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희진 기자 ] 꿈을 짓는 재단 대표. 넥서스 출판기획자. 프랜차이즈 컨설턴트.
신학철 대표(30·사진)의 명함은 한 장이 아니다. 그는 작가들을 인터뷰하고 프랜차이즈 가맹점 상권분석을 돕는다. 틈틈이 강연 콘서트와 기부 파티도 연다. 10개가 넘는 창업 경력까지 합하면 그가 가진 명함은 수십 장이 된다.
이 모든 일은 ‘5만 개 도서관 짓기’의 과정이라고 그는 소개했다.
지난 17일 오후 홍익대 인근 카페에서 만난 신 대표는 책을 읽고 있었다. 책과 사람을 좋아해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 세계에 전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그 꿈을 이루는 데 책과 도서관이 제 격이라고 강조했다.
“창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건 고등학교 때 읽은 빌게이츠의 책 때문이었어요. 한 사람의 좋은 이야기가 한 사람의 꿈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빚쟁이 고등학생, 동국대 ‘깡통맨’에서 대박 창업까지
빌 게이츠의 ‘미래로 가는 길’ 마지막 장을 덮은 고3 신학철은 지하철 역 앞에 돗자리를 폈다. 일반 의류와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춘 산타클로스 의상을 함께 팔기로 했다. 하지만 야심차게 시작한 신 대표의 첫 사업은 ‘판매량 0’의 초라한 결과만 남겼다.
대학생이 된 신 대표는 창업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다. 첫 사업이 남긴 135만 원의 빚도 스무 살의 꿈을 꺾지 못했다. 희귀한 게임기와 앨범을 수집해 되팔았고 자판기 운영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학생과 사업가로 발바쁘게 뛰어다닌 결과 빚도 갚았다. 동국대 ‘깡통맨’ 별명도 얻었다.
“매일 30대가 넘는 자판기를 돌며 동전을 회수하고 학교에 왔습니다. 늘 정장 차림에 여행용 캐리어를 끌고 다녔는데 어느 순간 학교에서 ‘깡통맨’ 아니면 '미친놈'으로 통하고 있더군요.”(웃음)
자판기 운영사업에만 머물렀다면 ‘대박 창업’은 없었을 것이라는 게 신 대표의 설명이다. 2006년 신권 지폐 등장을 몇 개월 앞둔 어느 날, 그의 눈은 자판기에 달린 ‘지폐인식기’에 멈췄다.
“신문에 은행 ATM기 교체 부담에 대한 기사는 있는데 자판기 얘기는 없었어요. 자판기 운영업자 입장에선 지폐인식기를 다 바꿔야 하는 게 큰 부담이잖아요. 자판기 관련 업체들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입수하기 시작했죠.”
창업 아이템을 찾은 곳은 자판기 정비·관리(AS)를 담당하는 한 중소업체였다. 작고 허름한 사무실에서 사장이 직접 개발했다며 보여준 기술은 놀라웠다. 지폐인식기를 교체하지 않고도 센서를 업그레이드해 신권을 인식하게 하는 기술이었다.
하지만 기술에 비해 영업력이 부족했던 상황, 신 대표는 지폐인식기 시장점유율을 높여 정비관리 점유율을 높이겠다는 사업계획서로 해당 기술 영업권을 따냈다. 이후 2년간 지폐인식기 사업으로 자판기 운영보다 높은 수익을 올렸다.
신 대표가 밝힌 지폐인식기 사업의 초기 자본은 20원. 사업계획서를 쓴 A4용지 한 장 값이었다. 그가 지금껏 뛰어든 일 가운데 최소자본 창업에 해당한다.
가장 많은 수익을 낸 창업은 따로 있었다. 스무 살에 시작했던 인터넷 명품의류 쇼핑몰. 명품 브랜드의 해외 상설 및 전시 제품을 직접 구해 온라인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팔았다. 현재는 대중화된 병행수입을 10년 전에 시도한 것.
주 고객이 저렴하게 명품 옷을 입고 싶은 대학생, 사회초년생이 많다는 점을 고려해 ‘예약제’도 실시했다. 제품이 마음에 들지만 당장 전액 결제가 힘든 이들을 위해 소정의 예약금을 먼저 지불하게 하는 방식이다. 예약 대기 인원은 넘쳤고 제품은 늘 부족했다. 월 평균 영업이익은 2000만 원에 달했다.
◆글로벌 기업 본고장 미국에서 찾은 꿈…‘5만 개 도서관 짓기’
명품의류 판매가 승승장구하던 때 신 대표는 돌연 미국행을 결정했다. 그가 사업을 친구들에게 전부 맡기고 미국에 간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미쳤다는 반응이었다.
