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9개월 만에 금리 역전
"회사채 건강하지 않다는 신호"
[ 이태호 기자 ] 카드·캐피털 등 여신전문회사 채권 금리가 일반 회사채 금리 아래로 떨어지는 금리 역전현상이 1년9개월 만에 다시 나타났다. 7거래일 연속 이 같은 현상이 지속된 경우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단 두 차례밖에 없을 정도로 이례적이다.
시중 여유자금이 단기 금융상품으로만 옮겨다니는 단기 부동화(浮動化) 현상이 심해진 결과라고 전문가들은 풀이했다. 회사채시장이 기업의 장기 자금조달 창구로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경기 불확실할 때 금리역전
5일 채권평가회사들에 따르면 여신전문회사채(이하 여전채) 금리가 회사채 평균 금리보다 미세하게 낮은(채권가격이 비싼) 상황이 지난달 27일부터 이날까지 계속됐다. 3년 만기 AA 신용등급 회사채 평균 금리는 연 3.1%인데, 여전채는 최근 7거래일 동안 이보다 최소 0.001%포인트에서 최대 0.006%포인트 낮은 수준을 나타냈다.
여전채 금리는 통상 회사채보다 높은(채권가격이 싼) 수준에서 형성돼왔다. 자주 발행되는 데다 물량도 많아 희소가치가 떨어지기 때문. 2003년 카드사태 경험도 투자자들이 여전채 값을 잘 쳐주지 않는 배경이다.
여전채 금리가 회사채 금리보다 7거래일 이상 낮았던 적은 금융위기 이후 두 차례에 불과했다.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1월, 유럽 재정위기가 한창이던 2012년 8월이었다. 모두 경기 불확실성이 매우 컸던 시기다.
○파생상품 인기도 한몫
전문가들은 우량 회사채 금리에 플러스 알파(+α) 수익을 추구하는 파생상품의 인기와 시중 여유자금의 단기 부동화가 여전채 금리 하락을 가져왔다고 본다.
시장이 불안할 때면 투자자들은 증권사 특정금전신탁 창구 등을 통해 만기가 짧으면서도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주가연계증권(ELS)이나 파생결합증권(DLS) 등 파생금융상품을 찾는다. 이런 상품을 만드는 핵심 재료가 여전채다. 한 달에도 수차례씩 발행돼 언제든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만기 6개월~1년짜리 파생금융상품의 핵심 원재료(기초자산)로 쓰이는 것이다. 신용부도스와프(CDS) 계약 등과 묶어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으로 팔리기도 한다. 이런 수요가 늘면서 여전채와 일반 회사채의 금리 역전현상이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회사채시장 기능 저하 신호
단기 자금 부동화 현상은 최근 단기 금융상품인 요구불예금, 머니마켓펀드(MMF), 양도성예금증서(CD),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잔액 증가에서도 목격된다. 김명실 KB투자증권 선임연구원은 “주요 금융회사들의 단기 금융상품 규모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며 “투자와 소비의 선순환 구조에 악영향을 주는 등 경제회복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단기 부동화가 심해지면 회사채시장에도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윤영환 서울신용평가정보 상무는 “건강한 시장이라면 시중 자금이 채권펀드를 통해 다양한 신용등급의 장기 회사채로 흘러들어가야 한다”며 “여전채와 회사채 금리 역전은 국내 회사채시장이 구조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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