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선표 기자 ] “몇 달 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전사한 장병들에게 헌화했잖아요. 정말 부러웠어요. 미군과 함께 싸운 우리 학도병 동지들은 변변한 추모비 하나 없는데….”
지난해 6월 기자는 ‘잊혀진 그 이름, 在日학도의용군 642명’이라는 기사를 보도했다. 6·25전쟁이 터지자 조국을 지키기 위해 대한해협을 건너왔던 재일동포 출신 학도병들에 대한 내용이었다. 기사가 나간 날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최의연 진영학도의용군 동지회 회장(82)이었다.
최 회장은 “재일학도의용군은 아직 수십명이 살아있지만 내가 있었던 진영학도의용군 전우 100여명은 대부분 전쟁터에서 숨졌다”며 ‘잊혀진 K군번의 용사’들에 대한 얘기를 풀어냈다. 학도병으로 참전해 미군 소속 카투사(KATUSA)로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낸 전우들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30여년을 바쳤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기자는 최 회장에게 “꼭 전우들의 이야기를 기사로 남기겠다”고 약속했지만 그때는 지키지 못했다.
1년이 흐르고 다시 6월이 돌아왔다. 현충일을 이틀 앞둔 지난 4일 불현듯 지키지 못한 약속이 떠올랐다. 평소에는 아무 관심 없이 지내다 현충일 같은 ‘날’이 돼야만 관련 기사를 보도한다는 죄책감과 함께 경기 양주시에 있는 최 회장 자택으로 향했다. 보청기를 꼈어도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최 회장은 귓가에 입을 바짝 갖다대고 말해야만 겨우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의 아내 김영희 씨(81)는 “가까스로 전우를 찾은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전쟁에 참가하지도 않았던 엉뚱한 사람인 걸 알고 실망하던 남편의 모습을 봤을 때 가장 가슴이 아팠다”고 털어놨다.
군사편찬연구소의 한 선임연구원은 “정신없던 전쟁 초기에 학도병으로 참전해 다른 나라 군대에 속해 싸우다 보니 이들에 대한 기록은 전무하다”며 “사료가 없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노병들이 많다”고 했다.
64년 전, 바람 앞의 등불과 같던 조국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쳐 싸웠던 수많은 무명용사들. 어느샌가 그들은 대부분 국민들에게 1년에 단 하루만 떠올리고 마는 존재가 돼 버린 건 아닌지…. 최 회장 집을 나오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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