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엔 1000원대 지키려 '도시락 폭탄'
시장 "당국 새 환율 방어선 1020원선"
[ 김유미 기자 ]
점심시간을 이용한 외환당국의 ‘기습 개입’이 미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을 큰 폭으로 끌어올렸다. 원·엔 환율 1000원대(100엔당) 붕괴에 제동을 걸기 위한 ‘도시락 폭탄’이었다는 분석이다.
1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값은 전일보다 5원80전 하락한(환율 상승) 달러당 1027원90전으로 마감했다. 하루 전인 13일 1022원10전(종가 기준)으로 5년9개월 만에 최고치를 찍은 뒤 하루 만에 큰 폭 내림세로 전환한 것이다. 종가 기준으로는 지난 2일 달러당 1030원30전 이후 최저치다.
원화값 고공행진에 이처럼 강하게 브레이크가 걸린 데엔 외환당국의 강력한 개입이 작용했다. 원화값은 이날 정오 무렵 달러당 1021원30전까지 올라 1020원 선 붕괴 직전까지 갔다. 이때 외환당국으로 추정되는 달러 매수 주문이 한꺼번에 들어왔다. 원화값은 순식간에 달러당 5원 이상 하락폭을 보이며 1027원대로 급락했다.
한 외환 전문가는 “시장 참가자들이 달러를 급박하게 사들일 이유가 없는 상황이었던 만큼 정부의 시장 개입이 분명한 것 같다”며 “시장이 한산한 점심시간에 기습적으로 들어와 환율 방어 의지를 극대화하는 효과를 노린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당국이 이날 사들인 달러화는 10억달러를 넘는다는 관측이다.
지난달 초 달러당 1050원 선이 붕괴한 뒤 시장에서는 외환당국의 ‘환율 방어’ 의지가 관심사였다. 글로벌 달러 약세와 경상수지 흑자로 원화값이 뛰면서 수출경쟁력에 비상등이 켜졌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잇따라 구두 개입에 나섰지만 원화값 상승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러던 외환당국이 이날 눈에 띄게 시장 개입에 나선 계기로는 엔저 우려가 꼽힌다. 지난 13일 원·엔 환율은 100엔당 1000원 선이 무너지며 998원대까지 내렸다(원화값 상승). 김성순 기업은행 자금운용부 팀장은 “엔·달러 환율 102엔이 유지되는 가운데 원·엔 환율 1000원대를 지키려면 원·달러 환율이 1020원 이상이어야 한다”며 “시장에서도 당국의 새 방어선을 1020원 선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원·엔 환율은 오후 3시40분 현재 오전 6시보다 6.69원 오른 100엔당 1006.19원을 나타냈다.
외환당국의 점심시간 기습 개입은 과거에도 있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시장의 경계심이 덜한 점심 때 달러를 집중적으로 풀기도 했다. 또 다른 외환시장 참가자는 “오랜만에 나온 외환당국의 ‘도시락 폭탄’이 달러 매도에 쏠리던 시장 분위기를 바꿨다”며 “하지만 글로벌 달러값이 본격적으로 오르기 전까지는 원화 강세를 막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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