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국가개조론에 대하여

입력 2014-05-20 20:38   수정 2014-05-21 05:34

큰 사건 때마다 규제강화 목소리
시스템 개혁은 정부 계획 아니라
시장규율에 맡기는 것이 효과적

김영용 < 전남대 교수·경제학 yykim@chonnam.ac.kr >



불행한 시대를 살았던 천재 문학가 춘원 이광수가 1922년 ‘개벽’에 ‘민족개조론’이라는 논설을 발표했다. 조선 민족은 인, 의, 예, 관용, 자존, 쾌활의 좋은 품성을 지녔지만 실행력과 봉사심이 없어 조선의 쇠퇴를 자초했으므로 민족성을 도덕적으로 개조해 희망의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는 제언이다. 개조의 필요성을 깨달은 사람들이 견고한 단체를 만들어 덕체지(德體智) 교육을 통한 문화 사업으로 개조 사상을 널리 확산해 민족성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춘원은 일본 민족에 대한 조선 민족의 열등성과 민족개조 운동은 정치적이거나 종교적이 아닌 문화 사업을 통해야만 한다고 강조함으로써 독립운동의 허망함을 암시하여 친일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더구나 민족에 따라 사고 구조가 다르다는 다중 논리주의를 따름으로써 만인에게 공통적인 행동 양식을 부정하는 심각한 오류를 범했다. 그 결과 민족개조론이라는 섬뜩한 말을 논설 제목으로 붙였다.

이번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이른바 ‘국가개조론’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9일 대국민 담화에서 세월호 진상조사 특별법, 해양경찰청 해체, 안전 업무를 총괄할 국가안전처 신설, 민관 유착 척결 등을 통해 안전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구구절절 진정성이 묻어난다. 얽히고 설켜 잘 돌아가지 않는 나라의 시스템을 고쳐 안전하고 평화로운 나라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설명은 매우 당연하다. 그러나 정부의 철두철미(?)한 계획으로 그런 나라가 만들어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개혁의 단초는 문제의 발단을 근본적으로 성찰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는 초기 대응 미숙이 피해를 키웠지만 안전관리 소홀이 직접적 원인이다. 그러나 그런 원인을 야기한 배경에는 또 다른 원인이 있다.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의 이치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마땅찮게 여기는 사고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의 이익에 공헌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데, 그런 길이 막혀 있을 경우 왜곡된 방법을 찾게 된다. 물론 그렇게 왜곡된 방법은 얼마 가지 못해 모두의 손실로 종결된다. 세월호의 경우에는 운임과 요금 조항(해운법 제11조)에 묶인 사업체가 수익을 얻기 위해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방법으로 규제를 피해 갔고, 그 과정에서 이른바 ‘관피아’의 역할이 필요했던 것이다.

국가 시스템 개혁과 관련해서 중요한 사항은 5000만명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대한민국은 일단의 당국자들이 계획하여 일거에 바꿀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가 국민들의 삶과 상업 활동을 제어해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인도할 수 있다는 사고에서 벗어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에 큰 의미가 담겨 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서 타인의 감정과 행위에 관심을 가지고 그에 동감하려고 하며, 이런 동감 의식이 정의로운 사회질서를 형성한다. 그런 질서 속에서 자유로운 교환을 통해 사회적 협동이 이뤄지고, 협동의 확대로 시장이 커지고 성장이 이뤄져 사회가 번영한다.

이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시장경제 체제를 확고하게 구축하는 것이다. 일정 부분 정부의 감시가 필요한 것도 있지만, 정부 능력의 한계와 정부 자체의 부패 가능성으로 말미암아 정부보다는 시장 규율에 맡기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관피아 문제도 해결할 수 있고 시장 참가자들의 도덕심도 높일 수 있다.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정부의 감시 감독 소홀이 그 원인이므로 정부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그러나 바로 그런 규제가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들어서게 하는 단초를 제공한다. 안전 문제도 유인에 반응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는 방책으로 더 잘 해결할 수 있다. 일단의 엘리트나 당국자들이 계획하고 설계하는 민족개조나 국가개조는 인간 이성의 한계와 ‘자기 부패’로 말미암아 결국 실패하기 마련이다.

김영용 < 전남대 교수·경제학 yykim@chonnam.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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