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수억대 세금 안내던 악질 체납자, 5000만원 그림 압류하자 바로 납부

입력 2014-05-24 09:00  

'체납과의 전쟁' 서울시 38세금징수과

서울시 체납액 1조원 넘어
자동차·그림·고급 양주부터 황금 골프공까지 압류
기업인·법조인 등 36명, 850억원 체납 '특별 관리'

인력부족으로 힘겨운 싸움
강남구 체납액 강북구보다 16배 많지만 인력은 1.5배 불과
변호사 조언받는 체납자 상대 전문 법조인력 배치 필요



[ 홍선표 기자 ]
지난 21일 오전 7시 서울 반포동 서래마을. 외제 차가 즐비한 한 빌라 지하주차장으로 은색 카니발 차량이 들어섰다. ‘38세금조사관’이라고 쓰인 남색 조끼를 입은 남성 5명이 차에서 내렸다. 이른 아침 이들이 방문한 것은 지방세 약 7억원을 체납한 A씨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이종하 서울시 38세금징수과 팀장은 “재산을 압류하려면 악성 체납자들이 집에 있는 시간을 노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입주자 허락이 있어야 한다”는 빌라 경비원과 승강이를 벌인 끝에 A씨가 살고 있는 7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리길 수십 차례. 안에선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최석훈 조사관이 “방금 전 주차장에서 우연히 스친 남자가 A씨 차량 기사인데, 미리 연락한 것 같다”고 탄식했다.

2008년 부도가 난 중소 건설사 회장이던 A씨는 회사가 어려워진 뒤에도 외국 시민권자인 두 딸 명의로 재산을 빼돌린 의혹을 받고 있다. A씨 딸들이 서초동과 반포동에 갖고 있는 주택만 6채다. 이날 방문한 30억원대 빌라도 딸 소유로 돼 있다. 38세금징수과는 자녀 명의의 재산과 부인이 경기도에 있는 요양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점 등을 근거로 A씨가 세금을 낼 수 있는데도 고의로 납세를 기피한다고 보고 있다.

집 안에 A씨가 있다는 심증이 있었지만 두툼한 철제문이 가로막아 인기척을 살피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현관문 앞 계단에 앉아 A씨를 기다린 지 두 시간여 만에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관련법에 따르면 경찰 입회 아래 문을 따고 들어갈 수 있지만, 사람이 없을 경우 불법건조물침입죄 위반에 해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강남 서초 송파 ‘강남 3구’ 체납 많아

지방소득세와 자동차·부동산 취득세 등 서울시 지방세 수입의 누적 체납액이 11년 만에 다시 1조원을 넘어서 서울시의 재정건전성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해 서울시의 지방세 체납 규모는 1조1971억원으로, 서울시 지방세 수입 11조9130억원의 10%에 달했다. 서울시내 25개 자치구의 예산으로 바로 들어가는 재산세 등까지 합치면 지난 한 해 새롭게 발생한 체납액만 1조3727억원이다.

서울시가 38세금징수과를 중심으로 악성 체납자와 전쟁에 나선 이유다. 악성 체납자 사이에선 ‘저승사자’로 통하는 38세금징수과는 2001년 8월 38세금기동팀으로 출발했다. 38세금징수과란 이름은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납세의 의무를 진다’는 헌법 38조에서 따왔다. 지방소득세와 자동차세, 주민세가 1000만원 이상 밀린 고액 체납자를 집중 관리한다.

서울 25개구 가운데 지방세 체납이 가장 많은 지역은 강남·서초·송파 등 이른바 ‘강남 3구’다. 작년 12월 기준으로 강남구가 1603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서초구(972억원), 송파구(517억원) 등의 순이었다. 이날 두 번째 방문지인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빌딩에 도착한 조사관들은 지하 3~7층 주차장을 샅샅이 살폈다. 2억4600여만원의 지방소득세 등을 체납해 압류 조치된 법인 명의의 에쿠스 차량을 견인해 가기 위해서였다.

30분을 훑었는데도 차량을 찾지 못하자 한 조사관이 해당 차량을 이용 중인 법무사에 전화를 걸어 차량의 위치를 물었다. 법무사는 “나는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며 “확인한 뒤 연락을 주겠다”며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가 되지 않았다.

