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를 바꾼 사건들 (38) 국가경쟁력의 그릇된 신화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때 日 버팀목 못해 회복 더뎌
국가와 국가는 협력 관계
이웃 나라의 경제 침체가 우리 경제에 호재될 수 없어
경상흑자가 국가경쟁력 아냐
수출은 좋고 수입은 나쁜 것…흑백 논리로 판단하기 어려워
“드디어 일본 경제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만약 이런 뉴스를 듣게 된다면 기뻐해야 할까, 걱정부터 앞세워야 할까? 일본과 한국은 세계 시장에서 수백 가지 제품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관계로 알려져 있다. 이런 일본의 경제가 무너진다면, 한국의 수출은 배가 될 것이고, 무역수지는 엄청난 흑자를 기록할 것 같다. 우리 한국의 경제가 날개를 달고 승승장구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미국이 기침을 하면 일본은 감기가 들고 한국은 몸살을 앓는다’는 말이 있다. 미국이나 일본 경제가 휘청거리면 한국이 좋아할 것이 아니라 걱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로 돌아가 보자. 아시아에 경제 위기가 닥치자 한국을 비롯한 각국은 이 위기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경기회복은 너무나 지지부진했다. 아시아에서 버팀목 역할을 해야 할 일본의 경제 상황이 나빠 다른 나라들의 경기회복에 별 도움이 안 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는 국가와 국가가 서로 경쟁을 한다는 잘못된 생각 때문이다. 국가와 국가가 서로 경쟁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예를 들어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할 때 승리자와 패배자라는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을 떠올린다. 그래서 자국의 문호는 거의 개방하지 않고 타국의 문호를 활짝 열어젖혀 ‘유리하게’ 협상한 국가는 이익을 누리고, 반대로 ‘불리하게’ 협상한 국가는 그만큼 손해를 본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은 정반대다. 19세기 경제학자 헨리 조지는 “해상 봉쇄함대는 적국의 무역을 막는 수단이며, 보호관세는 자국민의 무역을 막는 제도다. 보호주의라는 것은 전시에 적국이 우리에게 하는 것을 평화시에 우리가 우리에게 하는 것이다”고 했다. 우리 자신의 목을 우리 스스로 조르는 일의 결과가 좋을 리는 만무하다.
수출은 좋은 것이고 수입은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국가와 국가가 서로 경쟁을 한다는 잘못된 미신의 산물이다. 수출을 많이 해서 경상수지가 흑자가 되면 선(善)이고 적자가 되면 악(惡)이라는 생각도 마찬가지다. 이런 생각은 수출을 많이 해서 금을 쌓아놓으면 부자 나라가 된다고 생각했던 중상주의 시대의 유물이다. 하지만 이미 그 당시에도 애덤 스미스는 중요한 것은 쌓아놓은 금의 양이 아니라 국민들이 향유할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의 양과 질이라는 점을 설파했다. 이 말은 우리가 경제활동을 하는 본래의 목적을 되돌아보게 한다. 경제활동을 하는 목적은 생산이 아니라 소비다. 우리는 소비하기 위해서 생산하고 판매한다. 마찬가지로 수입하기 위해 수출을 하는 것이지 수출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수출 자체가 목적이 돼 버린 전도(顚倒)된 관점에서 보면 자국 화폐의 가치를 낮추고 상대국 화폐의 가치를 높이라는 요구를 하는 것이 당연시된다. 특히 경제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한국의 경우 환율 변화에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환율이 몇 퍼센트 하락하면 기업의 이익이 줄어들고 경제가 어려워진다면서 외환당국이 개입할 것을 촉구하곤 한다.
