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日 소프트뱅크 회장 "일류가 안될 사업은 아예 눈 돌리지 말고, 승률 70%는 돼야 손대라"

입력 2014-06-27 07:00  

글로벌 CEO

알리바바 상장 최대 승자

14년前 가능성 보고 2000만弗 투자
지분 가치 580억弗 넘는 '황금알'로

뚝심으로 일군 성공신화

'시한부 선고' 만성간염 이겨내고
컴덱스·야후 등 거침없는 M&A

세계 1위 향해 끝없는 도전
스프린트 등 美 대형 통신사 인수
에너지사업·로봇시장에도 뛰어들어



[ 강영연 기자 ]
‘알리바바 미국 증시 상장의 최대 승자는 손정의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의 상장이 알려졌을 때 가장 주목받은 것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었다. 소프트뱅크가 알리바바 지분의 34.3%를 가진 1대주주이기 때문이다. 오는 8월 알리바바가 상장에 성공할 경우 손 회장이 가진 지분 가치는 580억달러(약 59조1000억원) 이상이 될 것이라고 블룸버그통신은 보도했다. 2000년 당시 알리바바는 해외 물품을 중국에 들여오는 무명의 포털 사이트였지만 손 회장은 그 가능성을 보고 2000만달러를 투자했다. 그 결과 수백배에 이르는 수익을 얻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성공은 될 만한 사업이라고 판단하면 거침없이 투자하는 손 회장의 뚝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동양의 빌 게이츠’ ‘아시아의 통신거물’ ‘일본 최고의 부자’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 등으로 불리는 손 회장은 재일한국인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1981년 직원 2명과 자본금 1000만엔(약 1억8800만엔)으로 시작했던 소프트뱅크를 30년 만에 시가총액 9조엔에 달하는 대기업으로 키워냈다.

조센진으로 놀림받던 아이, 뚝심을 기르다

손 회장은 1957년 일본 남단 규슈 사가현의 무허가 판자촌 지역에서 재일한국인 3세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식민지 시절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와 광부로 일했다. 4형제 중 둘째로 태어난 그는 할머니의 리어카를 타고 음식 찌꺼기를 모으며 자랐다. 다행히 아버지 사업이 성공하면서 유복한 환경에서 교육받을 수 있었지만 ‘조센진’이란 놀림과 차별은 계속됐다. 이런 과정에서 그는 반드시 1등을 해서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 일본인들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능력으로 증명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이런 생각은 공부와 사업 모든 면에서 그가 1등에 집착하게 만들었다.

일본생활에서 답답함을 느끼던 손 회장은 고등학교 1학년 어학연수로 찾은 미국에서 자유로운 분위기에 매료된다. 그는 부모를 설득해 1974년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 고등학교 수업은 그에게 너무 쉬웠다. 월반에 월반을 거듭한 손 회장은 한 달 만에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고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캘리포니아주 UC버클리 시절 손 회장은 밥먹고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전 시간을 공부에 투자할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이때 개발한 것이 외국어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번역이 되는 음성전자번역기였다. 손 회장은 이 아이디어를 샤프전자에 팔아 1억엔(약 10억원)을 받았다. 이를 자본금으로 친구와 함께 유니손월드라는 벤처기업을 세우기도 했다.

적극적 인수합병으로 기업확장

미국에서 공부를 마친 손 회장은 1981년 일본으로 돌아와 19세에 세운 ‘50년 인생계획’을 지키기 위한 실행에 들어갔다. 그의 인생계획은 ‘20대에 이름을 떨치고 30대에 1000억엔의 운영 자금을 마련하고 40대에 승부를 걸고 50대에 사업을 완성하고 60대에 다음 세대에 물려준다’는 것이다.

같은 해 9월 규슈에서 유통 출판을 하는 일본소프트뱅크를 차리면서 인생계획의 첫단추를 끼웠다. 창업 초기 일본 최대 소프트웨어업체 허드슨과의 독점계약을 따내며 단숨에 매출 35억엔의 중견기업으로 뛰어올랐지만 시련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1982년 갑작스런 만성간염으로 5년밖에 살 수 없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것이다. 손 회장은 답답했다. 차라리 빨리 죽는게 낫지 가만히 앉아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그는 그냥 죽느니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생각으로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방법으로 치료를 받았다.

천만다행으로 건강을 되찾은 그는 1986년 회사로 돌아와 적극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에 소프트웨어 독점권을 따내면서 MS가 윈도3를 출시한 1992년 1000억엔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빠른 성장을 위해 인수합병(M&A)을 활용했다. 손 회장은 “리스크를 취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리스크”라며 기업 M&A와 신규사업을 거침없이 추진했다.

1994년 도쿄증시에 상장해 2000억엔의 자금을 확보한 손 회장은 1995년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전시회 운영사인 컴덱스, 세계 최대 컴퓨터 관련 출판사인 미국 지프데이비스를 인수했다. 야후 지분의 49%도 사들였다. 투자는 성공적이었다. 야후가 1996년 나스닥에 상장되고 다음해 야후 재팬도 일본 자스닥에 상장되면서 소프트뱅크가 보유한 야후 주식 시가총액은 1조5000억엔에 달했다. 며칠이긴 했지만 한때 손 회장은 빌 게이츠를 누르고 IT업계 최고 부자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 닷컴 붕괴로 어려움을 겪자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눈을 돌렸다. 야후 주식을 매각하고 그 돈으로 2004년 일본텔레콤을 인수해 유선전화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이어 2006년엔 일본 3위의 이동통신회사인 보다폰재팬을 인수해 이동통신사업에 진출했다. 2008년 애플 아이폰이 일본에 진출할 때 독점 공급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막무가내로 공격적인 확장에 집중한 것은 아니다. 그에겐 원칙이 있었다. 일류가 안 될 사업은 아예 손대지 않았다. 승률이 70% 이상이 돼야 싸움을 벌인다는 것도 중요한 원칙의 하나였다. 30%의 실패확률만 있어도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지 않았다.

인수 대상 회사의 경영상태도 1000개의 지표로 세분화해 하나하나 체크했다. 컴텍스를 인수할 당시에는 사업 타당성을 평가한 2만장 분량의 보고서를 철저히 점검하기도 했다.

끝나지 않은 도전… 세계 제1의 기업을 향해

손 회장의 도전은 일본 시장에서 멈추지 않았다. 지난해 미국 3위 통신사 스프린트를 사들인 데 이어 올해 들어서는 4위 통신사인 T모바일을 인수하겠다고 발표했다. 인수가 성공하면 손 회장은 단숨에 미국시장에서 1억명의 가입자를 가진 거대 통신사를 갖게 된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원자력 발전소를 아예 없애자는 탈원전 운동을 제안하며 재생가능에너지 발전회사인 SB에너지를 설립했다. 3년도 되지 않아 SB에너지는 일본 각지에 10개의 태양광발전소를 만들었고, 훗카이도 등에 8개 발전소 증설을 계획하고 있다.

이달 초에는 인간의 감정을 읽는 휴머노이드 로봇 ‘페퍼’를 선보였다. 자체 알고리즘을 통해 사람의 표정과 목소리톤, 제스처 등을 분석해 반응하는 로봇이다. 손 회장은 200만원대 로봇을 출시해 새로운 시장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을 때 물러날 준비도 하고 있다. 60대에 다음 세대에 사업을 물려주기 위한 후계작업도 동시에 진행 중이다. 2010년 아카데미아라는 학교를 만들었다. 이 학교는 학문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소프트뱅크의 후계자, 관계사들의 리더를 육성하기 위한 조직으로 회사 안팎에서 선발한 인재들을 교육하고 있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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