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실장과 '박정희대통령 기념회' 인연
행정 경험 全無…'책임총리' 역할 논란도
[ 정종태 기자 ]
안대희 전 국무총리 후보자 낙마 뒤 새 후보자 인선을 놓고 2주간 고심을 거듭하던 박근혜 대통령이 결국 언론인을 골랐다. 정통 언론인 출신을 총리 후보자로 지명한 것은 역대 정부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10일 인선 결과를 발표하면서 “그동안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며 “공직 후보자에 대한 검증이 본인의 철학과 소신, 능력보다는 개인적인 부분에 너무 집중되는 경향이 있고 가족의 반대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아 인선에 시간이 걸렸다”고 밝혔다.
○2주간 장고 끝 ‘뉴페이스’ 낙점
총리 후보자 인선이 난항을 겪은 것은 무엇보다 안 전 후보자가 예상치 못한 ‘전관예우’ 발목에 걸려 중도 하차한 데 따른 여론의 높아진 검증 문턱 때문이었다. 초기 물망에 올랐던 인사들은 청와대 인사라인 검증 과정에서 줄줄이 탈락했다. 개혁성이 뛰어난 인사라도 도덕성에 조금이라도 문제점이 발견되면 곧바로 배제됐다.
이러다 보니 후보로 거론된 인물들이 정치인에서 법조인→대학 총장→충청 지역 인사→야권 출신 인사로 수시로 바뀌었다. 지난 주말부터는 백지상태에서 그동안 전혀 거명 안 된 제3의 인물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개혁 성향과 소신이 뚜렷한 50대 현직 장관급 관료와 명망 있는 전·현직 언론인 출신까지 검증 대상에 올려놓고 진지하게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그동안 모아놓은 인재 풀을 펼쳐놓고 총리 자격이 될 만한 각계의 모든 인사를 대상으로 스크린을 했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임명 땐 충북 첫 총리
청와대 관계자는 “문창극 후보자가 박 대통령이 지난달 말 국무회의에서 후임 총리 선임 기준으로 밝혔던 ‘개혁성’과 ‘도덕성’의 두 가지 조건을 모두 갖췄다는 점에서 적임자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했다. 민 대변인도 문 후보자에 대해 “뛰어난 통찰력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왔다”며 “공직사회 개혁 등 국정과제들을 제대로 추진해 나갈 분”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결국 정통 언론인 출신을 총리 후보자로 최종 선택한 것은 무엇보다 국회 인사청문회 통과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여권 관계자들은 해석했다.
문 후보자가 충청 출신이라는 점에서 일각에선 화합형 인사라는 풀이도 있다. 6·4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충청 지역 광역 단체장 네 곳에서 모두 참패한 것과 관련, 이 지역 민심을 고려한 인사라는 것이다. 문 후보가 정식 임명되면 충북(청주) 출신 첫 총리가 된다.
○박 대통령, 문 후보자 칼럼 애독
문 후보자는 정치 일선에서 기자로 뛰었지만 취재 과정에서 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적은 없다. 다만 취재 현장을 떠난 이후 오랜 기간 써온 보수 성향 정치칼럼에는 여러 차례 ‘정치인 박근혜’가 등장했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당 대표 시절부터 문 후보자의 칼럼을 즐겨 읽었고, 좋은 이미지로 기억해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 후보자는 지난해 5월 새로 출범한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 발기인으로 참여해 이사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기념사업회 초대 이사장은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맡았다. 이 때문에 문 후보자를 김 실장이 추천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박 대통령이 어렵게 찾은 언론인 출신 문 후보자가 향후 국가개조 과정에서 요구되는 ‘책임 총리’ 역할을 잘 수행해낼지에 대해선 시각이 엇갈린다. 여권 한 관계자는 “언론인 출신으로 현실 감각이 누구보다 뛰어난 것은 장점이겠지만, 평생 외길만 걸어와 행정 경험 등이 없다는 점은 장애요인이 될 것”이라고 했다. 더구나 향후 사회부총리가 신설될 경우 경제부총리와 사사건건 갈등을 빚을 소지가 큰데, 문 후보자가 총괄 컨트롤타워로서 조정 역할을 무난히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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