그렇지만 이런 식의 ‘환율전쟁’을 벌이는 것은 우리에게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우리를 가난하게 만들 뿐이다. 자국 화폐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추는 일은 우리 물건을 외국인에게 헐값에 준다고 하는 것과도 같다. 좋은 물건을 거의 ‘공짜’로 주는 사람과 좋은 물건을 거의 ‘공짜’로 얻는 사람 중 누가 더 부자가 될 것인가는 자명하다. 헐값에 우리 물건을 사고 남는 돈으로는 우리 물건을 더 사거나, 아니면 다른 물건을 구입할 수 있게 된 외국인들은 부자가 된다. 환율을 인위적으로 높여 자국 화폐의 가치를 낮추는 일은 열심히 일해서 외국인의 뒷바라지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경상수지가 흑자인지 적자인지가 국가 경쟁력을 나타낸다는 이상한 결론도 국가와 국가가 경쟁한다는 잘못된 사고에서 파생된다. 경상수지가 흑자면 국가 경쟁력이 있는 것이고, 적자면 없는 것이라는 얘기를 심심찮게 듣게 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한국이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초고속 성장을 하던 1970~1980년대 한국의 경상수지는 매년 적자였다. 반면 1990년대 후반부터는 경상수지가 매년 흑자를 기록하고 있고, 흑자 폭도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만약 경상수지가 국가 경쟁력을 나타내는 지표라면 1970~1980년대 한국의 국가 경쟁력은 형편없었던 반면 1990년대 후반 이후는 매우 높다고 해야 한다. 과연 그런가?
이런 식의 잘못된 국가 경쟁력 개념은 개별 기업의 경쟁력을 그대로 국가 차원으로 옮겼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 경제 내에서의 기업과 산업 부문의 상호의존성을 도외시하고 있다. 수출을 활성화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환율을 높이는 것이 일부 수출기업에는 환영받을 일이겠지만, 다른 기업들과 소비자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니다.
국가와 국가는 경쟁하지 않는다. 기업과 기업, 개인과 개인이 경쟁하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이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삼성전자와 소니가 경쟁하고 있고, 현대자동차와 도요타자동차가 경쟁하고 있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소니가 잘못되는 것이 호재가 될 수 있다.
소니가 멈칫거리는 동안 삼성전자는 세계 시장에서 판매를 늘리고 시장점유율을 크게 높일 수 있다. 반면 소니의 판매는 줄고 시장점유율도 떨어진다. 즉 기업과 기업 간 경쟁관계는 제로섬 게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입장이 아닌 한국의 입장에서는 일본이 잘못되는 것은 호재가 아닌 악재가 된다. 일본이 망해 북한 같은 나라가 됐다고 상상해보라. 국가 대 국가의 관계는 경쟁 관계가 아닌 협력 관계며, 포지티브섬 게임(positive-sum game)의 관계다. ‘주식회사 대한민국’은 없다.
권혁철 < 자유경제원 자유기업센터 소장 >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때 日 버팀목 못해 회복 더뎌
국가와 국가는 협력 관계
이웃 나라의 경제 침체가 우리 경제에 호재될 수 없어
경상흑자가 국가경쟁력 아냐
수출은 좋고 수입은 나쁜 것…흑백 논리로 판단하기 어려워
“드디어 일본 경제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만약 이런 뉴스를 듣게 된다면 기뻐해야 할까, 걱정부터 앞세워야 할까? 일본과 한국은 세계 시장에서 수백 가지 제품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관계로 알려져 있다. 이런 일본의 경제가 무너진다면, 한국의 수출은 배가 될 것이고, 무역수지는 엄청난 흑자를 기록할 것 같다. 우리 한국의 경제가 날개를 달고 승승장구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미국이 기침을 하면 일본은 감기가 들고 한국은 몸살을 앓는다’는 말이 있다. 미국이나 일본 경제가 휘청거리면 한국이 좋아할 것이 아니라 걱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로 돌아가 보자. 아시아에 경제 위기가 닥치자 한국을 비롯한 각국은 이 위기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경기회복은 너무나 지지부진했다. 아시아에서 버팀목 역할을 해야 할 일본의 경제 상황이 나빠 다른 나라들의 경기회복에 별 도움이 안 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는 국가와 국가가 서로 경쟁을 한다는 잘못된 생각 때문이다. 국가와 국가가 서로 경쟁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예를 들어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할 때 승리자와 패배자라는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을 떠올린다. 그래서 자국의 문호는 거의 개방하지 않고 타국의 문호를 활짝 열어젖혀 ‘유리하게’ 협상한 국가는 이익을 누리고, 반대로 ‘불리하게’ 협상한 국가는 그만큼 손해를 본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은 정반대다. 19세기 경제학자 헨리 조지는 “해상 봉쇄함대는 적국의 무역을 막는 수단이며, 보호관세는 자국민의 무역을 막는 제도다. 보호주의라는 것은 전시에 적국이 우리에게 하는 것을 평화시에 우리가 우리에게 하는 것이다”고 했다. 우리 자신의 목을 우리 스스로 조르는 일의 결과가 좋을 리는 만무하다.
