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고 싶은' 통신사
10월 단통법 시행되면 '실탄' 차별적 살포 어려워…상한선 낮춰야 부담 줄어
'여론 살피는' 방통위
상한선 동결·인하 해주면 소비자 외면 비난 우려…일부선 보조금 무용론도
[ 안재석 기자 ]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가 최근 방송통신위원회에 보조금 상한선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했다. 방통위는 오는 10일1일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시행을 앞두고 통신사와 제조회사의 다양한 목소리를 수렴 중이다.
방통위 고위 관계자는 10일 “통신 3사 모두 ‘지금보다 보조금 상한선을 올려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고 말했다. 현행 가이드라인인 27만원을 유지하거나 소폭 낮춰야 한다는 의견이다. 새로운 기준선을 제시해야 하는 방통위는 고민에 빠졌다. 보조금 상한선을 올리든 내리든 상당한 비난을 각오해야 한다. 방통위가 고심하는 사이 근본적인 질문도 끼어들었다. ‘보조금 규제가 정말 필요한 걸까?’
○보조금 둘러싼 복잡한 셈법
통신회사들이 보조금 상한선의 동결 또는 인하를 주장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27만원이라는 상한선이 정해졌던 때는 통신회사들이 대부분 조원 단위의 이익을 올리던 호시절”이라며 “지금은 이동통신시장이 포화상태에 빠져 이익 규모가 줄어든 만큼 보조금 상한선은 내리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스마트폰 출고가 인하 바람이 불고 있는 것도 상한선을 올릴 필요가 없다는 주장의 근거다.
통신사들의 속사정은 좀 더 복잡하다. ‘마케팅 비용 급증’에 대한 우려가 깔려 있다. 단통법이 시행되면 통신사들은 보조금 규모를 매장에 정기적으로 게시해야 한다. 가입자 간 보조금 차별을 막자는 취지다. 상한선이 인상되면 소비자의 눈높이는 올라간다. 예를 들어 상한선이 50만원으로 올라갔을 경우 보조금을 10만원만 지급하면 ‘폭리’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옛날 10만원과 느낌이 다르다. 그렇다고 보조금을 확 늘릴 수도 없다. 예전엔 일부 계층에 보조금을 몰아줬지만, 이제는 최소한 공시한 만큼은 균등하게 지급해야 한다. 비용 부담이 너무 커진다. 방통위 관계자는 “보조금 상한선은 낮춘 상태에서 기존의 ‘깜짝 보조금’ 전략은 지속하고 싶은 게 통신사들의 속내”라고 말했다.
○딜레마에 빠진 방통위
현행 보조금 상한선(27만원)은 법적 근거가 없다. 이용자 차별을 금지하는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 제42조를 원용할 뿐이다. 새로 등장한 단통법은 시행령 아래 고시에 상한선을 명시하도록 규정했다. 2008년 전기통신사업법상 단말기 보조금 금지조항이 사라진 이후 6년 만에 보조금 규제가 공식 부활하는 것이다.
방통위는 단통법 시행 전까지 최대한 여론을 살핀다는 입장이다. 그만큼 결정이 어렵다. 상한선을 동결하거나 내리면 당장 “통신사를 위해 소비자 이익을 외면했다”는 비판이 나올 우려가 크다. 그렇다고 올리면? 보조금 대란을 인정해주는 꼴이 된다. 무의미한 보조금 경쟁 대신 서비스 차별화를 유도한다는 단통법의 근본 취지에 위배된다. 일부 제조사가 보조금을 올려야 한다며 정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보조금 상한선에 대한 논의가 깊어질수록 오히려 보조금 규제의 무용론이 힘을 받는 역설적인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방통위 관계자조차 “성장동력이 사라진 통신시장에서 불법 보조금을 근절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할 정도다. 그동안 통신사들은 규제 당국의 잇단 제재에도 불구하고 27만원이라는 허들을 우습게 넘나들었다. 틈만 나면 100만원 이상의 거액 보조금을 살포하며 ‘대란’을 부채질했다. 매출 확대를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려는 기업의 기본 생리는 거스르기 어려웠다.
“보조금 규제로 이익을 보는 곳은 통신사도 소비자도 아닌 규제 당국뿐”이란 볼멘소리가 통신판에서 나오는 이유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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