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역린’ 현빈, 11년 차 배우의 냉정과 열정 사이

입력 2014-05-21 07:50  


[최송희 기자] 무어라 정의하면 좋을까. 반듯한 얼굴로, 반듯한 말씨로, 반듯하게 정리하는 이 배우의 모습을. 차분하고 조곤조곤하게 타인과의 의견차를 좁혀가면서도, 자신의 말로 하여금 누군가 피해를 받진 않을까 염려하듯 덧붙인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어요. 그건 틀린 게 아니에요.”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한경닷컴 w스타뉴스와 만난 배우 현빈은 영화 ‘역린’(감독 이재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하나씩 꺼내놓았다.

“저는 이미 ‘역린’이 정조의 이야기가 아니란 걸 알고 시작했어요. 준비하는 과정 중, 그 어떤 문제도 없었죠. 그런데 언론시사회 후, 많은 관객들이 정조의 영화가 아니라는 것에 배신감을 느낀 것 같았어요. 배우들도 나중에 영화를 보게 됐고, 무엇이 문제인지 어느 정도 인지하게 됐죠. 영화는 영화로 평가되는 게 맞지만, 사전에 정보를 드리고 시작했다면 오차 범위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었을 텐데. 그 부분이 조금 아쉽긴 하죠.”

다름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틀린 게 아니란 걸 인정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도, 현빈은 담담하고 사려 깊은 투로 이야기한다. 올해로 데뷔 11년 차. 그가 인기스타가 아닌 배우로 보내온 시간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부분이다.


◆ 오, 나의 전하

매일이 불안하고 괴로워 차라리 죽고 싶었다는 왕. 사도세자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뒤주에 갇힌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했고, 왕위에 오른 뒤에도 자신을 견제하는 노론과 정치적 대립을 벌였으며, 끊임없는 암살 위협을 견뎌야 했던 왕. 정조는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그의 삶 때문인지 많은 매체에서 이미 숱하게 정조의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드라마부터 영화, 소설까지 정조의 이야기는 노력하지 않아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현빈이 정조를 맡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반가움과 동시에 우려도 깊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는 “정조라는 인물을 많은 선배들이 표현했지만, 상황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해요.”며 여느 때와 같이 평온한 태도다.

“‘역린’은 정조 즉위 후 ‘정유역변’에 대해 많은 힘을 기울이고 있죠. 하루 동안 벌어진 일에 대해서요. ‘역린’ 속 정조는 왕으로서의 삶보다, 이산이라는 인물을 보여주고자 했어요. 예컨대 제가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재벌 2세를 맡았지만 ‘시크릿가든’에서도 재벌 2세를 한 것처럼. 단순히 재벌 2세만 봤다면, 안 했겠죠. 그러니까 상황이나 모든 점들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의사라고 해도 다 같은 의사가 아니라며 캐릭터에 대한 생각을 털어놓는다. 이에 신분을 떠나서 실존 인물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가진 성격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지 않겠냐고 질문하자 “어려웠던 건 실존 인물이기 때문에 어려웠다”고 대답했다.

“실존 인물에 허구가 가미되어 있지만, 그걸 완전히 허구로 만들 수 없으니까요. 기록이 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걸 본 사람이 없으니 어느 정도 상상력이 동원돼야 하고. 그걸 맞추는 게 어려웠던 것 같아요.”

부러 다른 정조들을 보지 않으려고 했단다. 이전 드라마 ‘친구’를 통해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라고. “영화의 장면들이 정답”이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고 “영화처럼 연기를 안 하면 틀린 기분”이 들어서, 결국 영화 ‘친구’와 판박이 같은 장면을 만들어 내게 됐던 것이다. 그것이 실수임을 깨닫고 현빈은 자신만의 정조를 만들기 위해, 드라마보다는 다큐멘터리를 접하며 자신만의 정조를 완성했다.

“문무에 능한 왕이었죠. 활에 관련된 것도 50발을 쏴서 49발을 맞추고, 1발은 만용이라고 일부러 맞추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자의가 됐든, 타의가 됐든 무에 능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아요. 운동하는 신이 나왔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어요. 단순히 몸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살해 위협을 당했던 젊은 왕이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철저하게 살았을까. 그런 걸 생각하고 나니까 시나리오에 있는 문구가 이해가 됐죠. 그래서 운동을 시작하게 된 거예요.”

