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있는 초원,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실감나는 아프리카를 누비다

입력 2014-06-09 07:01  

남아공, 사파리·와인 여행

마주하라…끝없는 광야에서 뛰노는 야생동물과의 교감
긴장하라…덜컹거리는 사륜구동車, 초원 질주
음미하라…양조 역사 350년, 개성만점 남아공 와인 맛에 감탄



[ 김명상 기자 ]
더반 인근에서 찾은 사파리 여행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다녀온 뒤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사파리 어땠어요?”다. 그렇다. 아프리카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작열하는 태양, 메마른 풀숲, 갈기를 늘어뜨린 채 위엄 있는(사실은 졸린) 표정으로 앉아 있는 사자, 초원을 뛰어다니는 얼룩말, 나무 위에서 날카로운 눈빛을 빛내는 표범 등. 하지만 이번 남아공 여행 일정엔 야생동물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없다. 처음 도착한 더반은 너무나 현대적인 도시다. 야생동물 없는 아프리카 여행이라니…. 이래서야 18시간이나 날아온 보람이 없다는 생각에 허탈해졌다.

현지 가이드에게 대안을 묻자 슐룰루웨 지역을 추천했다. 더반에서 북쪽으로 276㎞ 정도 떨어져 있어 상대적으로 가깝다. 규모는 작지만 ‘빅5’라 불리는 사자, 표범, 코끼리, 코뿔소, 버펄로를 모두 볼 수 있다고 했다.


출몰하는 동물들, 실감나는 아프리카

더반을 출발해 슐룰루웨 시내 중심가에 인접한 우비자네 야생동물 보호구역으로 향했다. 이곳은 원래 사냥농장으로 쓰였지만 1960년대 후반부터 생태관광 숙박시설로 용도가 바뀌었다. 차를 타고 숙소 입구로 가는데 길가에 얼룩말과 임팔라가 어슬렁대는 것이 보였다. 놈들은 사람을 별로 경계하는 기색 없이 풀을 마저 뜯거나 사진 찍는 사람들을 빤히 쳐다봤다. 자연에서 뛰노는 동물들을 보니 이제야 아프리카에 왔다는 것이 실감났다.

이곳을 찾은 진짜 목적은 ‘게임 드라이브’다. 흔히 쓰는 ‘사파리’라는 단어에는 동물사냥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래서 사륜구동 자동차를 타고 동물 구경에 나서는 것은 게임 드라이브라고 표현한다. 거친 굉음을 내뿜으며 자동차는 초원 곳곳에 난 길을 누볐다. 임팔라와 같은 초식동물은 자주 보였지만 기대했던 빅5는 찾지 못했다. 야생동물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간은 새벽이라는 말이 사실인가 보다. 오후 일정은 맛보기 체험만 하고 마무리되는 분위기다. 숙소로 돌아가기 전, 가이드가 높은 언덕으로 차를 몰고 가서 간이 테이블을 펼치고 보자기를 덮더니 맥주를 꺼내 놓는다. 작은 파티가 시작됐다. 아프리카의 넓은 광야와 일몰을 보면서 마시는 맥주 한 잔은 ‘호사 중의 호사’로 다가왔다. 기분이 좋아져서 물었다. 내일은 빅5를 볼 수 있을까? 가이드가 씩 웃으며 말했다. “기도하라.”


새벽, 빅5를 찾아 떠나는 여행

다음날 새벽 5시 반. 벌써 하늘이 희뿌옇게 밝아온다. 기대했던 빅5는 숙소 근처의 ‘슐룰루웨 움폴로지’ 게임 리저브로 가야 볼 확률이 높다고 한다. 게임 리저브는 사냥이 금지된 곳인데 이곳은 남아공에서 세 번째로 크다고 한다. 960㎢의 구역 안에 1500마리의 흰 코뿔소, 360마리의 검은 코뿔소를 비롯해 버펄로, 코끼리, 사자, 표범뿐만 아니라 누우, 얼룩말, 기린, 워터벅, 니알라, 멧돼지, 치타, 하이에나 등이 살고 있다.


