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마의 해 2014년 6월 13일 새벽 5시, 전 세계인이 삼바 리듬과 함께 광란의 열기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할 브라질 월드컵이 하루 24시간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이제부터 많은 사람들의 시선은 “누가 우승할까?”로 모아집니다.
베팅회사 주술사 마술사 축구전문가들이 이른바 ‘족집게’를 자처하며 과감하게 예언을 내놓습니다. “개최국 브라질?” “2010년 남아공월드컵 우승국 스페인?” “전차군단 독일?” “메시의 아르헨티나?” “혹시 대한민국?”...
외신에 따르면 브라질 축구 영웅에서 저주의 대명사로 추락한 펠레가 브라질을 열외 시킨 채 ‘독일, 스페인’을 고른다는 소식입니다. 일각에선 “마음에도 없는 소리하면 그 또한 저주”라는 뒷말이 따릅니다. 이번엔 진짜 맞힐지 모른다는 지적입니다.
동물들도 이번 월드컵의 예언 대열에 나섰습니다. 베팅의 천국으로 불리는 중국에선 영리한 판다를 이번 대회에서 ‘족집게 도사’로 키울 복안이라는 외신입니다. 브라질 현지에선 10장생 동물 중 하나인 ‘거북’이 벌써 ‘동물계 노스트라다무스’라고 선언했습니다.
뜻이 큰 머리인 '카베상 Cabecao'이라는 이름의 이 바다거북은 현지의 한 수영장에서 개막전 브라질 대 크로아티아 간 승부를 예상했다고 합니다. 결과는 브라질 국기에 달린 생선을 선택했습니다. 실제 어떤 결과가 나올까 궁금한 대목입니다.
잘 알려지다 시피 각 국에서 동물을 이용한 일종의 승부예측 마케팅의 원조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의 최고 스타 점쟁이 문어 ‘파울’이지요. 파울은 이 대회에서 예측한 8개 경기 결과를 모두 적중시켜 ‘8연승의 불패신화’를 이뤘습니다.
파울이 소속한 독일 서부 오버하우젠 수족관측은 그해 10월 26일 파울이 숨을 거두자 이 업적을 기려 ‘디지털 추모관’을 마련해 활약상을 남겼습니다. 브라질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파울이 4년 전에 남긴 ‘위대한 흔적’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파울이 결승전 보다 3, 4위전 예측서 더 뜸 들인 이유= 때는 파울이 저번 월드컵에서 소속 국가인 독일이 치른 여섯 경기 결과를 다 맞추고 난 이후인 2010년 7월 9일. 여섯 경기는 조별 리그에서 호주와 가나에 승리하고 세르비아에 패한 것과 잉글랜드와 16강전, 아르헨티나와의 8강전 승리, 그리고 스페인과의 4강 패배로 구성됐습니다.
직전 스페인과의 4강전에서 예측인 패배와 그 결과에 대해 일부 독일인이 “파울을 샐러드로 만들어 버리자”고 폭언까지 등장한 형편이었지요. 파울은 이날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연하게 독일 대 우루과이의 3, 4위 결정전과 스페인 대 네덜란드 간 결승전 예언에 나섰습니다.
먼저, 파울은 3, 4위전을 점치면서 매우 신중한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국기가 그려진 2개의 네모 상자위에 걸터 앉아 긴 다리를 펼친 채 10분이라는 긴 시간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지요.
그리곤 독일 승리를 점쳤습니다.그러자 어이없게도 독일인들이 환호하는 모습을 보였지요. 죽일려고 할 때는 언제란 듯이. 사람들은 오랜 시간 생각에 빠진 파울을 보고선 바둑의 속담 ‘장고 끝에 악수 낸다’는 말을 떠올렸습니다. “파울이 드디어 틀릴 가능성이 있겠군.”
7월 11일 실제 벌어진 독일과 우루과이 경기. 두 나라 대표팀은 말 그대로 역전에 역전, 엎치락 뒤치락 하는 흥미로운 경기를 축구팬들에게 선사했습니다. 독일-우루과이 전의 스코어는 1 ; 0, 1 : 1, 1 : 2, 2 : 2, 3 : 2 (최종)로 이어졌지요.
축구팬들은 그 때서야 비로소 “왜 파울이 예측 행사에서 그토록 장고했는 지”를 이해하게 됐습니다. “저리도 복잡한 스코어가 나왔으니 결론 내리는 것이 쉽지 않았겠다.”
두 번째, 파울의 결승전 예언 이벤트입니다. 파울은 스페인과 네덜란드의 상자를 보자 마자 순식간에 스페인의 승리를 낚아 올렸습니다. 앞선 3, 4위전 예상 때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지요.
사람들은 이에 “파울이 드디어 실수를 하는구나.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더니”라는 편견을 머리속에 새겼습니다. 이처럼 생각한 이유론 파울이 독일이 아닌 국가들 간의 대결을 처음 예상하는데다 지나치게 서둘러 판정을 내놓았기 때문이었고요.
7월 12일 벌어진 실제 게임. 네덜란드와 스페인 선수들은 전후반과 연장전을 포함해 120분간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었습니다. 그러나 이날 터진 골은 양팀 통틀어 달랑 한 골. 스페인의 이니에스타로 부터 나온 천금같은 결승골입니다.
