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역린’ 조정석, 밀당의 고수

입력 2014-05-25 08:00  


[최송희 기자]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배우. ‘건축학개론’ 납뜩이처럼 농을 치다가도 ‘역린’ 을수처럼 진지하고, 굳은 속내를 드러내기도 한다.

가늠할 수 없는 간격. 거리감 없이 느껴지다가도, 순식간에 엄청난 간극을 만들어내는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예사 인물’이 아닌 것 같다. 서글서글한 인상 뒤, 배우가 가진 날카로운 예리함은 그가 연기해온 많은 인물들만큼이나 정교하고 깊었다.

최근 영화 ‘역린’(감독 이재규) 개봉을 기념해 한경닷컴 w스타뉴스와 만난 조정석은 순간순간 다른 얼굴, 다른 표정을 지었다. ‘표정이 참 다양하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얼굴 이면의 생각들이 궁금해졌다.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물음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인터뷰 상대다.

“영화 개봉하고 3번 정도 봤어요. ‘볼매’더라고요. 보면 볼수록 매력이 있어요. 편집도 적절하게 되어있고, 잘 만들고 찍어주신 것 같아요. 모든 캐릭터들이 얽혀있는, 관계성과 구성력들이 흥미 있었고 재미있는 부분이었죠. 그런 관계들을 잘 표현해준 것 같아요.”

소년 같은 얼굴. 자신의 출연작 ‘역린’이 보면 볼수록 매력 있다는 그는, 흡사 장기자랑을 앞둔 아이처럼 들뜬 기색을 했다. “볼 때마다 눈이 가는 부분이 달라”서 세 번이나 영화를 봤다는 조정석은 그의 필모그래피와는 달리 소박한 신인배우 같은 몸짓으로 “처음 볼 때는 자신이 연기한 부분밖에 보이지 않았고 두 번째는 전체적인 스토리가 보였으며 세 번째에 가서야 디테일에 눈이 갔다”고 말한다.

이제까지와는 조금 다른 인물. 조정석이 진중한 인물을 연기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지만 을수와는 농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최고의 살수로 만들어졌지만, 그 이면은 너무도 보드랍고 여렸던 인물. 그가 가졌던 우울감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조정석의 얼굴을 드러나게 했다.
이에 앞선 캐릭터들과 다르게 보이려 힘을 기울였던 부분이 있느냐고 질문하자, 조정석은 “인물에 집중하려 했다”고 대답했다.

“을수의 감정선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텍스트에는 없는 서브텍스트에 대한 내용을 많이 생각해야했어요. 어린 을수가 광백(조재현)의 동굴에 들어왔을 때 어떻게 자라왔는지, 어떻게 구제되었는지. 그 아이의 짓눌린 과거에 대해서, 월혜(정은채)가 내게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 그런 생각들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시나리오를 읽을 당시부터 갑수(정재영)과 을수의 이야기가 더 눈에 들어왔다고 설명한 조정석은 “극 중 제 역할은 악역이지만 을수는 악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문을 뗐다. 정조(현빈)을 죽이러 가는 명분은 분명 사랑에서 비롯된 것임을. 약자의 입장일 수밖에 없었음을 밝히고 싶었다는 것.

“그런 것들이 매력적이었던 거죠. 을수가 명분을 가지고 왕을 죽이러 가는 것, 사랑하는 월혜를 지키기 위한 마음들, 같이 자랐던 갑수를 내 손으로 죽일 수밖에 없는 비극 같은 것들이요.”

한 달 동안이나 촬영한 ‘존현각 신’은 그야말로 위험천만한 액션이 주를 이뤘다. 비는 내리고, 주고받는 액션은 정밀했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액션들. 이에 조정석은 “정말 도망가고 싶었다”면서도 “존현각 장면이 제일 기분 좋았다”고 말한다.

“그때 그 고통을 입으로 표현하고 싶은데 표현이 안 돼요. 이건 직접 경험해봐야 하는데…. 과거로 타임머신 타고 데리고 가서, 5일 정도만 같이 있고 싶어요.”

