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소위 ‘숨은 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여론조사에 우세한 진영은 숨은 표를 경계하고, 불리한 진영은 혹시나 하는 기대심리를 갖는다. 하지만 숨은 표의 존재는 실은 여론조사의 부정확성을 말하는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최근 두 달간 지방선거 여론조사는 805건에 달했다. RDD(임의전화걸기) 등 조사기법을 보완했다지만 같은 후보들을 놓고도 결과가 들쭉날쭉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응답률이 광역단체장은 10% 안팎, 기초단체장은 5% 미만에 불과하다. 맹인이 코끼리 만지는 꼴이다.
숨은 표는 과거 군사정권 시절 야당 지지자들이 속내를 드러내길 기피했던 데서 비롯됐다. 그러나 지금은 사상의 자기검열 시대가 아니다. 오히려 표현의 자유가 흘러넘친다. SNS, 인터넷 등 공론의 장을 진보좌파가 장악해 거꾸로 보수우파가 생각을 숨기는 상황이 됐다. 더구나 보수이념은 설득하는 데 긴 설명이 필요하다. 네거티브가 먹히는 것도 설명이 필요없이 자극적인 한마디로 솔깃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젊은층에서 보수적 정견이나 여당 지지를 밝히면 대개 왕따 취급을 받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선거 때마다 20~30대 유권자의 약 30%는 여당 지지자로 나타난다. 물론 60대 이상에서 야당을 지지한다고 드러내면 철 없다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숨은 표는 ‘침묵의 나선(the spiral of silence)’ 이론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침묵의 나선이란 자신의 견해가 우세·지배 여론과 일치하면 적극 표출하고, 그렇지 않으면 침묵하는 성향을 의미한다. 스포츠 경기장에서 원정팀을 따라가 응원할 때 주위를 살피는 심리와 같다. 세월호 쇼크로 정부·여당에 대한 비판이 우세 여론인 만큼 언론들은 야권보다는 여권의 숨은 표를 예상한다. 5%니, 7%니 예측치도 다양하다. 일부 진보성향 언론에선 “보수는 소리없이 뭉친다”며 경계심을 일깨우기도 한다.
반면 야당에는 숨은 표가 있어도 여당은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 근거로 16~18대 총선에서 여당은 서울에서 149만~177만표를 얻은 반면, 야당은 투표율에 따라 100만~184만표로 편차가 컸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당 지지표는 상수(常數)이지 숨은 표가 아니란 얘기다. 야당이 투표율 70%에 목을 맸던 이유다.
여론조사들이 범람하지만 투표함을 열어보기 전까진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실제 투표에서 정반대 결과가 나오면 여론조사 업체들은 그 원인을 숨은 표로 둘러댈 게 뻔하다. 숨은 표는 여론조사 방법론의 문제일 뿐이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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