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해당社 독점공급 묵인
소방본부 "성능 좋아 문제없다"
일반업체 "짜고 치는 고스톱"
[ 윤희은 기자 ]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안전장비와 구조장비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소방본부 등 일부 기관이 특정 업체를 염두에 둔 입찰을 실시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제한적 입찰로 다양한 제품 공급이 원천 차단되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수중·잠수장비 공급업체를 운영하는 김모씨(43)는 지난해 11월 조달청 입찰사이트 ‘나라장터’를 통해 한 지방 소방본부가 발주한 고급 잠수장비 공급계약건을 낙찰받았다. 김씨는 규격에 맞는 제품을 구하려고 수소문한 결과 해당 규격의 제품을 도매가로 구입해 관공서에 납품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규격서는 ‘잠수장비 세트 측정기에 나침반, 잔압계, 수심계, 온도계가 일자형으로 돼 있을 것’이라는 내용 등 일반 제품에 흔치 않은 사양을 포함하고 있었다. 김씨는 규격서가 특정 브랜드 제품을 염두에 두고 작성됐고, 이 제품을 관공서에 납품하는 주요 업체가 있다는 점도 확인했다. 결국 김씨는 공급을 포기하고 400여만원의 위약금을 물었다.
김씨는 “낙찰자를 암묵적으로 정해 놓고 입찰공고를 낸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방의 한 구조장비업체 대표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다. 공개입찰로 한 지방 소방본부의 구조장비 납품건을 낙찰받았다가 제품 규격 내용을 따져본 결과 일반 업체가 납품하기 어려운 제품이란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해당 업체의 대표는 “이렇게 형식적으로 입찰을 하려면 차라리 특정업체와 수의계약하는 게 낫다”고 비판했다.
외국 물품에 대한 조달청의 입찰 규정에 따르면 특정 상표나 모델을 명시해 제품규격서를 작성할 수 없다. 하지만 발주 기관들은 특정 브랜드 상품만 충족할 수 있는 규격을 명기하는 방식으로 이를 교묘하게 피해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조장비 공급업자들은 “일부 구조장비의 경우 해당 수입·제조 브랜드의 관계 업체를 통해서만 공급할 수 있는 등 유통방식이 폐쇄적”이라며 “관공서 관계자들은 그런 폐쇄성을 잘 알면서도 특정 제품을 위한 규격서를 제시하는 등 사실상 독점 공급을 유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해당 기관들은 검증된 제품을 공급받기 위한 입찰방식이라고 해명했다.
한 소방본부 관계자는 “특정업체 제품이 성능이 좋아 그 제품을 염두에 두고 만든 규격서가 맞고, 해당 제품의 관공서 공급이 일반업체 입장에서 어렵다는 것도 알고 있다”며 “시장 상황을 잘 모르고 입찰해 발생한 일”이라고 말했다. 다른 지방의 소방본부 관계자도 “구조장비 업자들이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나 어디까지나 공급업자들 간 이익다툼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윤희은 기자 so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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