농을 치는 얼굴은 여전히 어린애 같다. 후시 녹음을 촬영하면서 존현각 신을 보니 당시 생각이 많이 난다는 그는 조금은 아쉬운 표정을 짓다가도, 후련하다는 듯 활짝 웃기도 했다. 시종일관 바뀌는 그의 표정을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였다.

“존현각 장면이 제일 좋아요. 복도에서 싸우다가 등을 한 번 베이고, 피하면서 다른 사람을 발로 차면서 돌아서 뒤에 있는 사람의 목덜미를 발로 차는 장면이 있어요. 칭찬도 많이 해주시고 기분 진짜 좋았어요. 제가 직접 한 거예요. 감독님도 원하시고 저도 원했으니까요.”

직접 액션 연기까지 보여주는 그의 넉살에 결국 웃음이 터졌다. “여기서 이렇게” “저기서 이렇게”라는 등 글로 묘사하기 힘든 조정석 표 ‘입 액션’도 한몫 했다. 유쾌한 그의 언변에 “친구들한테 인기가 많겠어요”라고 말을 건네자 “진짜 친한 친구들 앞에선 말을 잘 안 해요”라며 멋쩍은 얼굴을 한다.


“평소에 말이 없어요. 제가 말을 많이 한다는 건 분위기가 어색하거나, 같이 즐겁고 싶은 순간일 거예요. ‘인생 한 번뿐인데 즐겁게 살자’는 주의라서요. 즐거운 게 좋거든요. 제가 말을 안 하고 가만히 있어도 사실 전 즐겁게 있는 건데 상대방이 오해할 수도 있으니까. 배려 차원에서도 말을 많이 해요.”

조정석에 대한 몇 가지 이미지들. 우리는 그것으로 하여금 무작정 그가 밝고, 유쾌하며, 걱정이 없을 것이라고 단정 짓기도 한다.

“예전에 공연할 때 막내일 때, 남들 웃겨주는 걸 많이 했어요. 그건 사회생활이니까 자연스럽게 한 거죠. 원래는 가만히 있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웃음) 그런데 누가 ‘야 웃겨봐’라고 하면 당황스럽긴 하죠. 제가 웃기는 사람도 아니고…. 단지 재밌고 즐겁고 그렇게 살고 싶은 사람이에요.”

이런 오해들은 그가 맡은 역할들에서도 몇 가지가 발견된다. 사람들은 아직도 조정석에게 ‘건축학개론’ 납뜩이를 논하고, 그가 연기한 많은 인물들을 ‘조선판 납득이’ ‘현대판 납득이’ 등으로 평한다.

“시나리오에 나오는 역할에 충실하고자 해요. 연기로 여러 가지를 표현할 수 있지만, 매개체는 조정석이니까. 제가 가진 특색이 묻어나올 수밖에 없죠. 그것들이 캐릭터에 실리다 보니까 이런 면에서 보면 납뜩이 같고, 이런 면은 은시경 같을 수 있다는 거죠. 그런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건축학개론’ 이전의 조정석을 아는 팬들이라면, 대중들의 이런 평가가 꽤나 섭섭하게 느껴질 수 있다. 조정석의 말대로 그가 연기하는 코믹한 부분, 진지한 부분들은 모두 ‘조정석’만의 것이었으니까.

납뜩이가 대 히트 하면서 자연스럽게 굳어진 이미지는 조정석에게 부담을 주고 있는 건 아닐까? 하지만 그는 너무나도 태연한 얼굴로 “아니요. 굴레처럼 받아들이진 않아요”라며 샐쭉 웃어 보인다.

“사실 그냥 감사해요. 저란 배우를 대중들에게 알린 역할이니까요. 그래도 언젠가는 납뜩이가 차차 없어지지 않을까요? 어떤 역할이든 열심히 할 거예요. 그 각오와 자신감은 만땅(?)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실패를 겪더라도 후회스럽지 않을 정도로 하고 싶어요. 미리 걱정 안 할 거예요.” (사진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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