사람들은 게임이 끝난 뒤 이런 느낌을 가졌습니다. “파울의 빠른 판단엔 역시 그런 뜻이 숨어 있었군.” 우스갯소리를 섞어 파울의 게임 승패에 대한 상황을 되짚어 봤습니다만 당시 파울의 예측은 실제 눈으로 보고도 잘 믿기지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
♣8자와 인연 깊었던 파울 = 남아공 월드컵에서 8연승의 신화를 쌓아 신통방통의 대명사로 급부상했던 파울은 원래 영국에서 태어나 사망한 독일 수족관으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2008년에 태어났다고 하니 월드컵이 끝난 시점 나이는 두 살 반.
파울이란 이름은 독일의 시인 보이 로센이 지은 '문어의 파울'이라는 시 제목에서 따왔다 하지요. 추정컨대 이 때 파울이란 이름은 영어식으로 발음하면 '폴', 우리의 성경에선 선지자인 사도 '바울'에서 비롯한 게 아닌가 보였습니다.
문어는 수명이 짧게는 3년에서 길게는 5년 정도라는 점에서 앞으로 파울이 살 날은 그다지 길어 보이지는 않다는 게 대체적 관측이었지요. 이 때문에 월드컵 당시 패배 예언을 경험한 나라인 아르헨티나와 독일 국민들이 "살해하겠다"고 한 위협은 별 의미없는 행동으로 지적되기도 했습니다.
파울이 속한 여덟 개 족(足)을 가진 연체동물 문어는 영어로 '옥토퍼스(Octopus)'라 씁니다. Octopus 는 문어 자신의 발 개수인 여덟 (8)을 뜻하는 라틴어 어원 ‘Oct’ 유래했고요. 이를 지난 월드컵에서 예측 결과와 연결시켜 보면 8개 발을 가진 연체동물이 지난 월드컵에서 벌어진 8차례의 경기 결과를 맞춘 셈입니다. 또 월드컵에서 스페인을 8번째 우승국 대열에 올려 놓았고요.
참고로 Oct에서 기원한 영어 단어론 '음계'를 말하는 '옥타브(Octave)' ,지금의 달력인 '그레고리우스력' 에서 10월을 의미하는 '옥토버(Ooctober) 등이 거론됩니다. 문어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습니다만 여덟 八(8)은 중국인들이 복을 부른다는 의미의 '發財(파차이)'의 첫 발음이 비슷해 굉장히 선호하는 숫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파울은 진짜 예지능력을 갖췄을까?=문어는 한자로 文魚로 표기합니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풍월 (글줄) 좀 읊을 줄 아는 아는 물고기라는 뜻인데요. 하필 선조들이 이 동물에 이름을 붙이며 고기 어(魚)자 앞에 글월 문(文)자를 쓴 것일까?
‘문’자야 門도 있고 問도 있는데. 문어에 글월문자가 들어간 건 이 동물이 위험에 처했을 때 내 뿜으며 달아나는 '먹물 주머니'에서 비롯한다는 설명입니다. 보통 학식이 뛰어난 사람을 일컬 때 ‘먹물 좀 들었다’고 비유하지요. 약간 억지스러운 측면이 있습니다만.
지난 월드컵에서 기가 막힌 예언을 내놓고 '살아있는 노스트라다무스급 동물'이란 칭호를 받은 파울에 대한 궁금증은 뭐니뭐니 다음과 같은 말이 꼽히지 싶습니다. “그가 발휘한 예지는 진짜 신통력에서 비롯하는 것일까? 아니면 우연의 일치일 뿐일까?”
각종 자료는 문어를 실제 ‘똑똑한’ 동물이라고 지목하고 있습니다. 백과사전들의 설명에 따르면 문어는 무척추 동물 가운데 가장 복잡한 뇌를 가졌다고 합니다. 한 사전은 이 동물을 “장기 기억과 단기 기억을 가지고 있으며 시행착오를 통해 문제 해결을 익힌다. 한번 어떤 문제를 해결하면 기억하여, 비슷한 문제가 생겼을 경우 쉽게 해결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이를 다른 말로 문어가 학습 능력을 가졌다고 설명하고요. 문어의 능력은 예를 들어 거울을 보여 주었을 때 자신을 차츰 인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도구를 사용하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하고요. 코코넛 껍데기를 운반해 은신처를 만든다는 겁니다.
문어의 영리성은 자신 생명이 위험에 처했을 때 잘 나타난다고 합니다. 다른 생물에 의해 잡아 먹힐 상황에 닥치게 될 경우 일부러 자신 다리를 잘라서 포식자에게 줌으로써 잡아 먹히는 것을 피한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비추어 패배 예측을 하고 실제 그렇게 됨으로써 분노를 표시한 나라 국민들이 자신을 잡아 먹으려고 들었다면 파울은 아마도 “여기 내 다리나 하나 먹고 떨어져라”라며 굉장히 냉소적 반응을 보였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입니다.
아무튼 이를 종합해 보면 당시 파울이 보여준 예지력은 최소한 연필 굴려 때려 맞추듯 나온 것은 아닐 거란 느낌이 강합니다.
한경닷컴 뉴스국 윤진식 편집위원 jsy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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