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형님의 얼굴

입력 2014-06-11 20:46   수정 2014-06-12 05:13

중2때 가출·고교 퇴학·대학입시 실패
좌절 때마다 힘 실어준 형의 '한 마디'

이병석 < 국회의원·새누리당 lbs@assembly.go.kr >



‘우리 형님 얼굴 수염 누굴 닮았던고/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이 나면 우리 형님 쳐다봤지/ 이제 형님 그리우면 어드메서 본단 말인고/ 두건 쓰고 옷 입고가 냇물에 비친 나를 봐야겠네.’

연암 박지원이 자신의 형님을 그리며 쓴 한시(漢詩)를 되뇌며 어릴 적 형님과 같이 찍은 희미한 사진을 앨범에서 꺼내 보니 지난 세월이 어제 일처럼 생생히 떠오른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다. 찌든 가난에 지쳐 집을 뛰쳐나왔다. 서울 명동 한복판 당구장에서, 수원의 전통 중국집에서 점원을 하며 성공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했다. 그러나 시간은 가고, 가진 돈은 다 써버리고, 결국 ‘돌아온 탕아’처럼 집으로 돌아갔다. 그 무섭던 형님은 아무 말 없이 나를 꼭 안아줬다.

고교 2학년 때는 학교 납부금을 내지 못해 퇴학당했고, 형님은 사업에 실패해 서울 영등포에서 스페어 운전기사를 하며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난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절망감에, 꿈꿀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답답함에 길을 잃고 헤매었다. 그때도 형님은 내가 학업을 포기하지 않도록 격려해 줬다.

대학입시에 실패했을 때였다. 형님은 “석아, 인생은 끝이라 생각될 때 새롭게 시작된다. 나는 너를 믿는다. 너는 반드시 해낼 것이다”라고 희망의 기운을 불어넣어 줬다. 대학입시를 앞둔 어느 날, 형님이 장출혈로 입원했을 때도 형님은 내 입학금으로 모아둔 돈만은 쓰지 않겠다고 입원 나흘째 되는 날 탈출하듯 퇴원했다. 형님은 나의 국회의원 3선 당선 선물로 금뱃지 무늬 세 개가 새겨진 행운의 열쇠를 전해 받고는 그리 머지않아, 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런 형님의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의 내가 어찌 있을 수 있었을까.

우리 시대에 또 하나의 형님 얼굴이 보인다. 바로 홍명보 브라질월드컵 축구대표팀 감독이다. 홍 감독은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다. ‘홍명보 장학재단’을 통해 유소년 축구선수를 육성하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던 홍 감독은 지도자로서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한국 축구 사상 첫 동메달을 따냈다. 홍 감독의 ‘형님 리더십’이 이룬 값진 승리였다. 내일은 브라질월드컵 개막일이다. 세월호의 아픔으로 지친 대한민국에 환한 미소로 답해줄 홍 감독을 기대해 본다.

연암 박지원이 그리워한 형님의 얼굴에서, 위기 때마다 나의 손을 잡아준 내 형님의 얼굴에서, 자신의 팀원들을 묵묵히 믿어주는 홍 감독의 얼굴에서 우리는 희망찬 내일을 본다. “대한민국아, 다시 일어나자. 너는 반드시 해낼 것이다.”

이병석 < 국회의원·새누리당 lbs@assembly.g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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