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경제 모범생' 칠레, '분배의 덫'에 빠지다

입력 2014-07-02 20:36  

바첼레트 정권 출범후 무상교육 등 강화…성장률 5%서 2%대로 추락

법인세 인상 등 세제개편 추진…물가 급등·페소화 가치 하락
구리값 폭락도 경제성장 '발목'



[ 양준영 / 강영연 기자 ] 남미의 ‘경제 모범국가’로 불리는 칠레가 ‘분배의 덫’에 걸렸다. 주요 수출품인 구리 가격 하락으로 힘겨워진 상황에서 지난 3월 출범한 중도좌파 미첼 바첼레트(사진) 정권이 성장보다 분배 정책에 무게중심을 두면서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세계 최대 구리 수출국인 칠레는 남미에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가장 높고 실업률은 낮다. 최근 5년간 칠레 경제는 연평균 5% 넘게 성장했다. 이웃인 브라질 아르헨티나가 경제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을 때도 치솟는 구리 가격 덕분에 상대적으로 여유를 누렸다. 하지만 최근 성장세가 주춤한 가운데 정치 리스크까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칠레가 바첼레트 정권 출범 이후 힘든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고 2일 보도했다.

○중국 경기침체에 직격탄

칠레의 1분기 경제성장률은 2.6%에 머물렀다. 지난해 1분기(4.9%)의 절반 수준이다. 가장 큰 원인은 중국의 성장률 둔화다. 칠레는 전 세계 구리의 34%를 생산하는 최대 생산국이다. GDP의 20%, 수출의 60%를 구리 관련 산업이 담당한다. 최대 구리 수입국인 중국의 경기 둔화로 건설, 제조업 등에 주로 쓰이는 구리 수입이 줄어들면서 칠레 경제는 타격을 입었다.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런던금속거래소(LME) 구리 가격은 연초 대비 9% 넘게 하락했다. 칠레 경제는 올해 3%대 성장에 그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금리는 3개월째 동결 상태다. 5월 물가상승률이 4.7%에 이르는 등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어서다. 칠레 통화인 페소화 가치가 하락하고 있는 것도 영향을 줬다.

페소화 가치는 1년 전에 비해 10% 가까이 급락했다. 지난 30년간 연평균 5% 이상의 성장률을 보이며 국민소득 2만달러를 향해 가던 칠레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고 FT는 평가했다.


○‘분배의 덫’에 걸린 칠레

정치 리스크도 칠레 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바첼레트 대통령은 선거 과정에서 칠레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로 ‘불평등’을 꼽고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시장 실패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는 교육, 조세, 정부 등 3대 개혁과제를 들고 나왔다. 우선 교육시스템을 정비해 무상교육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2011년 칠레를 뜨겁게 달궜던 학생 시위대의 핵심 요구사항이었다.

바첼레트 정부는 법인세를 20%에서 25%로 높이는 등 세제 개편을 통해 GDP의 약 3%인 82억달러의 세수를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기업 이익을 재투자할 경우 세금을 면제해주는 납세제외기금(FUT) 제도를 폐지하고, 외국 투자자에 대한 세제혜택도 축소하기로 했다.

야당은 투자를 크게 위축시킬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중도우파 정당 부대표이자 경제학자인 펠리페 카스트는 “세제 개편안이 그대로 통과되면 매우 심각한 타격이 될 것”이라며 “칠레 경제성장률을 1~1.5%포인트 하락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양준영/강영연 기자 tetriu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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