 바로 세로토닌 정신이라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양적 성장이 아닌 질적 성숙을 해야 하는 시대에 세로토닌 정신이 꼭 필요합니다.”
슬픔에 빠진 안산 단원고 학생들을 위한 계획도 소개했다. 그는 몇 년 전부터 큰북을 배운 학생들이 스트레스를 풀고 마음의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 박사는 단원고 측에서 준비가 되는 대로 북을 보내고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해 학생들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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