이른바 ‘성난 등근육’.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일 수밖에 없던 정조를 피력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현빈은 “걱정하고 우려했던 장면”이라며 자칫하면 눈요기용으로, 현빈의 몸처럼 보여질까 봐 걱정했음을 드러냈다. 그리하여 완성된 것은 단순히 ‘예쁜 몸’이 아닌, 맨몸으로 할 수 있는 진짜배기 근육들. 그는 몸무게와 중력을 이용하는 운동들만 찾았음을 설명했다.

결과물은 마음에 들었냐고 넌지시 묻자, 그는 “촬영할 땐요”라며 씩 웃는다. 그러더니 “촬영용 모니터를 보니까 만족스러웠는데 큰 화면으로 보니 모자란 것 같더라고요. 사람 욕심이라는 게 그런 것 같아요. 아마 거기서 운동 더 했다고 해도 미련은 남았을 거예요”라고 덧붙였다.

티저 공개 이후 현빈의 등 근육은 그야말로 핫 키워드였다. 그런 유행어가 어딜 가나 자신을 쫓는다니. 부담일 법도 했다. 현빈은 “있죠. 다들 아직도 ‘지금도 있냐’고 물어요. 지금은 많이 겸손해졌어요”라며 속내를 감추지 않고 털어내 버린다. 그러면서도 “나름대로 노력한 결과물이 나간 순간이니까”하고 받아들이고 있는 모습이라니. 어쩐지 ‘중년배우’ 같기도 하다.

“그래도 오래 이야기할 일은 아닌 것 같아요. 그냥 다음 작품에도 그 말이 나온다면 제 손해겠죠.”


◆ 냉정과 열정 사이

놀이동산에 가는 어린아이 같은 기분으로 촬영장에 복귀한 현빈과 이름만 들어도 입이 떡 벌어지는 초호화 캐스팅의 조합. 하지만 그 쟁쟁한 배우들은 ‘신경전’보다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서로 간의 배려와 격려는 영화에 고스란히 드러나며, 특유의 세밀하고 견고한 합을 이뤄냈다. 그것은 ‘역린’ 속 많은 인물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떠들어도, 누구 하나 가려지지 않도록 빛을 낸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린’에 대한 혹평은 분명 있었다. 현빈의 첫 사극이자 복귀작. 이에 세간의 관심이 쏟아졌고, 당연히 영화 ‘역린’에 대한 기대치도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뜨거웠던 반응만큼, 작품에 대한 의견도 분분했던 것이다.

“많은 것이 작용했다고 봐요. 전 그런 혹평이 잘못됐다고 생각은 안 해요. 그런 이야기들도 당연히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스코어가 늘어나는 건, 관객들이 ‘도대체 어떻기에 저러지?’ ‘왜 혹평과 호평으로 갈리지?’라면서 본인이 직접 판단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확실히 혹평들로 영화에 대한 기대치가 떨어진 건 맞아요. 주변 반응만 봐도 알 수 있어요. 사실 처음 예고편이 나왔을 때 기대치가 엄청 높았거든요. 제가 생각한 것 이상이었죠.”

높아만 지는 기대감. 11년차 배우는 “혹시 조금이라도 만족이 안 된다면 배신감과 실망감이 훨씬 더 클 것”을 직감했다. 그럼에도 “그 부분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까”라고 달관한 듯한 태도를 취한다.

“그 기대감이 이제 혹평이 나오면서 자연적으로 다운이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오히려 ‘직접 봤더니 생각보다 괜찮은데?’가 더 많아진 거고요. 점점 그런 부분이 쌓여가는 것 같아요.”

첫 인사를 건넸던 순간처럼 차분하고 담담한 목소리. 조급해하거나, 불안해하는 기색 없이 상대가 가진 편견이나 의견 차이를 좁히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열려 있는, 무엇이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배우. 그 태도는 단순히 11년이라는 세월이 만들어낸 여유인 걸까? “그래도 아쉬웠던 점이 있을 것 아니에요?” 달관한 듯한 태도에 결국 직접적인 말을 꺼내놓자 그는 다시금 조곤조곤하게 대답한다.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뒤, 매번 모니터하면서 느끼는 건 ‘매 신이 아쉽다’는 거예요. 희한하죠? 분명 찍기 전엔 여러 아이디어를 내고,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해서 촬영에 돌입하는 건데도요. 지나고 나면 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요. 매번 반복되죠. 개인적인 욕심일 수도 있지만 경력이 쌓이면서, 그 오차가 점점 더 줄어들었으면 좋겠어요.” (사진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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