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人 100명 유한양행에 모인 까닭

입력 2014-06-15 22:01   수정 2014-06-16 07:09

유한공고 개교 50주년 준비…"유일한 박사의 실사구시 정신 계승하자"


[ 김낙훈 기자 ]
6월14일 토요일 오후. 서울 대방동 유한양행에 중소기업인 100여명이 속속 들어섰다. 신하철 금성자동기계 사장, 서성기 테라셈 사장, 유태승 휘일 사장, 양경철 다산금속 사장, 이원해 대모엔지니어링 회장 등이다.

이들은 구로구 항동 소재 유한공고 졸업생이다. 이날 모인 것은 오는 10월 개교 50주년 행사 준비 등을 위한 것이다. 유한공고는 1964년 유일한 박사(1895~1971)가 설립한 학교다. 전신은 고려공과기술학교다. 개교 이후 기계·전기·전자·건축 분야 등의 기술인력 1만5000여명을 배출했다.

전액 장학금으로 운영해 집안 형편이 어렵지만 우수한 학생들이 입학해 온 학교다. 유 박사는 유한양행과 학교재단 유한재단을 설립한 기업가이자 교육자로 일제시대 때 독립운동에 헌신하기도 했다. 그는 투명하고 정직한 경영을 해왔다. 경영 목표를 이윤 추구가 아니라 ‘사회헌신’으로 여겨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기도 했다.

이날 모인 기업인 중 상당수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유한공고를 선택했다. 이 학교 총동문회장인 이원해 회장(58·9회 기계과 졸업)도 마찬가지다. 그는 9남매의 막내로 청주에서 태어났으나 부친의 사업 실패로 집안이 몰락하자 학비가 안 드는 유한공고에 입학했다. 생활비는 군위탁 장학생을 지원해 해결했다. 군대 장기 복무(나중에 중사로 예편)를 전제로 생활비를 대주는 제도다.

이 회장은 “많은 졸업생이 유일한 박사를 가장 존경한다고 답하는 것은 단지 재산의 사회환원뿐 아니라 ‘사회에 쓸모 있는 기술로 승부하라’며 실사구시 정신을 강조했기 때문”이라며 “이런 가르침은 기업활동을 하는 지금도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들 기업인은 재학생의 멘토로도 활동하고 있다. 틈틈이 학교를 찾아 대화를 나눈다. 1회 기계과 졸업생인 신하철 사장(66)은 “기술은 세상의 근간”이며 “이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며 기술의 중요성을 후배들에게 강조했다. 차량용 에어컨 부품을 만드는 휘일의 유태승 사장(62·5회 기계과)은 “남을 배려하고 정직하게 살면 언젠가 기회는 온다”며 “급하게 앞서가지 말고 실력을 다지며 조금 더디게 성공하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김선태 직업능력개발원 선임연구위원(54·13회 전기과)은 “학력보다는 능력, 졸업장보다는 자격증이 중요하다”며 “독일이 제조업 분야의 세계 최강국이 된 것도 실업교육을 중시한 데 따른 것”이라며 후배들에게 자긍심을 갖으라고 조언하고 있다.

이들은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해마다 15명 안팎의 재학생을 해외에 연수시킨다. 글로벌 시대에 해외 경험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올해로 6회째다. 올 여름방학 때는 중국에 13명, 미국에 3명 등 모두 16명을 내보낼 예정이다. 해외연수에 앞서 4개월간 사전교육을 시키는데 예절과 인성교육에 중점을 둔다. 실력보다 ‘인간 됨됨이’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서다.

특히 웃어른에 대한 인사와 전철에서 자리 양보 등을 강조한다. 사회봉사도 중요시해 해외연수 프로그램에 장애인 봉사가 들어 있을 정도다. “밑바탕이 좋아야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있다”고 선배 기업인은 후배들에게 강조한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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