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신영 기자 ] “솔직히 ‘통일금융’ 상품이 얼마나 팔릴지 회의적이지만 정부의 ‘통일’ 구호에 장단을 맞춰주는 게 예의죠.”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3월 독일 방문 때 ‘통일구상’을 발표한 뒤 금융권에도 ‘통일금융’ 바람이 일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우리은행은 통일기금 조성을 위해 이자 일부를 자동 기부하는 ‘우리겨레 통일패키지’를 이달 중순 선보였고, 국민은행도 지난주 ‘KB통일기원적금’을 출시했다. 기업은행은 ‘IBK모란통장’ ‘IBK진달래통장’의 상표권을 등록하기도 했다. 신한은행과 농협은행 역시 관련 상품 출시를 서두르고 있다.
이처럼 ‘OO금융’ 바람이 부는 게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박근혜 정권 초기엔 ‘창조금융’ 바람이 불었고, 이명박 정부 때는 ‘녹색금융’이라는 슬로건 아래 관련 상품이 쏟아졌다.
이들 상품의 결과를 보면 기대에 한참 못 미친다. 지난해 봄 출범한 국민은행의 창조금융위원회는 활동 실적이 전무한 실정이다. 녹색금융 관련 상품들도 마찬가지다. 일부 은행은 상품 판매를 중단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예고된 결과’라며 시큰둥한 반응이다. 큰 그림 없이 시류에 쫓기듯 졸속으로 설계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상품 개발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어서 정책기조에 맞춰주는 시늉을 하고 있지만 뒷맛은 개운치 않다는 게 은행 관계자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다른 업계에 비해 그만큼 정부 눈치를 많이 본다는 방증이라는 얘기다.
이런 반응은 금융당국에 찍혀 고생해 본 경험에서 학습된 것이다. 정부가 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가 보유 회사를 팔 때 응찰하지 않았다거나, 근무 중인 관료 출신 인사를 홀대했다는 이유로 ‘어느 은행이 찍혔다더라’는 뒷담화가 끊이지 않는 게 사실이다.
‘통일금융’ 바람을 보면서 난데없이 우리은행 민영화가 걱정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 은행의 고위임원은 “정부가 세게 밀어붙이면 입찰 경쟁에 참여해 성의를 보여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인수에 관심이 없지만 인수전 동향은 시시콜콜히 챙겨야 하는 은행들의 이상한 고민은 언제쯤 끝날까.
박신영 금융부 기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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