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말로만 공모제'도 수술하라

입력 2014-05-19 20:37   수정 2014-05-20 05:34

하영춘 금융부장 hayoung@hankyung.com


박근혜 대통령이 머리 숙여 사과했다. 세월호의 의로운 희생자들 이름을 호명하면서는 눈물까지 흘렸다. 해양경찰청을 해체하겠다는 등의 대책도 발표했다. 퇴직 관료의 취업제한 대상 기관 수를 3배 이상 확대하고, 퇴직 후 취업제한 기간도 3년으로 늘리는 등 이른바 ‘관피아(관료+마피아)’ 폐해 척결방안도 내놓았다.

안전감독·인허가 규제·조달업무 등과 직결되는 공직 유관단체와 각종 조합 및 협회에까지 관료들이 나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관료들로선 당혹스러울 일이지만, 반응은 애써 담담하다. “이미 예상했던 조치”라는 반응이 많다.

낙하산 통로로 전락한 공모제

그렇다면 관피아의 폐해가 정말 척결될 수 있을까. 민간의 반응은 ‘글쎄올시다’다. 관료들이 얼마 동안은 쥐 죽은 듯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낙하산 본능’을 되찾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퇴직 후 3년이 지난 선배를 대신 내려 보내는 ‘쿠션 인사’가 나타날 것이란 전망도 있다. 당장은 관료들이 비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정치권 등의 압력이 더 거세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이를 위한 통로로 공기업 사장 공모제를 꼽는 사람이 많다. 공모제는 낙하산 인사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김대중 정부 때인 1998년 도입됐다. 공기업은 물론 금융지주사 등 주인 없는 회사 대부분이 실시하고 있다.

취지는 더없이 좋지만, 실제로는 ‘낙하산에게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한 제도’로 전락했다는 평가가 많다. 공모를 실시하기 전부터 내정자 이름이 나돈다. 뚜껑을 열어보면 틀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 행여 내정자가 후보에 포함되지 않으면 재공모를 하도록 한다. 공기업만이 아니다. 주인 없는 회사가 수두룩한 금융회사나 금융 관련 단체의 최고경영자(CEO)를 선출할 때도 비슷하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그렇다. 한국도로공사는 작년 정부의 지시로 재공모를 거쳐 정치권 인사를 사장으로 선출했다. 한국거래소는 떠들썩한 공모절차를 거쳤으나 결국 내정자로 거론되던 관료 출신을 이사장으로 뽑았다.

없애든지, 정부가 손을 떼든지

정부와는 관련 없는 자본시장연구원의 원장 선출 때는 추천위원장과 다른 후보들이 한꺼번에 사퇴하는 해프닝도 빚어졌다. 업계 사장들이 뽑게 돼 있는 손해보험협회장은 정부의 ‘사인’이 없어 9개월째 공석이다.

대형 금융지주사 회장도 마찬가지다. 작년 온갖 말들을 낳았던 KB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NH농협금융지주 회장 선출도 결국은 ‘예상’대로 마무리됐다.

이렇게 보면 지금의 공모제는 허울뿐이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비겁한 제도다. 이젠 좀 솔직해지자. 업무상 정부가 경영해야 할 공기업에 대해선 당당하게 주주권한을 행사해도 무방하다. 퇴직관료를 보내도 된다. 다만 그 사람이 왜 그 자리의 적임자인지는 설명해야 한다.

하지만 공모제를 실시하는 곳에서는 아예 손을 떼야 한다. 공모제 취지에 맞게 가장 적임자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게 맞다. 정부 지분이 없는 협회나 금융회사는 CEO를 어떻게 뽑든지 상관하지 않는 게 상책이다. 대신 감독 잣대를 엄하게 적용해 그들의 일탈을 제어하면 된다. 그래야만 국가개조 노력이 결실을 얻을 수 있다.

하영춘 금융부장 ha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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