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 주장의 反사회적 비호세력
국가개조는 이 암덩어리 제거부터
이승훈 < 서울대 경제학 명예교수 shoonlee@snu.ac.kr >
유병언이 잠적했을 때 참 딱한 사람이구나 했다. 일흔 줄의 인사가 설마 달아나랴 생각했고, 설사 달아나더라도 과연 얼마나 오래 피신할 수 있겠나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직도 잡히지 않았고 앞으로도 잘 안 잡힐 것 같다. 애초에 그럴 자신이 있었기에 잠적했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세월호 사고는 외형만 보면 여객선 한 척이 침몰한 안전사고다. 청해진해운은 안전수칙을 무시했을 뿐 아니라 평형수까지 줄이면서 과적할 정도로 무모하고 무책임했다. 간부선원들도 승객들의 안전조치는 외면한 채 탈출해버렸다. 정부는 사전 감독만 부실했던 것이 아니라 사후 구조처리에서도 우왕좌왕 무능했다. 대부분 어린 학생들인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참사라는 점만 빼면 그동안 있어 왔던 다른 안전사고 유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그 이후 전개과정은 기가 찬다. 온 국민을 경악과 슬픔 속에 몰아넣은 세월호 사태의 핵심 책임자는 누가 뭐래도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 유병언이다. 그런데 그는 달아났고, 달아난 그를 비호하는 움직임이 알게 모르게 드세다. 우선 수많은 구원파 신도가 금수원에 집결해 공권력의 수색을 방해했다. 대통령이 질 책임을 애꿎은 유병언에게 전가한다는 황당한 주장이 공공연히 제기됐는데 놀랍게도 동조자가 적지 않다.
대통령은 부실한 감독과 구조의 책임을 물어 (해양경찰청)을 해체할 정도의 조치까지 취했다. 그런데도 정치권 일부까지 정부가 제 책임을 희석하려고 유병언 수색을 너무 요란하게 벌인다고 비난한다. 드디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아예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고 나섰다. 결국 유병언 수색 따위는 중지하고 물러나는 것이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는 말이다. 국민의 뜻을 결집한 선거의 결정을 이렇게 가벼이 여길 수 있는가? 결과적으로 이들이 유병언 잠적을 효과적으로 돕고 있다.
물론 정부 책임은 매우 크다. 철저히 조사해 유관 책임자를 엄중하게 문책해야 한다. 그렇더라도 운항사 청해진해운과 그 실소유주 유병언이 일차 책임자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유병언을 체포해 내막을 제대로 밝히는 것이 사태 해결의 핵심이다. 그런데 세월호 유족들조차 금수원을 그냥 두고 청와대로 몰려가서 항의했다. 극도의 슬픔에 판단력이 잠시 흐려졌을까?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민적 애도 분위기 속에서 역설적으로 유병언 비호 움직임도 드러내 놓고 활발하다. 구원파 신도들은 물론이고 소위 유병언 장학생이 각계각층에 깔렸기 때문이란다. 신도들은 유병언을 구원의 지도자라고 믿는다고 한다. 믿는 것은 자유이지만 자신들의 구원을 수많은 꽃다운 생명보다 더 중요시하면 반사회적이다. 유병언의 소위 ‘장학금’은 결국 그가 팔아넘긴 사진 값에서 나왔다. 청해진해운은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평형수를 뽑으면서까지 화물을 과적했고 안전교육을 등한히 했다.
신도들에게 구원을 약속하고 지지자들에게 은혜를 베푼 유병언의 힘은 그렇게 조성됐다. 그러므로 유병언을 비호하는 신도나 그의 ‘장학생’들은 자기도 모르게 세월호 사태의 도덕적 공범이 돼버렸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다. 유병언은 빚더미에 빠진 세모를 법정관리에 넘기고 불과 1년 반 만에 청해진해운으로 재기했다. 분명히 다른 사업자들도 원했을 제주 왕복 항로의 독점사업권까지 따냈다. 두터운 비호세력의 도움이라는 비리 없이는 결코 가능한 일이 아니다. 법무부 장관이 직접 국회 답변에서 검찰의 수사정보까지 유병언 측에 유출되는 것 같다고 말할 정도다.
실정이 이 지경인데도 정치권은 정파적 이익만 따르고 양극화한 민심도 이성을 잃고 휘둘린다. 유병언 비호는 엄청난 비리의 비호다. 그가 안 잡히는 현실은 우리 사회의 병이 그만큼 깊음을 뜻한다. 국가개조는 유병언부터 잡아 이 암덩어리를 들어내는 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세월호 대참사와 같은 비리가 다시는 싹도 틔우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국민의 준엄한 열망을 정말 이번에는 배신하지 말자.
이승훈 < 서울대 경제학 명예교수 shoonlee@sn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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