38세금조사관들이 압류해 강제 견인되는 차량은 공매된다. 38세금징수과는 지난해 외제차 등 1700여대 차량을 견인, 이 중 328대를 공매로 처분했다. 이를 통해 20억원의 체납세금을 징수했다. 차량 이외의 다른 압류 재산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를 통해 공매가 이뤄진다.

이 팀장은 “50돈(187.5g)짜리 황금 골프공을 비롯해 고급 양주 등 자산가치가 있는 모든 제품이 압류 대상”이라며 “한번은 이대원 화백이 그린 5000만원짜리 그림을 압류해가자 체납자가 다음날 바로 억대 세금을 납부한 적도 있다”고 전했다.

○서울시 체납자 20%는 악성 체납자

서울시는 전체 체납자의 약 20%를 편법을 동원해 세금 납부를 피하는 악성 체납자로 분류하고 있다. 악성 체납자 대부분은 배우자나 자녀 명의로 재산을 빼돌리거나 위장 이혼하는 수법으로 세금 징수를 회피한다.

앞서 언급한 A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딸들 명의로 재산을 빼돌린 의혹을 받고 있는 A씨의 주민등록상 주소는 아내가 운영하는 요양병원 병실이다. 하지만 조사관들이 현장을 방문해 확인한 결과 A씨가 거주하는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A씨가 소유한 토지 대부분도 그가 운영하던 회사가 근저당을 설정해 놓아 서울시가 압류하더라도 아무런 실익이 없는 상태다.

법인의 경우 차량 등 압류된 재산을 몰래 팔아넘기는 수법을 사용한다. 세무당국은 시중에 유통되는 고급 대포차의 상당수가 세금 체납으로 압류된 차량으로 파악하고 있다.

악성 체납자들은 세금 납부를 기피하기 위해 위장이혼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현행 조세징수법으로는 이 같은 위장 이혼에 대처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점을 악용하는 것이다. 이런 법망의 틈새를 메우기 위해 38세금징수과는 지난해부터 서울중앙지검과 협조체계를 갖추고 악성 체납자 10여명의 리스트를 작성, 집중 관리하고 있다.

서울시 38세금징수과는 또 2012년부터는 기업인과 법조인, 의료인, 종교인 등 사회 지도층에 속하는 체납자를 특별 관리하는 사회저명인사 특별관리제도 시행하고 있다. 현재 대상자는 36명으로, 이들의 체납액만 850억원에 달한다.

○징수인력 부족…계좌추적 한계

지자체가 악성 체납자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지만 인력 부족 등으로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우선 징수담당 인력이 크게 부족하다. 강남구(체납액 1603억원, 체납건수 109만2166건)는 강북구(체납액 102억원, 체납건수 18만9789건)보다 관리하는 체납액과 건수가 각각 16배, 5배 많지만 세무행정 공무원 수는 고작 32명(강남구 89명, 강북구 57명)이 많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세수가 부족한 강북지역 구청에선 몇 만원짜리 소액 체납을 해결하는 데 힘을 쏟는 데 반해 강남 3구에서는 수백만원의 체납도 인력 부족으로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변호사의 적극적인 조언을 받는 고액 체납자를 상대하기 위해선 부서 안에 징수를 담당하는 전문 법조 인력을 갖출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계좌추적권과 금융정보에 대한 접근권이 확대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타인 명의로 재산을 빼돌린 체납자 재산을 추적하려면 돈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계좌 추적이 필수다. 지금은 법원의 영장을 받아 계좌를 추적하고 있다. 다만 계좌추적권은 개인의 민감한 금융정보를 들여다볼 수 있는 권한인 만큼 법원의 적절한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임출빈 38세금징수과 과장은 “지방소득세의 경우 국세인 종합소득세와 연계돼 부과되지만 국세청으로부터는 기본적인 자료만 통보받는다”며 “법인의 주주 구성, 사업장 정보가 원활히 공유되면 체납세 징수가 더 쉬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홍선표 기자 ricke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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