어제 한 번 탔던 사륜구동 차량을 타고 이동하는데 새벽 바람이 너무 세고 차다. 게임 리저브에 도착하니 몸이 얼어서 손가락도 잘 움직이지 않는다. 리저브 안으로 들어가 덜덜 떨고 있자니 저 멀리 코끼리와 기린 몇 마리가 보였다. 운이 좋다. 이 지역에 동물 개체 수가 많다지만 땅이 워낙 넓어서 반드시 볼 수 있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차는 길을 벗어날 수 없다. 때문에 다가가지 못하고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 후에도 차는 이리저리 한참 움직였지만 한동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지루해지려는 순간 왼쪽으로 뭔가 검은 물체가 스쳐갔다. 운전하던 가이드에게 ‘스톱’을 외치고 후진하니 저편에 코뿔소가 보인다. 큰 뿔이 솟은 녀석의 머리가 나뭇잎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거대한 덩치가 느릿하게 고개를 돌리는 순간,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1~2초 정도였을까. 눈꺼풀이 살짝 내려온 것이 화난 듯했다. 문제는 눈이 보일 정도로 가까웠다는 것. 스무 걸음 정도의 거리. 사자조차 웬만해서는 코뿔소를 건드리지 않는다고 했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동물원 사파리와는 차원이 달랐다. 창살이나 다른 방어벽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이 정도의 긴장감이 들 줄이야. 조용한 풀숲 어디선가 죽고 죽이는 사투가 벌어지고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부터는 모든 동물이 달리 보였다. 흔해서 사진도 찍지 않았던 저 영양은 순한 눈망울을 빛내며 매일 죽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을 것이었다. 기특하다. 아프리카의 초원에서 살아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너무나 아름다운 기적이었다.

원숭이와 임팔라가 뛰노는 숙소

‘줄루랜드 트리 로지’는 아프리카의 자연 속에 툭 던져 놓은 듯한 환경 친화적 숙소다. 문을 나서면 임팔라나 양이 한가로이 돌아다니기도 하고, 창문을 닫지 않고 외출하면 원숭이들이 들어와 방안을 어지럽힐 정도다. 모두 24개의 로지가 있고, 샤워 시설과 에어컨, 냉장고, 모기장 등이 잘 갖춰져 있다. 발코니에 나가면 아카시아 나무의 일종인 피버트리 숲이 울타리처럼 감싼 모습을 볼 수 있다. 1박 845랜드부터. ubizane.co.za


남아공 와인에 탄복하다

많은 이들이 와인 하면 프랑스를 떠올리고는 한다. 그런 사람일수록 남아공의 와인을 맛보면 감탄사를 금치 못할 것이다. 가격 대비 품질이 월등한 데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다양하고 개성 있는 와인을 쉽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아공 와인의 역사는 350여년에 이른다. 처음 유럽에서 인도를 찾아가는 항로를 개척한 이후 많은 배들이 오갔고, 긴 항해에 따른 비타민 부족과 그로 인한 괴혈병이 문제였다. 중간 보급기지 케이프타운에서 채소나 과일을 많이 싣더라도 오래 보관할 수 없고, 워낙 뱃길이 멀다 보니 괴혈병을 피하기 어려웠던 것. 그래서 비타민이 들어 있는 와인 만들기가 1659년부터 시작됐으니 이것이 남아공 와인의 시작이다.

사실 처음 와인을 만들었을 땐 품질이 그리 좋지 못했다. 하지만 1688년 종교 박해를 피해 남아공으로 들어온 위그노(프랑스의 칼뱅파 신도)들이 포도 재배와 양조 기술을 전파하면서 품질이 급격히 높아졌다. 기독교에서 와인은 ‘예수의 피’를 상징한다. 따라서 포도 농사와 와인 제조 분야에서 수도사들은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다. 좋은 토양과 기술로 꽃피운 남아공 와인의 맛에 옛 선원들은 반해 버렸다. 집으로 돌아갈 때 몇 병씩 가져가기도 했고, 입소문을 타고 그 명성이 유럽에서도 높아졌다. 현재 남아공은 세계 7위의 와인 생산국이다.

단점은 국내에서 쉽게 접하기 어렵다는 것. 가격 때문이다. 남아공 와인이 국내에 오는 순간 각종 세금과 운송비가 더해져 가격이 원가의 2.5배 정도 높아진다. 도매상, 소매상, 레스토랑까지 거치면 현지에서 1만원에 팔리는 와인이 4만~5만원 정도가 되는 것이다. 높은 수준에 비해 남아공 와인의 인지도가 낮은 데다,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된 칠레 와인 등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낮은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와인 테이스팅을 즐기자

프렌치훅의 유명 와인 메이커 라모테(La Motte)에서는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와인 시음회를 진행한다.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며 일요일 또는 기타 휴일엔 휴무다. 1회 투어 인원은 8~16명 정도, 비용은 40랜드(한화 약 4000원) 정도다. 방문자가 많을 경우 기다려야 하는 만큼 예약은 필수다. +27-(0)21-876-8820, tasting@la-motte.co.za

슐룰루웨·스텔렌보스·프렌치훅(남아공)=김명상 기자 terr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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