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매실 풍년

입력 2014-05-28 20:34   수정 2014-05-29 05:46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조조의 대군이 행군 도중 갈증에 시달렸다. 워낙 목이 말라 전투도 하기 전에 쓰러질 판이었다. 이때 조조가 “조금만 더 가면 매실 숲이 있으니 거기 가서 마음껏 갈증을 풀자”며 건너편 산을 가리켰다. 그 말에 모두들 입안에 침이 고여 원기를 되찾았다. 매실을 떠올리며 갈증을 잊은 망매지갈(望梅止渴)의 고사가 여기에서 나왔다.

매실은 신맛을 띠지만 알칼리성이 강해 피로회복과 체질개선에 좋다. 원산지인 중국에서는 3000여년 전부터 약재로 써왔다. 시트르산(구연산) 함량이 많아 근육에 쌓인 젖산을 분해하고 칼슘 흡수를 촉진한다. 간 해독 기능도 탁월해 예부터 3독(음식물, 피, 물)을 없애는 ‘푸른 보약’으로 불렸다. 최근에는 항암 효과까지 입증됐다.

다만 날것으로 먹으면 독성이 청산(靑酸)으로 분해돼 중독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래서 매실주와 매실차, 매실청, 매실식초, 매실잼, 매실장아찌 등으로 다양하게 가공해서 먹는다. 특히 매실차에는 강한 살균·해독 작용이 있다. 식중독 예방과 변비 치료에 효과적이다. 매실차나 매실장아찌를 담글 때 차조기잎을 함께 사용하면 훨씬 좋다고 한다.

일본판 매실장아찌인 우메보시(umeboshi·梅干)에도 차조기잎이 들어간다. 우메보시의 붉은 빛 역시 차조기잎에서 나오는 것으로 색깔과 향미를 더해준다. ‘우메보시도 3년이 넘으면 약’이라는 속담이 있는데, 4년 숙성한 걸 분석했더니 염분이 거의 없어 신장병이나 고혈압 환자에게도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일본 사람들은 우메보시를 1000년 전통의 건강식품이라고 자랑한다. 그러나 학자들은 1300여 년 전 가야 유민들이 전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고사기 《만엽집》에 매실 관련 기록이 110건이나 되는 걸 보면 그럴 듯하다.

올해는 매실 풍년이어서 수확량이 20% 정도 늘고 출하시기도 1주일이나 빨라졌다. 날씨가 좋아 꽃이 많이 핀 데다 4~5월 과실 비대기에 비가 적당히 내린 덕분에 생육이 좋았다. ‘매화꽃이 많이 피면 풍년이 들고, 매실이 많이 달리면 농사가 잘 된다’더니 반가운 일이다.

가격도 착하다. 대형 마트에서 한 박스(3㎏)를 1만4900원에 살 수 있다. 시세보다 20% 이상 싼 값이다. 다음주부터 출하량이 늘어나면 더 싸질지 모른다. 이래저래 입맛과 건강을 다 챙길 수 있어 좋다. 전문가들은 담금주나 매실청을 만들 때 알이 굵은 놈을 고르라고 귀띔한다. 매실즙의 양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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