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독일인의 직업의식

입력 2014-06-05 20:40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우러르는 시선
탄탄한 경제성장 보장된 성숙한 사회

강남훈 < 산업단지공단 이사장 nhkang@kicox.or.kr >



독일 사람들과 미팅할 때는 한 가지 희한한 점이 발견된다. 도무지 휴대폰을 든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수시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한국인과는 차이가 있다. 이들은 다른 사람과 만날 때는 주로 가방에 휴대폰을 넣어 다른 곳에 놔둔다. 이게 상대방에 대한 예의이자 미팅에만 전념하기 위한 방법이다.

독일 기업 근로자들도 마찬가지다. 최근 독일 기업을 몇 곳 방문했는데 근무시간에 휴대폰 통화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드레스덴에 있는 자동차회사나, 빌레펠트에 있는 공작기계회사나, 귀테슬로에 있는 가전업체나 마찬가지였다. 일과중에는 오로지 일만 한다. 잠깐의 휴식시간에 화장실을 가거나 하는 것 이외에는 맡은 바 일에만 전념한다.

독일어로 직업을 ‘베르푸(Beruf)’라고 한다. 이 단어는 단순한 직업(job)이 아니다. 신에게서 받은 소명(calling)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어떤 일을 하든 귀천이 없고 맡은 바 일을 열심히 하는 게 바로 신에 대한 ‘신성한 의무’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이는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가 정리한 사상이고,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저술한 막스 베버가 체계적으로 완성했다고 한다.

이런 정신 속에서 탄생한 게 바로 마이스터다. 도제를 거쳐 마이스터가 되는 길은 험난하다. 대개 10년 이상 걸린다. 이들은 대패질을 하든, 톱질을 하든 그 분야의 최고 기술자들이다. 마이스터가 되면 사회적으로 존경받는다. 월급이 오르고 안 오르는 것은 중요한 게 아니다. 독일 사람들은 국회의원이나 장관보다도 마이스터를 더 존경한다.

독일인은 직업을 소중히 여긴다. 대대로 이어지는 성(姓)에도 직업을 쓰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슈마허’는 구두장이다. ‘뮐러’는 방앗간 주인이며 ‘부흐빈더’는 책을 만드는 제본공이다.

한국에도 이런 정신이 필요하다. 직업엔 귀천이 없다. 산업단지에서 기름 묻은 작업복을 입고 선반작업을 하는 사람이나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는 사람 모두 귀한 일을 하는 것이다. 선반으로 쇠를 깎지 않으면 기계를 만들 수 없고 자동차도 탄생할 수 없다. 이런 기능인력과 기술자를 중시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자리 잡을 때 비로소 한국은 성숙한 사회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땀과 노력이 경제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고 확신한다.

강남훈 < 산업단지공단 이사장 nhkang@kicox.o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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