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송희 기자] 누구나 비밀은 있다. 그것의 크기가 어떻든 간에 누구에게나 ‘비밀’이란 것은 존재하는 법이다. 하지만 여기, 감당하지 못할 비밀의 무게를 가진 이가 있다. 내 안의 또 다른 자아. ‘하이힐’ 지욱(차승원)의 이야기다.
영화 ‘하이힐’(감독 장진)은 완벽한 남자의 조건을 모두 갖춘 강력계 형사 지욱이 자기 안에 존재하는 여성성 때문에, 지금까지의 삶을 포기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진정한 ‘내’가 되기 위해 조직과 위험한 거래를 시도하고, 그것으로 맞는 파국에 대한 감성 느와르.
영화는 ‘감성 느와르’라는 장르로 이름을 내놓았지만, 사실상 ‘하이힐’은 느와르보다는 멜로에 가까운 퀴어 영화다.
지욱은 자기 안에 존재하는 여성성 때문에 부러 해병대에 가고, 형사에 지원해 조직폭력배들과 싸워왔다. 때문에 많은 남성들에게 두려운 존재가 되었고, 동시에 동경의 대상이 되었던 그. “온 몸에 오버로크 자국이 선명하게 있는” 강력계 형사 지욱이지만 이면에는 립스틱과, 예쁜 속옷에 설레는 마음을 느끼는 여성의 그것이 담겨있다.
표면은 ‘감성 느와르’지만 그 질감은 분명 섬세하고 매끄럽다. 지욱이 자기 안의 ‘그녀’를 인정하기까지의 고된 시간과 그로 인한 복잡하고 미묘한 감성은 분명 ‘수컷냄새’가 물씬 나는 느와르와는 다른 모습이다.
정의 내릴 수 없는 장진 감독만의 유니크한 ‘장르 개척’이라고 할까. 끝내 스스로를 인정하고, 여자로 사는 것을 결심하게 된 지욱은 한 편의 퀴어 영화, 성장 영화를 연상하게 만들고 학창시절 지욱의 첫사랑은 풋풋한 멜로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거기에 스타일리쉬한 액션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싸움은 그들이 줄곧 말한 것처럼 ‘느와르’라는 장르에 부합한다.
독특한 장르의 요소들. 다소 강렬한 장르의 결합이지만, 상충보다는 융화되는 인상이 있다. 영화 전면에는 이처럼 미묘하고 유니크한 분위기가 깔려있으며 ‘하이힐’이 주는 에로틱한 분위기 말고도, 지욱의 과거 회상을 통해 풋풋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여름이 남아있다. 이런 이미지 간의 충돌은 코믹과 느와르에서도 연결되는데 우려와는 달리 관객들이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로 보인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은 칭찬하고 싶은 대목. 마초적인 지욱과 그 안의 여성성까지 매끄럽게 표현한 차승원과, 그를 동경했지만 그 마음까지 배신당한 오정세, 단 두 컷이었지만 강렬한 카리스마를 드러냈던 박성웅까지. 누구 하나 빼놓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배우들의 호연에 눈길이 간다.
특히 오정세는 ‘지욱 덕후’라 불릴 수 있을 정도로, 그의 남성다움에 매료된 허곤을 완벽하게 표현했다. 지욱의 완벽한 남성성을 동경하지만 그가 모든 걸 버리고 여성이 되려는 것과 비즈니스적인 약속을 파기한 것에 대한 분노를 느껴 결국 파국을 맞게 되는 허곤. 그가 가지는 심리적인 갈등과 배신감을 생동감 있게 느려냈다.
장진 감독의 작품이 아닌 듯, 맞는 듯한 개그 요소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시치미를 떼고 진지하게 상황을 이끌어나가지만 그 상황이 만들어내는 웃음 포인트는 관객들이 ‘하이힐’을 무겁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울 것 같다.
단순한 ‘액션 느와르’가 아니다. 어린 지욱과 소년의 사랑, 내 안의 다른 존재를 인정하기까지의 시간, 타인에 대한 기대와 그것의 배신 등 다양한 감성들이 밀집되어있다. ‘종합선물세트’ 같은 다양한 장르의 결합. 관객들 역시 그 ‘종합선물세트’를 흥미롭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6월4일 개봉. (사진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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