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진정 위대한 일을 했다. 하지만 실수도 했다. 위대함은 이 풍요롭고 넓은 아르헨티나 땅의 창조다. 그런데 아르헨티나 사람들까지 만들어낸 것은 오류였다’. 몇 년 전 부에노스아이레스 방문 때 현지 안내자에게서 들은 자조 섞인 우스개다. 맑은(Buenos) 공기(Aires)라는 이 도시는 유럽 도시 어디와 비교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장중했다. 적어도 외견은 그랬다. 1930~40년대만 해도 세계 4~5위 경제대국이었던 부(富)의 흔적도 곳곳에 남아 있다. 최근까지도 이 도시 헌책방 더미에는 유럽 서지학자들도 깜짝깜짝 놀라는 희귀 서적, 고급 고서들이 곧장 발견되곤 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반경 700km 이내에는 대평원이다. 팜파스라는 이 평야의 농업과 목축만으로도 부가 넘쳤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1차산업의 퇴락보다 더 큰 장애물은 정치적 포퓰리즘이었다. 1946년 집권한 후안과 국민가수였던 그의 부인 에바. 페론 부부는 인기영합정책이란 게 뭔지를 확실히 보여줬다.
외국자본 배제, 산업의 국유화, 복지확대, 임금인상 등 친노조 정책…. 경제사회 정책의 이런 개념어로는 묘사도 어렵다. 차라리 마돈나가 열연한 뮤지컬 영화 에비타가 실감차원에선 낫다. Don't cry for me Argentina로 친숙한 그 뮤지컬이다. “국민들이 대학졸업장을 원한다고? 얼마든지!” 최고대학 졸업장을 호외신문 뿌리듯 나눠주는 장면도 풍자만은 아니었다. 성녀와 악녀라는 평가를 함께 받았던 밑바닥 출신 퍼스트레이디의 손짓 하나하나에 서민들은 환호했고 열광했다. 글로벌 아이돌이었던 영화속 고혹적이고 뇌쇄적인 마돈나의 이미지와 꼭 겹쳐진다. 고달픈 내 삶을 저토록 다정하게 쓰다듬어주는 대통령 부부라니! 내일도 대초원에 태양은 뜰지니, 오늘은 우리의 전통,탱고나!
포퓰리즘은 달고달았지만 그 열매는 오랫동안 쓰디썼다. 라틴말로 은(銀)인 아르헨티나는 이내 동(銅)수준도 어렵게 됐다. 잊혀질 만하면 국제경제에 위험 국가로 부각됐다. 엊그제 S&P는 국가신용등급을 또 2단계나 강등해버렸다. CCC-는 S&P의 신용등급 평가국 중 제일 밑바닥이다. 지난해 1분기 말 5.1195달러였던 페소 환율은 8.1270달러로 치솟았다. 13년 만에 다시 디폴트(부도) 위기다.
환율이 무너지자 인플레이션이 달려든다. 모두 디플레를 우려하는 판에 인플레와의 투쟁이다. 그래도 공은 좀 찬다는 선수들이다. 메시는 월드컵에 집중할 수 있을까. Cry for me Argentina!라고 후회는 않을는지….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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