수출은 좋은 것이고 수입은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국가와 국가가 서로 경쟁을 한다는 잘못된 미신의 산물이다. 수출을 많이 해서 경상수지가 흑자가 되면 선(善)이고 적자가 되면 악(惡)이라는 생각도 마찬가지다. 이런 생각은 수출을 많이 해서 금을 쌓아놓으면 부자 나라가 된다고 생각했던 중상주의 시대의 유물이다. 하지만 이미 그 당시에도 애덤 스미스는 중요한 것은 쌓아놓은 금의 양이 아니라 국민들이 향유할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의 양과 질이라는 점을 설파했다. 이 말은 우리가 경제활동을 하는 본래의 목적을 되돌아보게 한다. 경제활동을 하는 목적은 생산이 아니라 소비다. 우리는 소비하기 위해서 생산하고 판매한다. 마찬가지로 수입하기 위해 수출을 하는 것이지 수출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수출 자체가 목적이 돼 버린 전도(顚倒)된 관점에서 보면 자국 화폐의 가치를 낮추고 상대국 화폐의 가치를 높이라는 요구를 하는 것이 당연시된다. 특히 경제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한국의 경우 환율 변화에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환율이 몇 퍼센트 하락하면 기업의 이익이 줄어들고 경제가 어려워진다면서 외환당국이 개입할 것을 촉구하곤 한다.
그렇지만 이런 식의 ‘환율전쟁’을 벌이는 것은 우리에게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우리를 가난하게 만들 뿐이다. 자국 화폐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추는 일은 우리 물건을 외국인에게 헐값에 준다고 하는 것과도 같다. 좋은 물건을 거의 ‘공짜’로 주는 사람과 좋은 물건을 거의 ‘공짜’로 얻는 사람 중 누가 더 부자가 될 것인가는 자명하다. 헐값에 우리 물건을 사고 남는 돈으로는 우리 물건을 더 사거나, 아니면 다른 물건을 구입할 수 있게 된 외국인들은 부자가 된다. 환율을 인위적으로 높여 자국 화폐의 가치를 낮추는 일은 열심히 일해서 외국인의 뒷바라지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경상수지가 흑자인지 적자인지가 국가 경쟁력을 나타낸다는 이상한 결론도 국가와 국가가 경쟁한다는 잘못된 사고에서 파생된다. 경상수지가 흑자면 국가 경쟁력이 있는 것이고, 적자면 없는 것이라는 얘기를 심심찮게 듣게 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한국이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초고속 성장을 하던 1970~1980년대 한국의 경상수지는 매년 적자였다. 반면 1990년대 후반부터는 경상수지가 매년 흑자를 기록하고 있고, 흑자 폭도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만약 경상수지가 국가 경쟁력을 나타내는 지표라면 1970~1980년대 한국의 국가 경쟁력은 형편없었던 반면 1990년대 후반 이후는 매우 높다고 해야 한다. 과연 그런가?
이런 식의 잘못된 국가 경쟁력 개념은 개별 기업의 경쟁력을 그대로 국가 차원으로 옮겼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 경제 내에서의 기업과 산업 부문의 상호의존성을 도외시하고 있다. 수출을 활성화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환율을 높이는 것이 일부 수출기업에는 환영받을 일이겠지만, 다른 기업들과 소비자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니다.
국가와 국가는 경쟁하지 않는다. 기업과 기업, 개인과 개인이 경쟁하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이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삼성전자와 소니가 경쟁하고 있고, 현대자동차와 도요타자동차가 경쟁하고 있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소니가 잘못되는 것이 호재가 될 수 있다.
소니가 멈칫거리는 동안 삼성전자는 세계 시장에서 판매를 늘리고 시장점유율을 크게 높일 수 있다. 반면 소니의 판매는 줄고 시장점유율도 떨어진다. 즉 기업과 기업 간 경쟁관계는 제로섬 게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입장이 아닌 한국의 입장에서는 일본이 잘못되는 것은 호재가 아닌 악재가 된다. 일본이 망해 북한 같은 나라가 됐다고 상상해보라. 국가 대 국가의 관계는 경쟁 관계가 아닌 협력 관계며, 포지티브섬 게임(positive-sum game)의 관계다. ‘주식회사 대한민국’은 없다.
권혁철 < 자유경제원 자유기업센터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