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시장 혼란] 기업 "뭘 보고 뽑나"…취업준비생 "뭘 준비하나"

입력 2014-05-29 20:56   수정 2014-05-30 04:29

등 떠민 '스펙초월 채용'

기업 "취지는 좋지만"
붕어빵 자소서만 몰려…어떻게 차별화 하겠나

취준생도 어리둥절
소셜리크루팅 등 부담…더 좋은 자격증 딸 것



[ 박한신 / 공태윤 기자 ]
지난 28일 서울 건국대에서는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 주최로 ‘톡톡 스펙초월’ 채용설명회가 열렸다. 현대차 네이버 두산 포스코 등 7개 기업이 스펙초월 채용에 대해 설명했다. 취업준비생들은 겉으로는 ‘스펙보다 사람’ 등을 외치며 호응했다. 하지만 개별 취업준비생들의 속마음은 달랐다. 대부분은 “뭘 준비해야 하는지 더 혼란스러워졌다”고 털어놓았다.

○기업 “대체할 수단 마땅찮다”

스펙초월 채용은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다. 취업준비생들의 부담을 줄이자는 취지에서다. 청년위원회가 작년 10월 스펙초월 채용의 확산을 들고 나왔다. 올 4월엔 금융위원회가 나섰다. 18개 금융공기업이 신입 직원을 채용할 때 자격증과 어학성적을 원칙적으로 기재하지 못하도록 했다. 펀드·증권·파생상품 투자상담사 등 이른바 ‘금융 3종’ 자격증 시험엔 취업준비생이 아닌 금융권에 종사하는 사람만 응시할 수 있도록 했다.

당장은 기업들이 당황해 하고 있다. 자격증이나 어학점수를 대체할 수단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인사 담당자들은 “채용에서 가장 중요한 건 형평성이고 누구든 결과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기준을 찾는 게 가장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러다 보니 정부의 ‘장담’과는 달리 자격증과 어학점수를 여전히 요구하는 공기업이나 금융회사도 상당하다. 채용을 진행 중인 국민연금공단은 어학성적 및 한국재무설계사(AFPK)와 국제재무설계사(CFP) 자격증을 기재하도록 했다. 신용보증기금도 자격증 기재란에는 공인회계사와 세무사 등 전문자격증만 적도록 했지만, 자기소개서에 ‘자기계발 과정(자격증 취득 등)’을 쓰도록 했다. 상반기 공채를 진행한 신한은행과 새마을금고 등 금융회사도 자격증과 어학성적을 기재하도록 했다.

한 공기업 인사담당 임원은 “스펙보다는 인문학적 소양이 더 중요하다는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자기소개서를 받아보면 지원자들의 인문학적 수준이 고만고만해 결국 다시 자격증을 보게 된다”고 말했다.

○취업준비생 “부담만 가중됐다”

더욱 혼란스러운 건 취업준비생들이다. 자격증도 따야 하고 ‘스펙초월 소셜리크루팅’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에 적응하기 위해 ‘스펙 이상’을 쌓아야 하기 때문이다.

금융 3종 자격증 취득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권모씨(26·한양대)는 “아무래도 자격증이 있으면 면접에서 유리할 것 아니냐”며 “응시자격이 있는 올해 안에 3개 중 2개라도 꼭 따야 한다는 분위기가 퍼져 있다”고 말했다.

한국남동발전 한국마사회 등 일부 공기업이 스펙 중심의 서류전형 대신 도입한 ‘스펙초월 소셜리크루팅’ 프로그램도 취업준비생들에겐 상당한 부담이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적어 제출하거나, 자신을 설명하는 동영상과 파워포인트를 만들어 올리는 ‘과제’를 정해진 시간 안에 수행하면 이를 평가하는 방식이다.

대학생 한모씨(27)는 “자격증과 영어 대신 이제 동영상 잘 만드는 법도 배워야 할 것 같다”고 꼬집었다. 최근엔 소셜리크루팅 서비스를 대행해주는 업체들까지 우후죽순 생겨나 공기업들을 대상으로 이 서비스를 이용하라며 판촉까지 하고 있다.

일부 대기업의 스펙초월 채용 기준도 새로운 부담이 되고 있다. 아프리카 마을에서 사진관을 열고 생활했던 취업자의 사례를 본 대학생들은 “이젠 취업을 위해 아프리카까지 가야 할 판”이라는 자조 섞인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박한신/공태윤 기자 hansh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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