“미국에 가서 글로벌 기업 본사들을 둘러보고 오겠다.”
당시 신 대표는 돈을 벌수록 알지 못할 공허함에 시달렸다고 고백했다.
“미국 여행을 간 건 꿈을 찾기 위해서였어요.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마음이 공허한 건 꿈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죠. 빌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를 포함해 GM, 코카콜라 등 세계적 기업 본사를 전부 방문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신 대표는 미국에 가기 전 미국의 글로벌 기업과 최고경영자(CEO) 관련 책을 모두 읽었다. 그리고 6개월 동안 책에 나왔던 기업의 본사를 빠짐없이 방문했다. 각 기업 본사에 들어설 때마다 신 대표는 벅찬 감동을 느꼈다.
“시애틀에 있는 스타벅스 본사를 갔는데 눈물이 날 정도였죠. 스타벅스의 역사, CEO의 철학을 책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저 건물을 보는 것만으로 감동이 밀려왔어요.”
그렇게 미국 전역을 돌던 신 대표는 문득 “좋은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빌게이츠와 CEO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꿈을 꾼 것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사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도서관 짓기’였다.
목표만 있고 구체적 수단은 없는 상황. 신 대표의 눈에는 미국 거리의 수많은 맥도날드가 들어왔다. 미국 전역에 깔린 맥도날드의 규모에 놀란 그는 시카고 맥도날드 햄버거대학교에서 꿈을 실현할 힌트를 얻는다.
“햄버거 대학교에서 학년별로 패티 굽는 방법부터 지점 관리, 글로벌 전략까지 체계적으로 프랜차이즈 전문가를 키우고 있었어요. 그 시스템을 본 순간 ‘바로 이거다’라고 생각했죠.”
신 대표는 맥도날드와 같은 프랜차이즈 모델을 ‘도서관 짓기’에 도입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해 신 대표의 ‘5만 개 도서관 짓기’의 꿈이 정해졌다. 맥도날드가 전 세계 3만5000개 매장을 갖고 있으니 그보다 많은 5만 개를 목표로 세웠다.
◆"창업은 SF소설이 아냐“…‘주위’ 둘러보고 ‘사람’ 만나라
미국에서 돌아온 그는 2011년 비영리단체 ‘꿈을 짓는 재단’을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도서관 짓기에 나섰다. 2012년 친구 두 명과 네팔로 떠나 도서관을 지은 게 시작이었다. 이후 재단 후원사와 동료들을 만나 인도에 2호 도서관까지 지을 수 있었다. 꿈을 짓는 도서관 3호는 군포에서 올 하반기 개관을 앞두고 있다.
책과 프랜차이즈에 대한 공부도 현재진행형이다. 신 대표는 출판사 넥서스 직원으로서 출판기획 업무를 맡고 있다. 세종대 프랜차이즈 MBA에서 프랜차이즈 컨설팅도 배우는 중이다.
신 대표의 다음 창업은 이야기를 전하는 프랜차이즈 카페다. 강연이나 토크콘서트, 기부파티 등을 여는 전문 카페를 만들 계획이다. ‘꿈을 짓는 카페’라고 상표 등록도 마쳤다.
“후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꿈을 짓는 재단의 도서관 짓기가 지속가능한 사업이 되려면 비즈니스 모델이 필요해요. 카페를 통한 수익을 재단 운영에 사용할 계획입니다.”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에게는 주위를 둘러보라고 조언했다. 주위에 수많은 중소기업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솔루션을 사업계획서로 작성해 제안하라는 것이다. 그는 무에서 유를 만드는 일 뿐 아니라 기존 사업에 날개를 달아주는 일 역시 창업이라고 강조했다.
“요즘 대학생들은 SF소설 같은 창업계획서를 준비하고선 돈을 잃을까 걱정하죠. 하지만 돈 없이도 가능한 창업은 많습니다. 판로가 없어서 좋은 상품, 기술을 묵혀두고 있는 중소기업에 찾아가 사업계획서를 내밀어보세요. 1만 원도 들지 않는 일이죠.”
간절함과 열정에 대한 주문도 잊지 않았다. 창업할 업종의 CEO나 전문가를 최소 10명은 만나라고 했다. 좋아하는 일을 배울 수 있다면 무보수라도 일하겠다는 열정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0명 모두를 만나기 힘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만한 열정이 없다면 창업에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부지런히 사람을 찾아다니고 배우세요. 창업은 그 뒤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한경닷컴 박희진 기자 hotimpac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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