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유명인 이름·사진 뿐만 아니라 말투·유행어도 보호대상?…퍼블리시티권이 뭐기에…거세지는 논란

입력 2014-06-13 17:47  


‘로큰롤의 전설’ 엘비스 프레슬리의 2013년 사후 수입은 578억원. 2009년 사망한 마이클 잭슨의 사후 수입은 생전 수입보다 많아 작년에 1680억원에 달했다. 엘비스 프레슬리와 마이클 잭슨 모두 공연 수입이 없고 사후 음반 판매가 지속적으로 폭증하지 않음에도 여전히 엄청난 사후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후 유명인 수입의 상당 부분은 바로 ‘퍼블리시티권’ 때문이다. 퍼블리시티권은 연예인·스포츠 선수 등 유명인의 이름과 초상 등을 상업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다. 미국 등지에서는 60여년 전부터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해왔다. 최근 국내에서도 연예인들의 퍼블리시티권 침해 소송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법 문안이 정해지지 않았고 대법원 판례가 없어 소송마다 권리의 인정 여부 판결이 엇갈린다.

‘초상 등 공개가치’의 보호

퍼블리시티권(the right of publicity)은 1953년 미국 연방순회항소법원이 처음 인정해 영미법계에서 활성화되기 시작한 일종의 재산권이다. 유명인 등이 자신의 이름 사진 등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권리다. 퍼블리시티권을 인정받으면 초상이나 이름 등을 도용당했을 때 초상권 외에 재산권 침해를 주장해 실질적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 생존인만 주장할 수 있는 초상권은 원칙적으로 상속과 양도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퍼블리시티권은 상속과 양도도 가능하다. 권리를 침해당했을 때 위자료 정도만 받을 수 있는 초상권과 달리 퍼블리시티권은 침해 정도와 기간까지 고려해 손해배상액이 훨씬 커진다. 상업적 가치가 크고 개인의 권리 침해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것이다.

퍼블리시티권이란 용어는 1953년 미국 제2연방항소법원의 제롬 프랭크 판사가 처음 사용했다. 판결문에서 “전통적으로 인정됐던 프라이버시권 외에 자신의 초상이 갖는 공개적 가치에 또 다른 권리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퍼블리시티권”이라 명한 것이다. 광고 영화 텔레비전 비디오 등 다양한 대중매체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과거의 프리이버시권만으로는 개인의 초상에 수반되는 상업적 이익을 보호하는 데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초상 등의 공개가치’의 보호가 이 권리의 도입 취지다.

美, 특유 제스처·말투도 인정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매년 사망한 유명인(dead-celebrites)의 수입 순위를 발표한다. 망인은 공연·방송 출연 등과 같이 직접적 활동으로 발생하는 수입이 없다. 따라서 사후 수입의 상당부분은 퍼블리시티권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이 권리의 인정은 매우 중요하다. 음반 판매 등이 공연 수입을 대체할 수 있지만 가수를 제외한 배우·스포츠 선수 등의 경우 본연의 수입이라고 할 수 있는 선수 연봉, 영화 출연료 등이 사망 후 발생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포브스에서 발표한 유명 사망인의 사후 수입액의 1위는 마이클 잭슨(1680억원)이고 2위는 앨비스 프레슬리로 578억원이다. 이어 만화가 찰스 슐츠가 389억원을 벌었다.

미국은 현재 30여개 주에서 관련법을 만들어 퍼블리시티권을 명문화했다. 주법으로 보장하고 그 보장 범위는 주마다 각양각색이다. 가장 넓게 이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 인디애나주는 사후 100년까지 인정한다. 또 성명과 사인뿐만 아니라 제스처, 특유의 말씨와 행동까지 퍼블리시티권의 보호를 받는다.

일본은 한국과 같이 퍼블리시티권에 대한 법 명문 규정이 없다. 하지만 지난해 최고재판소가 “유명인에게는 자신의 이름이나 사진 등이 상업적 목적으로 무단 사용되지 못하게 할 권리인 퍼블리시티권이 있다”는 첫 판결을 내놓아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재산권 보호 vs 표현의 자유

우리나라는 퍼블리시티권에 대한 법이나 대법원 판례가 아직 없다. 하급 판결 사례마다 퍼블리시티권 인정 여부도 엇갈린다. 또한 퍼블릭시티권을 인정해 배상을 결정한 하급판결에서도 인격권 침해에 따른 위자료의 일종으로 사실상 퍼블리시티권으로 받은 손해배상은 아니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우리나라에서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한다면 그 범위는 어디까지 가능할까?

이 권리는 ‘재산권 보호’라는 측면과 기본권으로서의 ‘표현의 자유 보장’의 헌법 정신의 충돌이 보장 범위 결정의 핵심이다. 상업적 목적의 상품에는 제동을 걸 수 있지만 예술가의 작품 속 유명인의 사진 등을 작품 소재로 사용했다고 퍼블리시티권 침해를 주장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하더라도 재산권으로서 상속될 수 있는지, 몇 년이나 인정되는지 등 세부 사항도 정할 필요가 있다.

유명인 등은 통상 성명과 초상이 널리 공개될 수밖에 없고 일정 부분 이를 공개하는 데 동의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 법조인은 “퍼블리시티권을 한계 없이 인정하면 현실에 맞지 않아 오히려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기 힘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민효린 코는 ‘불인정’, 정준하 유행어는 ‘인정’…엇갈리는 판결

최근 배우 민효린과 가수 유이가 자신들의 퍼블리시티권을 침해당했다며 제기한 소송에서 패소했다. A성형외과·피부과 병원 홈페이지에 “민효린 코를 만들어 드립니다” 등의 내용과 함께 사진과 예명을 동의 없이 사용해 퍼블리시티권을 침해당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재판부는 “퍼블리시티권의 의미, 범위, 한계 등이 아직 국내에서 명확하게 정해졌다고 볼 수 없다”며 “연예인 사진과 이름을 사용했다는 것만으로 퍼블리시티권을 침해했다고 볼 수 없고 사진과 이름을 사용해 직접적인 수익을 얻었다고 볼 자료가 부족하다”고 원고 패소 판결 이유를 밝혔다. 문제는 앞선 1심에서는 상반된 판결을 내렸다는 점이다. 1심 재판부는 퍼블리시티권 침해에 따른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으나 2심 재판부에서는 이를 번복했다.

반면 2004년 개그맨 정준하는 그의 유행어인 “두 번 죽이는 짓이에요” “…라는 편견을 버려” 등의 문구를 게재한 이동통신회사의 고객들이 돈을 지급하고 캐릭터를 다운로드받도록 한 콘텐츠 제작 공급회사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500만원 배상을 받은 사례 등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퍼블리시티권에 대한 대법원 판례가 없으나 법원 실무에서는 1995년부터 퍼블리시티권 개념을 인정했다. “퍼블리시티권이라 함은 재산적 가치가 있는 유명인의 성명 초상 등 프라이버시에 속하는 사항을 (대가를 지급하고)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권리”이라고 판시했다. 하지만 이후 많은 하급심 판결에서 퍼블리시티권에 관해 엇갈린 판결을 하고 있다. 법안 명문화를 통해 퍼블리시티권의 인정 여부 및 권한의 특성 등에 대한 구체적 정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국회에서 2005년부터 퍼블리시티권 명문화를 위한 입법화가 진행 중이다.

손정희 한국경제신문 연구원 jhs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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