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 덮던 천막, 70만원 가방으로…폐품으로 명품 만드는 '패션의 마법'

입력 2014-06-27 07:00  

Best Practice

업사이클링 원조기업
스위스 '프라이탁'

비 자주 내리는 스위스 취리히
방수천으로 젖지 않는 가방 고안
모든 작업은 수작업으로 진행

재활용 천막으로 만들어
똑같은 가방 하나도 없어
특별한 스토리에 고객들 열광

친환경·기업영리 두 토끼 잡아
가구·양말 등 다른 분야에도 '업사이클링' 기업 속속 등장



[ 김보라 기자 ]
스위스 취리히는 사흘에 한번 꼴로 비가 내린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간 옷은 물론 가방, 책까지 모두 젖어버리기 일쑤다. 취리히에서 나고 자란 마르크스와 다니엘 프라이탁 형제는 비가 그치길 기다리다가 창밖으로 지나가는 트럭을 한 대 발견한다. 방수천으로 꽁꽁 싸여 있는 트럭의 짐칸을 본 형제는 동시에 무릎을 탁 쳤다.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한 이들은 곧장 재활용품 업자를 찾아갔다. 더러워진 방수천을 구해 정성스레 자르고 꿰매 가방을 만들었다. “이 누더기 같은, 플라스틱 냄새가 풀풀 나는 가방을 대체 누가 사겠느냐”는 따가운 비판도 잠시. 가방은 튼튼한 방수 가방을 찾는 스위스 자전거족 사이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할리우드 스타부터 홍대 앞 젊은이들까지 사로잡은 패션 아이템이 됐다. ‘업사이클링’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스위스 가방 브랜드 ‘프라이탁(Freitag)’의 이야기다.

○낡았지만 세상에 단 하나

‘업사이클링(up-cycling)’은 물건을 재활용하는 ‘리사이클링(recycling)’보다 한 단계 진화한 개념이다. 버려지는 물건을 단순히 다시 쓰자는 게 아니라 세련된 디자인과 새로운 가치를 입혀 재탄생시키는 것이다. 폐타이어, 버려진 현수막, 구멍난 양말, 빈 페트병 모두 업사이클링의 귀한 재료가 된다.

1993년 형제의 ‘우연한 발견’에 의해 만들어진 프라이탁은 5~7년간 쓰고 버려진 트럭 덮개나 천막만 몸통의 재료로 쓴다. 가방끈은 폐자동차 안전벨트로 만들어진다. 가방의 모서리는 가죽이 아닌 자전거 고무 튜브가 대신한다. 모든 작업은 기계 없이 수작업으로 진행된다. 쓰다 남은 천막이 재료이기 때문에 3~5명의 직원들이 전 세계를 1년 내내 여행하며 400t에 달하는 방수 천막을 수집한다.

‘낡은 것’이라는 편견은 가방을 열어보는 순간 사라진다. 자전거족을 위한 가방이기 때문에 내구성은 기본이다. 꼼꼼한 박음질로 물이 새지 않도록 했고, 충격에 잘 버티도록 에어백을 채워 넣었다.

여기서 프라이탁만의 특별한 스토리가 시작된다. 어떤 가방도 같을 수 없다. 한 천막으로 여러 개의 가방을 만들더라도 낡은 정도가 다 다르기 때문에 각각의 가방은 개성을 갖는다. 100% 수작업인 데다 재료의 희소성 때문에 연간 생산량은 30만개 수준에 불과하다. 천막 색깔이 아닌 다양한 색깔은 없지만 자연스럽게 빛이 바래 더 멋스럽다.

희소성, 내구성, 멋스러운 디자인과 수작업. 마치 명품의 조건을 모두 갖췄지만 원료를 들여다보면 결국 버려진 쓰레기다. 사람들은 프라이탁의 가격에 또 한번 놀란다. 프라이탁의 가격은 20만~70만원 수준이다.

○친환경? 윤리적 소비 아닌 패션으로

프라이탁은 고가의 가격에도 불구하고 현재 전 세계 350여개 매장에서 연 500억원 이상 매출을 올리고 있다. 스위스 사람들 10명 중 8명은 이 가방을 갖고 있을 정도다. 프라이탁은 매출이 올라도 무리하게 확장하거나 초기의 경영 방침을 버리지 않았다. 폐방수천 한 장에 600유로(약 90만원)를 주고 사온 뒤 못 쓰는 부분은 절반 정도 잘라낸다.

만약 초기 제품의 본질을 버리고 수익만 쫓았다면, 기계화 설비를 갖추고 깨끗한 플라스틱 천을 쉽게 공급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프라이탁 형제는 인위적이고 가식적인 이야기 대신 세월의 흔적에 집중했다. 초심도 지켰다. 본사 건물은 재생 콘크리트로 짓고, 사무실의 가구 역시 폐건축물에서 나온 재료를 활용했다. 인건비가 싼 지역으로 공장을 옮길까 여러 번 고민했지만 결국 본래의 자리를 지켰다. 건물은 친환경으로 지었다. 빗물을 한 곳으로 모아 이 물로 방수천을 세탁했다. 버려지는 천 조각마저 재활용 업체에 돈을 주고 맡긴 뒤 처리하는 방식을 택했다.

고집은 통했다. 사람들은 각각의 스토리가 담긴, 미묘하게 다른 프라이탁 가방을 하나 둘 수집하기 시작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가방을 갖기 위해 주요 도시를 돌며 발품을 파는 사람들도 늘었다. 200개의 프라이탁을 갖고 있는 사람도 등장했고, 서로의 프라이탁 디자인을 공유하는 동호회도 생겼다. 프라이탁에 열광하는 마니아는 세계에 3만명, 한국에만 3000명에 달한다. 그래서 쓰다가 중고로 팔아도 새 제품 가격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기존 친환경 제품들이 그저 ‘윤리적인 소비를 해야 한다’는 소비자의 의무감을 자극했다면 프라이탁은 실용성과 디자인을 강조한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잡았다.

○짝짝이 양말·버린 군복도 재조명

프라이탁은 쓰레기와 명품, 친환경과 영리 기업이라는 모순점을 극복한 성공 사례다. 재활용과 이윤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고, 다른 기업에 많은 영감을 줬다.

프라이탁 이후 업사이클링 기업은 속속 등장했다. 패션 소품에서 시작돼 가구 등으로 확장됐다. 덴마크 패션 디자이너 세이아루칼라는 2003년 재활용 소품으로 옷과 가방을 만드는 ‘글리배호프’를 만들었다. 병원이나 군대에서 버리는 옷감을 재료로 옷을 만들기로 유명하다.

미국 ‘솔메이트삭스’는 ‘양말을 맞춰 신기에 인생이 너무 짧다’는 슬로건을 내세워 버려진 티셔츠로 양말을 만들어 판다. 100% 수작업으로 단단하게 짜낸 양말은 통풍도 잘 되는 데다 색깔도 알록달록 다양하다. 두 짝이 아닌 세 짝을 상품 하나로 포장하는 방식도 주목받았다. 3만원대의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이 업사이클링 기업의 짝짝이 패션은 일본 유럽 등 전 세계로 수출되고 있다. 이들 역시 프라이탁의 성공에 자극을 받아 작은 아이디어에 스토리를 입혀 업사이클링에 성공한 회사로 주목받고 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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