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개 기업 피해…6만명 실직
증시 5월 10% 넘게 하락
[ 김보라 기자 ] 중국에 이어 ‘세계의 굴뚝’ 자리를 넘보던 베트남 경제에 먹구름이 끼고 있다. 남중국해를 둘러싼 중국과의 분쟁 탓에 반(反)중국 시위가 확산되면서 베트남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들은 공장을 폐쇄하거나 직원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고 있다. 투자자금이 빠지면서 증시는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반중국 시위에서 비롯된 폭력사태가 베트남의 경제적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다고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애플·월마트 등 공장 일시 폐쇄
이번 사태는 양국이 영유권 분쟁 중인 파라셀 제도(베트남명 호앙사 군도, 중국명 시사 군도) 인근에서 지난 2일 중국 해양석유총공사가 일방적인 석유 시추에 나선 게 불씨가 됐다. 반중 시위는 베트남 중북부 하띤 등 주요 산업단지에서 급속히 확산했다. 오토바이를 탄 시위대가 골프채, 화염병 등을 들고 거리로 뛰어나왔고, 이 과정에서 100명 이상의 중국인이 죽거나 다쳤다. 중국 정부는 서둘러 4000여명의 중국인을 탈출시켰다.
가장 큰 피해를 본 건 다국적 기업이다. 애플, 월마트, 나이키 등 다국적 기업 공장들이 불에 타 일시 폐쇄됐고, 삼성물산과 포스코건설 등 한국 기업도 현장에서 일시 철수한 바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삼성전자가 베트남에서 대규모 휴대폰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중국에서의 부품 공급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베트남에서 생산하고 있는 연간 3억대의 스마트폰 생산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브러더공업, 캐논 등 베트남을 생산 거점으로 삼고 있는 일본 기업도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베트남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반중 폭력시위 여파로 12개 기업이 불에 타는 등 100여개 회사가 피해를 입었고, 공장폐쇄 조치 등이 잇따르면서 총 6만명의 실직자가 발생했다.
베트남 증시도 출렁였다. VN지수는 5월 들어 10% 이상 하락했다. 지난 8일 시위가 격화하자 장중 6% 급락해 13년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하기도 했다. 베트남 정부가 경제적 타격을 우려해 시위대 1000여명을 구속시키면서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던 시위는 26일 베트남 선박이 파라셀 제도 인근에서 중국 어선에 부딪혀 침몰하면서 다시 고조되는 분위기다. FT는 “이번 사태가 2010년 이후 연 5~6%대 성장을 지속해온 베트남 경제에 브레이크를 걸었다”고 지적했다.
○경제 취약성·권위주의 한계 드러내
전문가들은 이번 폭력 시위가 베트남 경제의 취약성과 권위주의 정치체제의 한계를 보여줬다고 분석했다. 과거에 베트남은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와 불안정한 환율, 취약한 제조업 기반 등으로 인해 국제환경이 악화될 때마다 국가 부도설의 단골로 등장했다. 취약한 베트남 경제에 성장판을 마련해준 것은 외국인 투자였다. 현재 외국 투자기업의 수출은 베트남 전체 수출의 64~67%를 차지한다. 올 들어 4월까지 베트남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FDI)는 2370억달러(약 241조3371억원)에 달했다.
중국의 임금이 오르고 동남아 주변국의 정정 불안이 심화하면서 글로벌 기업은 베트남을 안정적인 제조업 기지로 주목했다. 덕분에 지난해 베트남 수출은 전년 대비 15% 증가했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제조업 비중은 17%로 높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폭력시위 사태는 진출한 외국기업들에 베트남 투자환경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줬다는 평가다. 첸 보쇼 주베트남 대만 대표부 처장은 “베트남 정부는 통제력을 자신했지만 지방 정부는 시위 단속에 손을 놓는 등 불협화음을 냈다”며 “외국 기업은 이번 사태로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베트남의 반중 시위가 단지 중국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베트남 내부의 불만이 표출된 것이란 분석도 있다. 그동안 산업단지 인근에는 지역 경제를 뒤흔드는 범죄단체가 존재했고, 노동자들도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해 불만을 표시해 왔다는 것이다. 베트남에 있는 중국계 의류공장 관계자는 “공무원 임금이 오를 때마다 노동자들은 파업에 나섰다”며 “지난 18개월간 노동자 임금을 40%가량 올려줬다”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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