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 요양병원 화재 21명 사망…희생자 왜 많았나

입력 2014-05-28 21:06   수정 2014-05-29 05:16

6분만에 불길 잡혔지만…고령 환자들 순식간에 유독가스 질식

대부분 거동 불편한 치매·중풍질환 앓아
불 난 2층에는 야간 당직 간호조무사 1명뿐
경찰, 80대 용의자 체포…방화혐의 조사



[ 홍선표 / 최성국 기자 ]
전남 장성군 삼계면에 있는 효실천사랑나눔요양병원(이하 효사랑병원)에서 불이 나 입원 중이던 환자 20명과 간호조무사 1명이 숨졌다. 불에 탄 면적은 창고 한 칸에 불과했지만 입원 환자 대부분이 중풍과 치매 등 노인성 질환을 앓고 있는 탓에 신속하게 대피하지 못해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경찰은 방화에 의한 화재인 것으로 보고 용의자를 체포해 수사 중이다.

○병원에 입원한 치매환자가 불 지른 듯

28일 오전 0시27분께 효사랑병원 별관 건물(지상 2층, 지하 1층) 2층에서 불이 나 정모씨(88) 등 환자 20명과 간호조무사 김귀남 씨(53)가 사망했다. 환자 6명은 중상을 입고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중상자 대부분이 고령인 데다 유독가스를 심하게 들이마셔 추가로 사망자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사고 당시 별관 2층에는 환자 34명이 입원 중이었다. 처음 불이 난 곳은 창고로 쓰이던 복도 끝 3006호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전 0시27분께 화재 신고를 접수한 담양소방서는 4분 만인 0시31분 현장에 도착해 2분 뒤인 0시33분 대부분 불을 껐다. 0시55분에는 화재 진압을 완료하고 내부 수색에 나섰으나 인명 피해를 막지는 못했다.

경찰은 지난 1일부터 병원에 입원해 생활하던 김모씨(82)가 불을 지른 정황을 파악하고 김씨를 긴급체포했다. CCTV 분석 결과 김씨는 오전 0시16분께 담요로 보이는 물건을 손에 들고 3006호로 들어가 5분 뒤인 0시21분에 나왔다. 2분 뒤인 0시23분께부터 연기가 새어나왔으며 0시24분에는 간호조무사 김씨가 화재 현장으로 뛰어드는 모습이 CCTV에 잡혔다.

노규호 장성경찰서장은 “화재 현장에서 김씨가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라이터의 잔해물을 발견해 확인 중”이라며 “김씨는 현재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뇌경색 증세로 입원했으며 치매 증상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화재 규모 작았지만 대형 참사 이어져

불이 난 지 수분 만에 큰불이 잡히고 불이 난 공간도 33㎡(약 10평) 규모의 창고 한 칸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대형 참사로 이어진 것은 유독가스 때문이라고 소방당국은 설명했다. 불이 난 3006호 창고에는 침대 매트리스와 이불, 담요 등이 보관돼 있었다.

이불 등의 재료인 합성섬유에 불이 붙어 대량의 유독가스가 발생했다. 고령자의 경우 유독가스를 한두 모금만 마셔도 치명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인세진 우송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70, 80대 환자들이 2층 건물에서 자기 힘으로 빠져나온다는 건 매우 힘들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층에 있던 34명의 환자 중 자기 힘으로 건물을 빠져나온 환자는 6명에 불과했다.

○규정보다 적은 당직인원으로 역부족

병원 측이 규정에 턱없이 모자라는 야간근무자를 배치한 것이 대형 참사의 또 다른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화재 발생 당시 324명이 입원하고 있던 효사랑병원에는 당직의사인 병원장과 간호사 2명, 간호조무사 13명 등 총 16명이 근무하고 있었다. 불이 난 별관 2층엔 간호조무사 1명만 야간당직을 서고 있었다.

하지만 병원 측의 화재대응지침에는 야간과 휴일에 최소 24명의 인원을 배치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매뉴얼보다 8명이 부족한 인원 탓에 화재 대응이 늦어져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는 지적이다. 원윤희 대한간호조무사협회 정책국장은 “요양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조무사의 70% 이상이 40대 이상 여성”이라며 “간호조무사 한 명이 환자 수십 명의 안전을 책임지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일부 유가족은 병원 측이 평소 야간 시간에 이동을 막기 위해 환자들의 손을 침대에 묶어놓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소방당국은 “구조 현장에서 환자들을 병상에 묶어놓았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장성=홍선표/최성국 기자 ricke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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