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금운용본부를 누가 움직이냐의 논쟁
이사장, 외풍 방패막이 넘어 기금본부 장악 의도
이 기사는 06월12일(04:37)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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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국민연금공단과 보건복지부의 '힘겨루기'에 관한 일화다. 2~3년 전쯤 국민연금이 투자한 SOC(사회기반시설) 회사의 CEO(최고경영책임자) 선임을 놓고 갈등이 빚어졌다. 당시 공단측은 복지단 출신 사장을 외부 전문가로 바꾸라는 복지부 요구를 묵살했다. 공단 안팎에선 이를 ‘인사권’에 개입하지 말라는 복지부를 향한 공단 이사장의 항의로 해석했다.
#2.지난달 20일, 최광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국민연금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주제로 강연하면서 작심 발언을 했다. “현재 기금운용위원회의 위원장이 복지부 장관인데 기금운용위원회 책임자는 24시간 기금운용에 대해서만 고민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본다”. 주무부처를 향한 소신 발언의 강도가 전(前) 이사장보다 훨씬 강경하다.
국민연금 지배구조 논쟁이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공단 이사장의 ‘파워’가 커지면서 ‘복지부-공단-기금운용본부’로 이어지는 힘의 균형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기금운용본부 독립 및 공사화 주장은 상대적으로 열세에 몰리고 있는 양상이다.
◆복지부와 공단 '힘겨루기'
국민연금법은 ‘삼각축’의 관계를 명확히 규정해 놓고 있다. 우선 ‘국민연금사업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맡아 주관한다’(제1장 2조). 하지만 정부가 연금 관리 및 운용 등의 업무를 직접 하기 어려우므로 ‘복지부의 위탁을 받아 사업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국민연금공단을 설립’(제3장 24조)했다.
430조원에 달하는 기금에 대한 책임 소재는 제102조 ‘기금은 복지부 장관이 관리·운용한다’고 못 박아놨다. 이를 위해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를 설치(제103조)하도록 하고, 위원장은 복지부 장관 몫으로 명시했다. 공단 이사장은 기획재정부차관·농림축산식품부차관·산업통상자원부차관·고용노동부차관과 함께 운용위원회의 당연직 위원 중 한 사람일 뿐이다.
국민연금법 제104조는 기금운용위에 상정될 의제를 사전에 심의·평가하기 위해 실무평가위원회를 두도록 했는데 위원 위촉 권한은 위원장과 기금운용위 당연직 위원들에게 있다. 단, 공단 이사장만 위촉 권한이 없다. 실질적으로 기금 운용을 총괄하는 기금운용본부장(기금이사·CIO)은 고사하고, 국민연금의 CEO인 이사장조차 기금운용위에서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이 매우 제한적인 셈이다.
이같은 구조는 기금 운용에 대한 정부 개입을 강화시켰다. 5명의 역대 CIO 가운데 3년 임기를 ‘해프닝’없이 제대로 마친 이는 전광우 이사장과 짝을 이뤘던 5대 이찬우 본부장(2010년~2013년)이 유일하다. 조국준 본부장(2대)은 임기를 채우긴 했지만 2년차에 “투자 결정권이 없는 CIO는 못하겠다”고 사표를 냈다가 반려됐다.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바뀔 때 CIO로 재직했던 오성근 본부장(3대)은 사퇴 압력을 받고 중도에 물러났다. 4대인 김선정 본부장도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정부로부터 국내 주식 투자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받았다”고 말했다.
◆기금운용본부 공사화 물건너가나
복지부 상위 체제는 과도한 정부 개입과 함께 전문성 결여라는 지적을 끊임없이 받았다. 복지부 장관을 비롯해 담당 기금운용위 간사를 맡고 있는 국·과장을 비롯해 위원으로 위촉받은 각계 대표들 역시 기금운용에 관해 비전문가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현 체제는 전문성보다는 대표성과 책임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여태껏 헤지펀드 및 원자재 투자를 할 수 없는 것도 이같은 사정 탓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헤지펀드 투자 건은 당초 지난달 기금운용위원회에 안건으로 상정될 예정이었으나 복지부 담당 과장이 교체된 지 얼마되지 않아 내용 파악이 안 돼 있다는 이유로 미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전광우, 최광 등 전·현직 국민연금 이사장이 복지부에 ‘반기’를 든 것은 이같은 맥락에서다. 게다가 최 이사장은 ‘이력’만 놓고 보면 문형표 복지부 장관이 힘으로 누르기엔 버거운 상대라는 게 중론이다. 최 이사장이 KDI '선배'인 데다 최 이사장은 1997년에 34대 보건복지부 장관을 먼저 지냈다.
지난달 최 이사장의 ‘기금운용위원장 교체 필요’ 발언을 단순히 ‘해프닝’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국민연금 연구원 관계자는 “결국 최 이사장의 목표는 연금 급여의 책임준비금인 연금기금을 관리하고 운용하는 업무를 공단 이사장에게 맡기라는 것”이라고 추론했다. 법률 근거도 없지는 않다. 국민연금법 102조5항은 ‘보건복지부장관은 기금의 관리·운용에 관한 업무의 일부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공단에 위탁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계약직들 '촉각'
최 이사장이 주무부처를 향해 강성 발언을 쏟아낼 정도로 ‘매파’임을 드러내면서 기금운용본부의 계약직 운용역들은 향후 상황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 이사장은 지난달 강연회에서 기금운용위원장 교체 발언과 함께 기금운용본부의 독립 공사화 방안을 강하게 반대했다. 연금을 관리하는 업무와 기금의 운용을 분리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기금운용본부 출신인 자본시장 관계자는 “전광우 이사장 시절부터 국민연금 CEO가 기금운용을 맡고 있는 CIO 역할까지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며 “복지부의 외풍이 사라지는 대신에 운용역들로선 CEO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에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 기금운용본부장 출신인 이찬우 국민대 특임교수는 “KKR, 블랙스톤 등 외국 거물급 투자자들을 이사장이 직접 만나면서 기금운용의 결정권이 공단 이사장에게 있다는 인상을 주곤 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공단 이사장이 기금운용에 관여하는 강도가 더욱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민연금의 주요 업무는 징수,운용,급여 세가지인데 징수업무는 건강보험 등에 통합돼 공단에서 빠져나갔다”며 “공단 입장에선 급여 업무만 남은 상황이라 기금운용본부를 독립시키는 일은 용납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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